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망우인문학

망우리공원 최학송

정종배 2020. 5. 13. 04:24

 

 

 

 

 

 

 

 

망우리공원 최학송/정종배

 

 

대한민국 근현대사 화수분 망우리공원

 

남과 북 연변 조선족자치구

대학 입시에 출제하는

빈궁문학 소설가 아침바다 서해 최학송

 

1901년 1월 21일 함북 성진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나

1920년 전후 간도 벌판에서

역부 삯김 삯나무 심부름꾼 부두장사 구들쟁이 인분장사.....

최하층 노동자로 생을 잇다

영광 출신 조운을 만나 그 인연으로

시조시인 조운의 여동생 분녀를

1926년 네 번째 아내로 맞이해

아들 둘을 두었다

 

어릴 적 한문을 배워

편지로 춘원의 문학 지도를 받다

1924년 무작정 서울로 향해

골상학적 미남으로 인심을 얻어

20년대 잡지 편집 이름을 떨쳤다

조운 어머니 기생 출신으로

잡지 《기생》 편집에 이르렀다

희곡을 제외하곤 문학 갈래 섭렵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았다

남도여행 영광 불갑산을 조선팔경으로

여행기에 남길만큼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둑에도 절한다는

눈이 돌아 네 번째 아내를 얻었다

 

《조선문단》추천 제1호 작가로

박화성 채만식 등이 연 이었고

계용묵 소설 <최서방>을 서해가 추천하여

두고두고 앙숙으로 다투다

서해가 일찍 생을 버린 뒤

유족 및 문학 후견인 역을 맡았다

지금도 망우리공원 위 아래

140m 떨어져 누워있다

염상섭 현진건 김동인 등도

당시 원고료가 서해에게 밀렸다

 

갖은 고초 무골호인 밥을 굶어

폐병에 위문협착증 환장해서

헌혈 받고 의전 유상규 싸인

1932년 7월 9일

사망진단서 발급받아

50여대 차량 줄 지은

문인장 1호 장례식

미아리공동묘지에 맵찬 생을 묻었다

 

도시 팽창으로 1958년 이산 김광섭 주도

망우리공동묘지 이장하여

 

이태원공동묘지 나도향 묘지는 실전됐고

유관순 열사는 무연고 28000여명의 유해와 함께

1937년 망우리공동묘지 합장됐다 추정하고

유연고 이상 묘지는 미아리로 이장 뒤 실전됐고

이육사는 고향 안동 원촌으로 옮겼다

 

2000년 이후

문학평론가 곽근 교수에 의해

문학 작품 집대성과 묘지 소재 파악

우리문학기림회 문학비 건립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 자주 걷던

또랑시인 인연 닿아

2010년 묘지 관리인 등재

최학송기념사업회 조직

제자들과 추모제 지낸다

 

올해는 오는 7월 18일 토요일

88주기 추모식을

망우리공원 묘역에서 열 계획이다

주최 한국내셔널 트러스트

후원 수림문화재단

 

1984년 북한에 거주하던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

신필림영화제작소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로

서해 소설 <탈출기> 영화 촬영

북한 전역 상영했다

1985년 9월 둘째 최택 북한 잡지 《조국》의

'생활의 결론' 에

서해의 삶의 과정, 문학활동의 내력, 가계의 상황 등을

소상히 기록한 수기를

《문학사상》2010년 3월호에 재수록하여

1932년 서해 죽고

어머니 아내 두 아들 고향 성진으로 간 뒤의

신산스런 가족들의 삶을 펼쳐볼 수 있다

 

1985년 당시 둘째 택의 기록 가족사

어머니 분녀 병으로 죽고

할머니 고초 겪다 돌아가시고

두 형제 북녘을 떠돌다

해방 직후 외갓집 영광에 와

첫째 백은 폐병으로 일주일 만에 죽어

18세 청춘을 외가 선산에 묻었다

둘째 택은 다시 북으로 가

아버지 후광으로

간부교육소 일을 하다

서해와 같이 소학교 졸업 못했지만

김일성대학 수료

준박사로 사범대학 학부장으로

자식 다섯 대학 졸업 평양에서 잘 살고 있다

 

오늘 오후 한국내셔널 트러스트

망우리인문학 아카데미 강좌

해설사 양성 과정 강의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