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731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학병동맹사건 삼학병 76주기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일제강점기 학병 출신 학병동맹사건의 삼학병 76주기 김명근(金命根, 1920~1946.1.19.) 별명 이달(삼) 박진동(朴晋東, 1921~1946.1.19.) 김성익(金星翼, 1922~1946.1.19.)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주차장에서 사무실을 거쳐 100여 미터 오르면 사색의 길 삼거리가 나온다. 일방통행 길 반대인 오르막길로 1Km 정도 오르면 사색의 길 왼쪽 형제약수터 이정표 아래 월파 김상용 시인의 유택이 자리하고 있다. 김상용 시인의 묘지를 오른쪽에 두고 50여 미터 산길을 내려가 형제약수터 쪽 길을 버리고, 철조망 울타리 왼쪽 오솔길을 따라가면 향나무 4그루가 자라는 삼학병 유택이다. 왼쪽부터 ‘학병(學兵) 김명근(金命根)·박진동(朴晉東)·김성익(金星翼) 義士之墓’ 라고 ..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독립운동가 박원희 94주기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독립운동가 박원희(朴元熙, 1898~1928.1.5.) 94주기 우리나라 초창기 여성 권익향상에 힘쓴 독립운동가 박원희는 1898년 3월 10일 대전 유성에서 태어나 1928년 1월 5일 서울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호적에는 박연희(朴延熙)로 망우리공원 묘적부에도 박연희로 기재되었다. 보훈처 국가유공자 인적 사항에는 서거일 1월 15일로 기록되었다. 당시 조선일보 1928.1.7.자 2면과 김사국 박원희 두 분의 따님 인석 김사건 여사 고희기념문집 170쪽 독립유공자포상신청서에도 1월 5일로 기록되었다. 보훈처 박원희 공훈록 정정 사항에 바로잡아달라고 정정 신청을 하였다. 1월 5일에 맞춰 페이스북에 올리려다 보훈처 공훈록 기록을 보고 1월 15일로 알고 주요 인물 기록표에 15일로 고..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소아 김진성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국내외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국군창설 주역 소아(素我) 김진성(金振聲, 1892~1968. 1. 1.) 선생 54주기 2022년 올해는 1933년 망우리공동묘지 개설 이래 공원사무실이 새로 건립되고 관리권이 바뀌는 변화가 있다. 망우리공원 사무 및 교육 홍보 등을 맡아볼 ‘중랑망우공간’이 오는 봄에 준공될 예정이다. 또한, 작년 7월 중랑구청(구청장 류경기) 망우리공원과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묘역공원 담담 부서가 개설되며 신은실 초대과장이 부임했다. 이어서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중랑구청으로 공원 녹지 관리권이 인계됐다. 올 7월에는 묘지관리권까지 이어받을 계획이다. 작년 10월 말 발간한 『망우리공원 인물열전』(지노출판)을 경향 각지에서 부족한 글 응원해주시어 부끄럽고 미안합..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독립운동가 국군창설 주역 소아 김진성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국내외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국군창설 주역 소아(素我) 김진성(金振聲, 1892~1968. 1. 1.) 54주기 김진성은 1892년 7월 15일 평남 덕천군 성양면 지양리 423번지에서 태어나 1968년 1월 1일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산3의 27번지에서 별세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명으로 김필보(金弼堡)·김정만(金禎萬)이다.(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유공자정보 관리번호 8520)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진성의 공적개요(한글병기)는 “1918~1919.까지 만주 등지에서 유동열 조명선 등과 함께 독립군 양성에 노력하였으며 1920년에는 전남북지방에서 군자금 모집, 미국 국회의원 내한시 살포할 삐라를 등사하였고, 동년 9월 전북 고산군 군자금 강제모집사건으로 피체* 10년 징역형을 받음..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독립지사 명산 김기만 65주기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상해임시정부 독립단 단원 및 흥사단 단우 142번 명산(明山) 김기만(金基萬, 1892~1956.12.27) 65주기 김기만의 본적은 평안남도 용강군 오신면 한학리이다. 1902년까지 출생지에서 살았다가 1905년까지 인근의 진남포에서 거주한다. 그러다가 1907년이 되자 또다시 출생지인 한학리에서 거주한다. 이 무렵까지 주변에 있는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고 한다. 사숙에서의 수학기간은 약 10년(1897~1907)으로, 현재로 따지면 유아기(6세)에서부터 중학생(16세)까지로 볼 수 있다.​ 김기만은 1907년부터 1909년까지 학업을 위해 경성에서 거주한다. 경성에 있는 협성학교에서 교육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기만의 이력서에 따르면, 학업성취도는 보통 수준이라고 하였다.​ 협..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독립지사 별산 나우 61주기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상해임시정부 보안책임자이며 아들 나성돈과 2대 독립운동가 별산(鱉山) 나우(羅愚, 1885~1960.12.24) 61주기 2021년 5월 22일 토요일 중랑구청 발주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분과 망우리공원 전수조사 마무리 보충 답사를 하였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금호 국장과 둘이서 산삼 찾는 심마니보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 망우산 능선을 2시간 넘게 헤매다 오후 3시 솔밭약수터 아래 북서쪽 100여미터 지점 좁고 그늘진 독립운동가 나우 유택을 확인하여 참배했다. 우선 먼저 묘지번호 203918를 확인하였다. 묘비는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빗돌이 하얗고 글씨가 희미하여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鱉山羅州羅公愚之墓(별산나주나공우지묘)를 확인하였다. 독립지사 나우 선생의 묘지가 망우리에 존재한다는..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수암 최백근 선생 60주기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5.16 군사쿠데타 사형 집행 미복권 수암 최백근(崔百根, 1914~1961) 선생 60주기 망우리는 논어의 술이편에 “발분망식 낙이망우(發憤忘食 樂而忘憂), 배움에 열중하여 밥 먹는 것도 잃을 정도로 즐거워 근심 걱정을 잊고 사는 동네”라 일컬을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 망우리에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신후지지 자리를 정하고 건원릉 조성하며 동래 정씨 집성촌 ‘능말’이 들어섰다. 태조가 망우리고개를 넘어 마신 샘물이 양원샘이다. 600년 넘은 집성촌이 기와집 한 채도 남지 않고 행복주택 아파트로 우뚝 솟아 버렸다. 주민들의 생명을 이어간 양원샘은 주택 담장 아래 숨어 있다, 건너편 아파트 공사로 땅을 파내 이제는 샘물마저 말라 버렸다. 1760년(영조 36)에..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60주기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민족일보》사장 5.16 군사쿠데타 군부세력에 의해 간첩혐의로 사형당한 조용수 (趙鏞壽, 1930~1961) 선생 60주기 남과 북 분단의 조국에 올바른 직론을 펼치겠다는 한 사내의 결기가 꺾인 분노의 죽음이 한 갑자 돌고 돌아 한파에 움츠린 가슴에 뜨겁게 닿았다. 한 젊은 언론인의 꿈이 짓밟힌 억울한 길은 이제야 꽃봉오릴 터트리고 꽃향기가 번진다. 통일의 길을 가고자 한 사내의 탕탕한 길을 반공으로 끊어버린 스네이크 박은 반신반인 반열에 오르고, 그 딸은 아버지의 후광과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 정치로 찬양받고 빨아대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 국정농단 탄핵받아, 가슴에 503 수인번호 박고서, 밥 먹는 시간이 엄격한 큰집에서 혼밥을 드시다, 요즘 많이 아파 태극기를 흔드는 귀한 분들 가슴..

망우리 인물열전 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 71주기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망우리고개에서 기업가 삶을 터득한 두산그룹 설립자 박승직(朴承稷, 1864~1950) 71주기 '망우리'하면 망우리공동묘지만 생각한다. 이제는 공동묘지 이미지를 벗어나 새롭게 인문학의 보고로 거듭나고 있다. 망우리는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들어설 때부터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성계와 무학대사와의 망우리고개 일화를 통해 낙이망우(樂而忘憂) 논어의 구절이 어느새 배경이 되어 철학과 실천으로 승화되었다. 망우리는 죽은 자와의 관계만 아니다. 망우리 주민으로 살다간 사람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지금도 망우리공원 안에 면목동 라이벌이었던 응달말과 양짓말의 샤머니즘이 꽃피었던 산신제단과 산치성터가 이제는 아무도 돌보지 않지만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계절 망우산 곳곳에 사람들이 들어..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육군 대령(준장) 이양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육군 대령(준장) 이양 육군 준장(대령) 이양(李亮, 1896~1955) 또랑시인은 2000년부터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해돋이 명소까지 가는 도로 정체와 지체가 심하여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 시인의 묘역을 거쳐 오촌 설태희 가족묘지 뒤 망우산 능선에서 새해 아침 해돋이 맞이한다. 검단산 위로 뜨는 해를 맞기 전의 노을과 산 능선을 넘어서는 햇살이 한강의 윤슬에 비추는 붉은 빛 향연은 어디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장관이다. 소나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의 해돋이 사진을 핸드폰에 올렸을 때 그 찍은 장소를 묻는 이가 많았다. 지금은 소나무가 자라고 배경이 되었던 개나리 줄기를 없애버려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구리둘레길 제1코스 설태희 가족묘지와 솔샘약수터 내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