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어린이날

정종배 2022. 5. 5. 09:59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어린이날

지석영, 방정환, 안석영, 최신복, 이인성, 강소천, 함이영, 박은혜, 한글학자

2022년 5월 1일은 어린이날 100주년이다. 망우리공원 인물열전에 어린이와 어린이날 관련된 분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76년 종두법 실시 1885년 한국 최초의 우두 관련 서적이자 서양의학서인 『우두신설』을 저술 1899년 의학교(현 서울의대) 초대 교장 5대 의사 집안 송촌 지석영이다.
송촌의 오블리스 오블리제로 천연두, 마마, 곰보 등의 단어가 현재는 거의 사라졌고 유아 사망율이 현저히 낮아졌다.

1922년 5월 1일 창립 1주년을 맞아 천도교소년회는 독자적으로 이날을 ‘어린이의 날’로 정하여 선포했다. “10년 후 조선을 여廬하라”는 내용의 전단을 경성 시내에 배포하는 한편 “우리는 참되고 씩씩하게 자라는 가운데 인정 많은 소년이 됩시다”라는 표어를 내건 자동차와 창가대를 동원해서 대대적인 행사를 치렀다. 이것이 우리나라 ‘어린이날’ 실질적인 출발이다. 이 행사의 지도위원은 방정환, 김기전, 구중회, 차상찬, 박달성 등이 맡았다.

소파 방정환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문으로 불리는 ‘어린이날 선언문’을 발표했다.
방정환은 ‘어른들에게’와 ‘어린 동무들에게’로 구분된 발표문에서 어린이를 어른과 똑같이 독립된 인격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어린이는 민족의 미래’임을 강조했다.

‘어른들에게’에는
-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 주시오
-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시오
-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가끔가끔 시켜 주시오
-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 타일러 주시오
-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 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 대우주의 뇌 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등이 담겨 있다.

‘늙은이’와 ‘젊은이’의 구분만 있던 시절 어린이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사랑이 가득한 고귀한 글귀다.

이어 ‘어린 동무들에게’는
-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 어른들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 뒷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같은 것을 버리지 말기로 합시다
-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들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 입을 꼭 다물고 몸을 바르게 가지기로 합시다

1923년 2월 18일 《어린이》지 창간을 축하하는 기념 가극대회를 개최했다. 3월 16일에는 아동 문제 연구 단체 ‘색동회’ 발기 회합을 일본 동경에서 가졌다.
3월 16일 동경에서 제1차 모임을 가진 바 있는 ‘색동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로 정식 발족되었다.

이 무렵 소년잡지 《어린이》지 독자란을 통하여 유지영, 윤석중, 서덕출, 이원수, 이정구, 최경화, 최순애, 신고송, 목일신, 박목월
등 훌륭한 아동문학가를 잇달아 배출했다. 동요를 소개하면「설날」과 「반달」의 윤극영, 「고드름」의 유지영, 「따오기」의 한정동, 「오뚜기」의 윤석중, 「봄편지」의 서덕출, 「통딱딱 통짝짝」의 박목월, 「울엄마젖」의 강소천, 「오빠생각」의 최순애(11세), 「고향의 봄」의 이원수(15세) 등이 응모(가사)해 뽑혔고 작가로 발돋움했다. 이원수와 최순애는 결혼했다. 개벽사에서 소파의 편집을 돕고, 1936년 소파의 망우리공원 유택을 마련할 때 윤석중 마해송과 함께 주도한 최신복의 동생이 최순애와 「꼬부랑 할머니」 최영애이다. 최영주(신복)의 유택도 고향 수원 선산에 있지 않고 소파 묘지 오르는 입구 왼쪽에 갓난아기 때 죽은 자식과 자리하고, 부모님 유택도 한 계단 위에 있다. 부모님 성묘할 때 한 번이라도 더 소파를 뵙겠다는 지극한 정성의 발로였다.

〈오빠생각〉은 오빠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던 열두 살 소녀의 동시가 노래로 불린 것입니다. 열두 살 소녀의 이름은 최순애, 1925년 《어린이》 잡지에 보낸 동시가 뽑히면서 소녀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자유롭지 못한 장애의 몸으로 ‘조선의 봄’을 그리워 한 〈봄편지〉(1925년, 《어린이》)를 지은 서덕출도 《어린이》의 애독자입니다. 또 근대 초기의 작곡가로 유명한 윤극영이 작사, 작곡한 〈반달〉은 큰누나를 먼저 떠나보내고 슬퍼하다 만난 구름과 반달, 샛별을 노래합니다.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에서 한국, 일본어 혼합 단일방송이 시작되자 그다음 날 소파가 최초로 동화 「어린이와 직업」을 라디오로 방송했다.

1928년 소파 방정환이 주도하여 동아일보 주최 세계아동예술전람회 특선에 입상한 한국 근대 미술 천재 화가 아소(我笑) 이인성이다.
그 당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보고 "너 커서 이인성 될라고" 할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마라톤의 손기정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망우리공원에는 한글 보급에도 힘써 (1905) 6개조를 상소하고, 1909년 《자전석요(字典釋要)》를 간행하는 등 국문 연구에도 공적 있는 지석영 선생이 계신다.
신명균·박현식·이탁 등 세 분은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작성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글이 체계화되고 보급될 수 있도록 노력한 이종일 민족대표 33인 독립운동가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했다.
1930년대 안팎 당시 서울 인구가 30여만 명이고 《동아일보》·《조선일보》등 신문 발행 부수가 5만 정도였다. 당시 서울 인구 30만명의 1/3인 10만부를 발행한《어린이》잡지를 통해 한글 보급에 지대한 공헌한 소파 방정환 선생의 묘역은 새롭게 단장했다.
박승빈 변호사는 《정음》을 발행하며 한글 연구의 한 축을 이뤘다. 설태희 설원식 부자는 큰사전 편찬에 후원금을 냈다.
김영랑 시인은 우리 말을 갈고 닦아 가락에 맞춰 순수 정서를 노래했다.
조선의 유일무이 천재 식물분류학자인 장형두 서울대학 사범대학 부교수는 외솔 최현배 선생과 교류하며 식물 이름 짓기를 순우리말로 짓고 부르기를 고집하였다.

'우리의 소원'의 작사자, 한국 삽화계의 선구자, 만문만화(漫文漫畫), 《어린이》 잡지 에 창간 2주년 기념호(1925년)에 실린 안석주의 〈씨동이 말타기〉처럼 짧은 이야기의 6컷 만화이다. 이 ‘씨동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만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고 인기도 꽤 많았다,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 3·1절 기념 어린이 노래극 「우리의 소원은 독립」에서 주제가인 을 작사하였다. 작곡가는 아들 안병원이었다. 두 딸은 음대 교수 사위는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이다.

안석영과 김영랑은 휘문고 1년 선후배로 신당동에 이웃하며 살았다. 석영이 1950년 2월 별세하여 망우리에 묻힐 때 영랑이 "다음은 내 차례다"하고 말했다고 알려졌는데 공교롭게도 그해 9월 28일 서울 수복 당시 돈암동 반지하에 가족과 숨어 있다 우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안으로 들어오라 하고, 영랑은 잠시 밖에서 쉬는 사이 폭탄 파편에 맞아 생을 마감하여 장충단 길 아래 묻혔다. 1954년 11월 14일 석영의 묘비와 영랑의 이장 및 묘비 제막식을 가졌다. 현재 석영은 파주 청아공원에 납골되었고 영랑은 용인 천주교회 묘지로 이장했다. 두 분의 휴손들은 서울시와 중랑구청에서 망우리공원에 재이장을 추진하여 다시 모실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1948년 美 군정청의 《초등 노래책》에 실린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의 을 작곡한 4대 음악 집안 함이영 작곡가

강소천은 윤석중(尹石重)이 시도한 시적 동요를 계승하여 동시의 출현에 결정적 공헌을 한 사람이다. 소천은 백석의 제자이자 친우였다. 백석은 강소천과 소천의 문재를 몹시 아꼈다고 한다. 특히 소천의 시집 에 실린 백석의 축시, 는 백석의 시 중에서도 명편이거니와, 강소천에 대한 그의 애정이 몹시 깊음을 알아볼 수 있다. 백석 시집 사슴과 강소천의 호박꽃 초롱 모두 33편 수록 이는 3.1운동 33인을 의미한다. 는 백석을 기리며 쓴 시이다. 김동명의 시 도 백석을 그리워한 시로 동명의 제자 김동진 작곡가가 단번에 작곡하였으나 동진의 친일행위를 안 동명이 서운하다는 말을 한 뒤 보다 덜 부르게 되었다.
1957년 어린이 헌장 초안 작성 제정 발표 기념탑 건립을 주도했다.
대표작은 호박꽃 초롱, 조그만 사진첩, 꿈을 찍는 사람들, 꽃들의 합창, 봄이 너를 부른다. 닭, 태극기, 금강산, 꼬마 눈사람, 코끼리, 어린이 노래, 유관순 노래, 스승의 은혜 등이다.

경기여자중학교 교장에 부임하여 1960년까지 15년간 교육 은석초(동국대부설초등학교) 설립자 난석 박은혜이다.

중랑구청(구청장 류경기)에서 방정환교육지원센터를 준공하여 소파 방정환 선생의 뜻을 이어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