정종배 이야기

시각장애인

정종배 2018. 11. 18. 20:56

 

시각장애인/정종배

 

 

일요일 점심 먹고 북한산 둘레길

마실길 지나 내시묘역길 거쳐

효자동길 건너

고양 누리길 깊은 맛을 보고

흥국사로 내려서 집으로 향했다

만추의 산길에서 낙엽 밟는 소리와

향기를 만끽하며

한북정맥 산줄기를 이어보고 끊어보며

골짜기 졸졸거린 물길을 건너길 반복하며

홀로 산행의 진수를 즐겼다

 

막내 여동생과 안부 전화하며

땅거미 내리는 북한산로 인도를 걷는데

이리 가면 어디로 가는가요

네 송추에요

아 그럼 구파발역으로 가려면......

저와 함께 걸으면 되겠네요

 

60년 인천 십정동 출생

3세 홍역으로 실명

17세 인천 맹아학교 입학

월반을 거듭하여 서울맹아학교 입학

23세 서울로 이사

눈 밝은 아내를 보조 삼아

보일러 시공 하수도 정비 새마을보일러장판설치

남다르게 손끝이 야무져 일찍 집을 마련하고

아들 둘 대학 졸업 후 취업

현재는 안마마사지사로

오늘도 을지로3가 예약 손님

일을 마치고 발산동 집으로 갈 작정이다

 

요즈음 태국 중국 인도 마사지가 유행하여

일자리 구하기 힘 들어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 시행으로

대기업 휴게실에 시간제로 근무하여

그나마 괜찮게 소일한다

 

어둠이 깔린 둘레길에 들어섰다

골짜기와 나무 숲 캠핑장 음식점 지나가며

크기와 이름과 종류를

발밑을 의식하며 천천히 걷는 나에게

막힘없이 알려준다

신기했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코와 귀 모든 감각을 열고서 걷는다

운이 좋아 밤길도 주저없이

이렇게 걸을 수 있어 행복하고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시간만 나면 자주 걷는다

 

북한산성 삼천사 진관사 진흥왕순수비 사모바위

한옥마을 하나고등학교

라디오 청취에서 귀에 익은 명소 옆을 걸어 고맙다고

몇 번이나 웃음 소리 밤하늘에 맑게 퍼져 나갔다

 

지금까지 유명인들을 손님으로 만났는데

영업상 비밀을 말하진 않는다

북한 고위급 인사도 모셨다

대부분의 손님에게 칭찬을 받았다

 

사는 게 잘 사는 게

어떻게 살아 가야 잘 사는지 속으로 되묻고

신호등과 횡단보도 없는 길을

안내하고 돌아서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에게

좀 더 나은 복지가

더불어 함께 활짝 피어나길

별빛에 빌면서

장애란 몸보다 마음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문수보살 현시가 아니었나

좀더 길게 깨우침을 받지 못해 아쉬웠다

'정종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임교사  (0) 2018.12.08
국립한국문학관  (0) 2018.12.02
휴거  (0) 2018.11.18
여기소  (0) 2018.11.05
은평뉴타운 한옥마을 샘  (0) 2018.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