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장해윤
일본 군속으로 중국 태항산 석가장 전투 통역관
장해윤(張海潤, 1908~1940.4.14.) 82주기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 길 삼거리 일방통행 역행인 왼쪽으로 오르다 이태원무연고분묘합장묘역 뒤쪽인 동남쪽 출입구 전 즉 골짜기 오른쪽 산 능선을 향해 오솔길을 60여 미터 오르면 묘비 하나가 서 있다. 일본 군속으로 일지사변 즉 중일전쟁 중 태항산 석가장 전투에 통역관으로 참가·전사하여, 일본군의 훈8등급을 받았다는 비문을 확인했다. 1940년 10월 30일 묻힌 묘지번호 0726073번으로 유족은 김정환이며 주소는 사간동 62번지이다.
묘비 앞면, 陸軍軍屬勳八等沃溝張海潤之墓. 묘비 뒷면, 當日支事變之極於河北省石家莊戰鬪之時挺身 抗敵之殉國豈不曰忠義之至哉故陸軍軍屬通譯 張海潤是爾年方三十二但母氏金貞煥與一 姉卽昭和十五年四月十四日略擧其實而記之焉 京城府安國松峴司諫町合總代金宮舜卿謹記 昭和十七年二月 日立
묘비 앞면 ‘육군군속 훈8등 옥구 장해윤의묘’ 묘비 뒷면 일본 육군 군속으로 통역을 맡아 일지사변 하북성 태항산 석가장 전투에서 적에 맞서다 순국하여 어찌 그 충과 의가 지극하지 않겠는가. 장해윤은 애석하게도 그때 나이 32세 소화 15년(1940년) 4월 14일 짧은 생을 마감하여 어머니 김정환 누이 1인 등 그 사실을 간단히 들어 기록하여 당시 경성부 안국 송현 사간정회 총대(동장)인 김순경 씨가 비문을 지어 소화 17년(1942년) 2월에 세웠다“는 내용이다.
장해윤의 전사에 따른 유족을 찾는다는 1940년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문 기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사한 장군 어머니 나서시오'
본적을 경성부 원남정 이백십칠원 번지에 둔 장해윤(32)군은 북지파견군 반소부대 무신부대 통역병을 근무하여 오다가 지난 사월십사일에 전병사하였다. 그런데 그의 유족인 그의 모친 김정환 씨의 주소가 불명하여 공적을 상신하는데 지장이 있으므로 만약 아는 사람이 있거던 경성부 총동원과로 알려주시길 바란다.(조선일보, 1940.5.8.)
'영예의 전몰 통역생 부에서 유족탐사'
북지파견의 반소부대 무신부대의 통역을 활약을 하던 장해윤(30) 지난 4월 14일 영예의 전사하였다는 통보가 되었은데 그의 본적은 경성부 원남정 217번지 모친은 김정환으로 유족의 주소가 아직 판명되지 않아 경성부 시국 총동원과에서는 유족의 주소를 탐사중이다. 이 유족을 아는 이는 즉시 부 시국총동원과에 통지하여 주기 바란다고 한다.(동아일보, 1940.5.8.)
훈등(勲等)은 공훈에 대해 수여된 등급이다. 일본에서는 율령제도가 나온 당시에는 ‘훈위’(勲位)라고 불렀으며, 훈1등부터 훈12등까지 12등급이 있었다. 또한 위계훈등처럼 서훈은 위계에 따라 이루어졌다.
훈1등 욱일대수장이 당시 고위층(일본인, 한국인)에게 수여되었던 훈장이라면, 훈8등 백색동엽장은 주로 일제강점기에 순사(경찰) 등 하급 공무원에게 수여된 훈장이다.
하북성 석가장 부근에 있는 집성촌 호가장 마을은 수나라 때부터 계속 호씨들만 살았다고 하는 곳이다. 1941년 12월 12일 안개 낀 새벽 이곳에서 일본군과 조선의용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의 의용군를 도와주는 팔로군도 다수 가담했다. 이 전투에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제2대 대원 20여 명 중 박철동, 손일봉, 왕현순(이정순), 최철호 등 4명이 전사하고 대장 김세광, 분대장 조열광, 대원 장례신, 한지성, 조소경, 조관, 김금, 황통 등이 중상을 입었고, 또 팔로군 12명이 전사했다. 일본군 1개 중대 300명이 마을 촌장의 밀고로 덮쳤던 것이다. 일본군은 전사 18명, 32명이 중경상이었다.
여기서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일본군 포로가 되어 일본 나사사키로 압송되어 옥고를 치른 사람이 독립운동가이며 소설가인 김학철(金學鐵, 1916~2001)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중 가장 억울한 두 분을 꼽으라면 김학철과 김원봉으로 말한다.
김학철은 1916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났다. 항일 독립운동가이며 소설가로 활동했다.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했던 전사들의 삶을 주로 썼다. 대표작으로 「격정시대」, 「무명소졸」이 있다. 서울에서 중학시절을 보낸 뒤 학비가 들지 않는 학교를 찾아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중국 국민당의 핵심인물을 키우는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이어 친구 문정일과 함께 팔로군 내에 조직된 조선의용군에 들어가 중국 동북지역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43년 호가장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 포로가 되어 나가사키로 끌려가 한쪽 다리를 잘랐다. 10년 구형을 받았으나 8·15해방이 되자 풀려났으며, 그 뒤 서울에 잠시 머물다가 1946년 월북했다. 노동신문사 등에서 일하면서 단편 「담뱃국」(문학, 1946. 8)을 발표했다. 1951년 베이징으로 건너가 옌지시에 자리를 잡고, 중국문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기간인 1966~76년에는 '반혁명작가'로 몰려 감옥에서 지냈다.
전쟁은 일어나면 일상이 깨지는 참극이다. 특히 어린이 여자 그리고 젊은이가 죽는다. 현대전은 화학전 원자탄 등 일시에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어떠한 이유라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이 심상치 않다. 새 정부의 외교 국방 등 국민의 목숨이 달린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매일기도 하면서 평화의 기도를 빠트리지 않는다.
집안 선예 할머니 6.25전쟁 필자의 아버지와 막내아들 인민군에 끌려가 생사를 모르지만 83살 돌아가실 때까지 대문을 열어놓고 따순 밥을 차려 돌아오길 기다렸다.
지난 주 토요일 장훈고 제자인 김종훈 기자 임정로드 국립서울 현충원 답사길을 함께 했다. 월남전 참전하여 전사한 김병식 이종형을 참배했다. 큰이모부 이모님 살아생전 애통해 하시는 모습이 생생하다. 봄꽃들이 흐드러진 현충원 벚꽃 아래 모델을 두고 사진 찍는 작가들도 붐빈다. 국립현충원은 이대로 멈춰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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