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시인 구상 김이석 이중섭 박인환 차근호

정종배 2022. 5. 12. 08:12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시인 구상 김이석 이중섭 박인환 차근호

오늘은 은사이신 구상 시인의 18주기이다. 매일기도 드리며 선생님의 천상영복을 기도드린다.

선생님은 문창과 76학번 동기들과 각별하였다. 선생님도 76년도에 문창과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동기라며 우의?를 다졌다. 선생님의 첫 번째 강의 일성

“나는 장인이 아니고 사제다. 언어의 영혼을 무겁게 여기어 기어의 죄를 범하지 말라. 문단에 기웃거리지 말고 등단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발표할 수 있으면 어디든지 구분하지 말고 발표하여 그중에 어느 누가 한 구절이라도 되새겨 주면 글쓴이의 행복이다.”

첫 실기 강의 오늘은 오정국 군과 정종배 양의 시를 함께 공부하겠다. 1학년 여름방학 50여 편의 습작을 드렸다. 그 뒤로 연락을 주시지 않았다. 국어 선생 10여 년 뒤 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왜 작품 쓰지 않느냐며 손을 잡아 주었다. 그 뒤로 현재까지 또랑시인으로 선생님의 바람에 닿지 못하고 궁싯대고 있다.

그렇다고 선생님께 문단 추천을 받은 제자는 없다. 또한 선생님 밥 한 그릇 대접한 제자도 없다. 일단 선생님과 약속의 전제 조건이 밥값은 내가 낸다, 그렇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 선생님의 팔순 잔치도 제자만 온다는 조건으로 치렀다. 말년 사진의 한복은 우리 동기들이 이모님께 치수를 물어 지어드렸다.

선생님 살아생전, 망우리 공원 이중섭 유택을 오가며 칡넝쿨 아까시 씨앗 꼬투리 등을 관리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고마운 일이지” 하시며 이중섭 화가와의 몇 가지 일화를 말씀하였다. 습작에 대한 양과 질 그리고 우리 것의 고유한 전통에 대한 사랑 가족애와 마지막 장례와 망우리 묘지 등이다. 망우리 이중섭 묘역의 소나무에 대해서도 말씀을 이어갔다.

차근호 조각가는 이중섭 묘를 쓸 때 형님과 함께 죽겠다며 구덩이에 들어가려 소동을 벌렸다. 이중섭 묘비를 제작하였다. 선생님은 4.19학생혁명기념탑 문제로 자살한 차근호 조각가를 홍제동화장장 불구덩에 집어넣고 일초 스님 고은 시인과 밤새 소주를 마셨다.

망우리공원에는 김이석 소설가의 유택이 자리 잡고 있다. 김이석 소설가는 북한 정권 첫 번째 필화 사건인 시 “응향”의 검열관으로 시인 구상과 이중섭을 조사하려 평양에서 원산으로 출장 왔다. 점심시간 틈을 이용하여 시인 구상은 월남을 감행했다. 6.25 전쟁 부산 피난 길거리에서 만난 김이석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취직을 시켰다.


김이석 소설가의 부인인 박순녀 소설가와 세 번의 만남을 통해서 김수영 시인과 박인환 시인과의 관계 그리고 구상 시인과의 일화 등을 듣고 세간에 떠도는 에피소드를 확인하였다.

박순녀 소설가의 구상선생님에 대한 총평은 술 드시지 않을 땐 멋진 신사, 술을 드셨다면 악동이었다. 김이석 박인환 김수영 등도 이에 질세라 밤새 난장을 펼쳐 진절머리가 나 박순녀 소설가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다고 회고하였다. 그중에 압권은 구상 시인이 술을 드시고 박순녀 소설가에게 메모를 남겼는데 아침에 술을 깨고 다시 돌려달라고 하였으나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글 내용이 궁금하다.
김이석 소설가는 이중섭 화가의 평양종로보통학교 1년 선배로 6.25전쟁 후 어려운 이중섭 서울살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중섭 화가의 일본 가족 상봉을 위한 서류와 절차에 대한 박인환 시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2004년 선생님 장례식 76 동기들이 중심이 되어 치렀다. 나는 신발 정리 담당이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당시 박근혜 야당 대표가 정치인이 아닌 개인으로 조문을 와 나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며 물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사석에서 ‘박첨지’라 부르는 관계로 미루어 보았다. 선생님의 정치와 단체 장에 거리두기는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연도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베네딕도 수도원과의 선대로부터 깊은 인연으로 현재 선생님 부부 유택을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 모실 계획이다. 왜관 수도원도 좋지만 망우역사문화공원 이중섭 묘역 곁에 모시어 두 분의 우정을 이어가면 좋지 않을까 꿈을 꾼다. 많은 이의 꿈은 이루어진다.

사진의 손글씨는 박순녀 소설가의 친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