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시인 박인환 65주기

정종배 2021. 3. 20. 17:55




박인환 시인 65주기 / 정종배


3월 20일 오전 11시 봄비가 성글게 오락가락하는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시인 박인환 유택에서
중랑구문화재단과 인제군문화재단 공동으로 개최한 시인 박인환 6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1937년 4월 17일 27세로 운명한 시인 이상 본명 김해경을 흠모하여
기일을 착각하고 3월 17일 한국일보에 '죽은 아폴론 ㅡ 이상李箱 그가 떠난 날에' 발표하고
연일 술을 마시고
1956년 3월 20일 저녁 9시 생명수를 달라고 외치고 30세 짧은 생을 마감한 시인 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두 편이 독자들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받아서인지
박인환의 시 세계의 폭과 깊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잊혀져 가고 있다.
시인 김수영의 애정어린 언어는 박인환 시의 향기를 조금도 가볍게 하지 않는다.

미얀마 군부가 민주화를 부르짖는 민중을 총칼로 짓밟은 처참한 현실이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과 오버랩되는 봄비 오는 늦은 오후
박인환의 시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를 소개한다.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 박인환


동양의 오케스트라
가메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
오 약소민족
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

삼백년 동안 너의 자원은
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
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
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메란은 미칠 듯이 울었다

오란다의 58배나 되는 면적에
오란다인은 조금도 갖지 않은 슬픔에
밀시(密柹)처럼 지니고
육천칠십삼만인(六千七十三萬人) 중 한 사람도 빛나는 남십자성은
쳐다보지 못하며 살아왔다

수도 바다비아 상업항 스라바야 고원분지의 중심지
반돈의 시민이여
너희들의 습성이 용서하지 않는

남을 때리지 못하는 것은 회교서 온 것만이 아니라
동인도회사가 붕괴한 다음
오란다의 식민정책 밑에 모든 힘까지도 빼앗긴 것이다

사나이는 일할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약한 여자들은 백인 아래 눈물 흘렸다
수많은 혼혈아는 살길을 잃어 애비를 찾았으나
스라바야를 떠나는 상선은
벌써 기적을 울렸다

오란다인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처럼
사원(寺院)을 만들지는 않았다
영국인처럼 은행도 세우지 않았다
토인(土人)은 저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축할 여유란 도무지 없었다
오란다인은 옛날처럼 도로를 닦고
아시아의 창고에서 임자 없는 사이
보물을 본국으로 끌고만 갔다

주거와 의식은 최저도(最抵度)
노예적 지위는 더욱 심하고
옛과 같은 창조적 혈액은 완전히 부패하였으나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생의 광영은 그놈들의 소유만이 아니다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인민의 해방
세워야 할 너희들의 나라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성립하였다 그런데
연립 임시 정부란 또 다시 박해다
지배권을 회복하려는 모략을 부숴라
이제는 식민지의 고아가 되면 못쓴다
전인민은 일치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국가방위와 인민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
삼백 년 동안 받아온 눈물겨운 박해의 반응으로
너의 조상이 남겨놓은 저 야자나무의 노래를 부르며
오란다군의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어라

제국주의의 야만적 체제는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
힘 있는 대로 영웅 되어 싸워라
자유와 자기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야욕과 폭압과 비민주적인 식민정책을 지구에서
부숴내기 위해
반항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

참혹한 옛날이 지나면
피 흘린 자바섬에는
붉은 칸나 꽃이 피리니
죽음의 보람은 남해의 태양처럼
조선에 사는 우리에게도 빛이려니
해류가 부딪치는 모든 육지에선
거룩한 인도네시아 인민의 내일을 축복하리라

사랑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고대 문화의 대유적 보로 로도울의 밤
평화를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메란에 맞추어 스림피로
새로운 나라를 맞이하여라

시인 박인환은 일제 치하를 거친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인도네시아를 향한 강한 동질감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한 시로 박인환의 시적 대상이 폭넓었다는 것을 드러내
그의 대표시로 평론가들은 말한다.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 박인환(1948년)

'망우리공원(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 90주기 추모식  (0) 2021.04.01
안중근과 망우리 인물들  (0) 2021.03.25
박인환 시인 65주기  (0) 2021.03.20
대향 이중섭  (0) 2021.03.18
시인 박인환  (0) 2021.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