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이현우 김관식 천상병

정종배 2020. 6. 29. 21:15

이현우(李賢雨)

1933년생(生) 그러나 생사를 모름.

부산출생.

동국대 국문과 중퇴.

자유문학에 《한강교에서》가 추천되어 등단.

서정적인 아름다운 언어로 쓴 대표적인 詩,

《흑묘대화 黑描對話》, 《다시 한강교에서》가 있음.

시인들만 아는 시인이 있다. 흔히 김관식, 천상병과 함께 문단의 3대 기인으로 더 유명한 이현우 시인이 그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엔 간혹 태어난 때(時)는 있는데 언제 세상을 떴는지 모른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그것도 문단에 친구들도 있고 가족도 있는 사람이 언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는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더군다나 한때 촉망 받던 시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현우는 부산에서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대에 유명한 소설가 김말봉여사를 계모지만 어머니로 모시고 산 귀동자였다.

그는 졸업은 못했지만 만해 한용운과 조지훈, 신경림등이 적을 두었던 동국대를 다녔고, 이후 조지훈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에 《한강교에서》가 추천되어 시단에 나왔다.

소설가 김동리가 극찬에 마지않던 《이상 성격자의 수기》를 비롯해 시 21편과 산문 21편을 편집한 시문집 《다시 한강교에서》가 1994년 무수막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문집이 출간 할 당시 유고집이 아니라 시문집이라고 한 것은 어느날 갑자기 이현우가 친구들과 주변인들로부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의 시문집을 만든 무수막 출판사 대표이자 시인인 강민은 다음과 같이 회고를 했다.

『이현우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괴한 ‘양아치생활’(서울역 일대의 ‘거지왕초’)과 연고지를 절대 두지 않는 ‘방랑벽’, 친구가 근무하는 직장에 불쑥 나타나서 ‘돈’과 ‘밥’을 수탈해 가는 ‘치밀한 기행’을 말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날카로운 안광과 귀족적인 풍모를 가진 50년대의 ‘에뜨랑제’였으며, ‘원색의 화폭처럼 강렬한’ 시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보헤미안’이자 “크고 맑았던 깊숙한 눈망울과 귀공자 같은 얼굴, 가녀린 몸매에서 풍기던 퇴폐적인 분위기”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 한국 전후시의 마지막 퍼즐 〈유심〉 2013년 12월호』

그의 방랑벽이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으며 그 원인이 어떤 것인지 그의 친구들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지만 아마도 전후 팽배해있던 허무주의때문이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다.

그의 어머니 김말봉은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고 여러 신문사에 소설을 연재를 하고 있어서 원고료도 상당했고 그가 명동이나 서울역을 떠돌면 여동생을 보내 집으로 데려와 멀끔하게 양복을 해 입힐정도였다니 가난이 그를 방랑하게 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그가 동국대를 중퇴한 것도 등록금을 술값으로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전후시인 중 이현우처럼 유려한 언어 감각을 가지고 있는 시인도 드물었기에 시인 김규태는 보다 못해 이현우에게 시 한 편에 3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그의 시작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83년 시인 이인영에게 서울가겠다고 차비를 받고 사라진 뒤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다.

졸지에 이현우는 모든 이들에게서 사라진 것이다.

항간엔 그가 전두환 정권이 사회를 정화한다고 만든 삼청교육대에 끌려간게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아뭏든 그가 행방불명 될 때까지 방랑을 하고 살았던, 명동 근처 거지들의 왕초였건 그런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들은 이현우가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일화의 한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안타까운건 그가 남긴 시가 불과 20여 편 밖에 없다는 건데 그래도

그의 천재성을 파악하기엔 부족하지만 그나마 그 몇 편으로나마 이현우를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흑묘대화(黑描對話)

- 모나리자의 초상에게

전쟁과 재앙이 짓밟고 간 나의 하룻밤을

너는 죽어가는 자의 음성으로

가냘프게 운다.

창밖은 페허된 도시

스산한 바람은 나의 내부를 뚫고 가는데

너는 오뇌와 권태에 이즈러진 목소리로

나의 과거와 미래를 점시(占示)한다.

너의 빛나는 광석빛 눈망울

흑단(黑檀)의 서러운 육체여

오, 나의 망각의 세계에서 온

검은 사자여.

너는 조용조용 말한다.

사랑 또한

폐원(廢園)의 수목처럼 시들고.....

전쟁은 결국

인생의 축도(縮圖).

너의 불 붙는 젊음 또한

빙하와 냉각(冷却)의 저쪽

그 그늘에 잠들리라.

그리하여 어느 날

다행히 눈을 뜨거들랑

너는 다시

전쟁과 재앙의 밤으로 돌아갈 것을

아 불행이 시작된 것

그것은

먼 옛날의 일이었다.

너의 생애는 폐허에서부터 시작되고

거기서 끝날 것을......>

말하리라. 너는. 침묵으로서.

이미 나에게서 무너져 간 것은

세계와 단절된 나의 생활, 나의 생존.

그 끝없는 불행과 고독이

영겁으로 이어가는 이 한밤을

너는 회한의 검은 기폭을 흔들며 운다.

아아 허구와 환상과

명정(酩酊)의 침실

그 벽면에 걸린 한폭 때 묻은

위조 사진들 속에서.

(자유문학 1960)

끊어진 한강교에서

......

그 날,

나는 기억에도 없는 괴기한 환상에 잠기며

무너진 한강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 다.

이미 모든 것 위에는 낙일이 오고 있는데

그래도 무엇인가 기다려지는 심정을 위해

회한과 절망이 교차되는 도시

그 어느 주점에 들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의 비극의 편력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취기에 이지러진 눈을 들고 바라보면

불행은 검은 하늘에 차고

나의 청춘의 고독을 싣고

강물은 흘러간다'

...........

(자유문학 1960)

[출처] 시인 이현우|작성자 장다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