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4.19혁명과 망우리공원

정종배 2021. 4. 19. 03:42








4.19혁명 망우리공원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졌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하였다. 그러다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실시됐는데,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의 부정선거(3·15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이에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섰다. 그 결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공산당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다.

그러던 중 4월 11일 1차 마산시위(3월 15일)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로 발견됐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이후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3천여 명의 학생들은 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았고, 일부 학생들은 큰 부상을 입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다음 날인 4월 19일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시민들을 탄압하고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였다. 그리고 4월 25일 이승만 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 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 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다. 여기에 4월 26일 전날에 이어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군중들은 정권의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였고,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4.19혁명 관련된 분 중에
낙이망우 망우리공원에 묻혔다
4.19민주묘지로 이장한 분은
서울법대 신입생 박동훈 열사
수송국민학교 6학년 전한승 열사 두 분이다

4.19혁명 기폭제 기름을 부은 이기붕 박마리아 이강석 이강욱 비극의 집단 자살 가족묘지는 고양시 사설공원묘지로 이장했다

4.19희생학생위령탑을 제작한 비운의 조각가
차근호 묘지는 소재를 알 수 없다

*망우리공원 이중섭 묘지를 정하고 소나무를 심은 시인 구상
이중섭을 형님처럼 따랐고 묘비 제작 차근호
좌대 대향이중섭화백묘비 새긴 화가 한묵
한묵과 구상과 차근호 사진은 임응식 사진작가 작품이다
묘비 제막식 사진은 평양종로보통학교 1년 선배이자이중섭 남한 생활에 시인 구상과 더불어 도움을 준 소설가 김이석 부인 박순녀 소설가 손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