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중랑구 양원샘

정종배 2020. 12. 16. 14:07

 

조선 태조가 지초(무학)대사와 지관들과 함께 죽어서 묻힐 명당을 찾아 다녔다.

지금의 동구릉 내 건원릉(健元陵)에 자리를 정하고 환궁하는 길에 한 고개 위에 이
르러 잠시 쉬면서 “이제 오랫동안 근심을 잊을 수 있게 되었노라(於斯吾忘憂矣)”하
여, 그 이후부터 이 고개를 망우령(忘憂嶺) 또는 망우리고개라 불렀다. 양원리(養源里 또는 良源里)는 태조가 돌아가는 길에 고개를 넘다가 목이 말라
우물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어찌나 좋은지 이 우물을 양원수(養源水)라 했고 마을이
름이 양원리가 됐다고 전한다. 태종 때 김경숙(金敬叔)이 지은 <주관육익(周官六翼)>이란 책에서 소개 되었고, 선조의 원비 의인왕후 박씨의 능터를 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0년과 2017년 양원수 우물(사진 한철수)

양원리는 정씨가 묘를 쓰고 대대로 살던 마을인데, 이전에 양원천(養源泉)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조선 한양정도 600년 동네명소
1995년 발간된 중랑구지에 재미있는 향토자료가 있어 소개한다. 1994년 서울
(한양)정도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랑구에서는 동네 명소 29곳을 선정하였다. 동네명소는 ▲예로부터 내려온 설화 ▲ 유물유적지 ▲중랑구민이 가장 사랑하는 장
소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설문을 통해 선정했다. 동별로 신내동 4곳, 망우동 12곳, 묵동 1곳, 상봉동 2곳, 면목동 6곳이다. 당시 중랑구지 내용을 필사해 소개 한다.

1 능마을 신내동 138일대
2 봉화산봉화제도장 신내동 산141
3 망우리고개 망우동~구리시
4 신내동장사바위 봉화산중턱
5 망우리공동묘지 망우동 산57 일대
6 양원리우물 망우동 270
7 평산신씨묘역 망우동 산69-1
8 신경진신도비 망우동 산69-1
9 용마자연공원 면목동 산69-1 일대
10 13도창의군탑 망우공원주차장
11 극락사약수 망우동 73-10
12 경동제일교회 중화동 92-1
13 한일철공소 중화동 207-11
14 극락사 망우동 73-10
15 중랑교 면목2동~휘경동
16 분토산 망우동 산30-1
17 금란동산 망우동 222
18 소파방정환묘소 망우리공원
19 동락천 망우리공원
20 용마돌산공원 면목동 산1 일대
21 화랑마을 묵동 122일대
22 여정루 상봉터미널 광장
23 성덕사 상봉동 303-10
24 로얄볼링장 중화동 207-1
25 쌍굴다리 상봉동 삼표연탄 옆
26 먹골배 신내동 일대
27 동서울볼링장 면목동 750-7
28 용마팔각정 용마산 해발400m
29 용마산옹달샘 면목동 산2

태조가 1408년 5월 24일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승하하고, 9월 9일 건원릉에
입궁을 했다. 그 후 태종은 1년에 두 차례 정도 산릉으로 거둥을 했는데 이를 배릉
(拜陵)이라 한다. 이 행렬의 코스는 경복궁이나 창덕궁에서 나와 동대문을 나와 보
제원에 들어서 동북쪽 길로 들어서서 개운산과 천장산 사이의 정릉천 길을 따라 중
랑포에 이르면 돌다리(석계, 돌곶이)를 건너 송계원에 도착한다. 중랑포 송계원 들판에서 쉬는데 이를 주정소라 한다. 식사나 길게 쉬면 대주정이
라 하고 잠시 쉬면 소주정이라 했다. 송계원에서 휴식을 마친 태종 일행은 구릉산
(검암산)을 아랫자락(망우리)을 따라 건원릉으로 들어갔다. 중랑구 망우리에는 양원이라는 작은 우물이 있는데, 태종이 건원릉으로 가다가 목을 축인 것으로 전해진다.
환궁 할 때는 대부분 오던 길로 되돌아갔지만 간혹 망우리고개를 넘어 송계원을 거쳐 궁으로 돌아갔다. 다시 살펴보면, <경복궁-동대문-보제원-정릉천길-중랑포- 송계원(주정소)-망우리-구릉산(검암산)-건원릉> 코스를 밟은 것이다. 향후, 정조의 능행 행사처럼, 임금의 동구릉행 재현 행사 등을 기획할 때 참고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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