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 소설가 김동리 유묵 한 점
어제 오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세 분을 마한의 새로 영모당에 모시고
식구들과 점심 먹고
아버지 유품을 보았다.
진주 정가 충장공 애일당파 표산종문 시조부터 고조 대까지 인쇄한 두루마리 세보,
큰 손주 태어나기 한 달 전인 1951년 음력 동짓달 초하룻날 돌아가신 할아버지 초상 소상 대상 고감록,
아버지 1964년부터 시작한 오일장인 함평 무안 학다리장 과일전 외상 장부,
1979년 일기장이라 쓰셨는데 금전출납부로 가용 즉 학비 차비 식비 이발비 결혼식비용 등이 적힌 공책을 챙겨
오후 3시 출발한 작은 형님 차를 타고 올라와
잠을 자다 오밤중 12시에 일어나 유품과 유묵을 펼쳐놓고 꼼꼼히 읽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들을
조상과 은사님이 펼쳐놓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들어 허리를 곧추세워 앉는다
그리고 1978년 가을 김동리 은사님 유묵을 몇 번이고 읽어본다
기말고사 끝나고 과 동기 남광우와 군 입대 전 동리 영감께 인사를 드리려 예술대학장실을 들어갔다
영감님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문을 나서다
손을 잡고 소파에 앉아 다정히 말씀을 하시더니 책상으로 자리를 옮기시어 붓을 들어 화선지를 반 나눠 쓰시고
'덕지근본야'는 나에게
'연비려천 어약우연'은 광우에게 선물로 주시며
몸 다치지 말고 잘 다녀오라 다시 손을 잡아주셨다.
복도에서 또 인사 드리고
둘이 남아 흐믓한 마음으로 유묵을 다시 읽다.
광우가 바꾸자고 하였다.
내가 받은 글의 의미를 좋아라해 그러라며 맞교환하여
신동엽 '금강' 시집에 끼어 넣고
5.18 한 달 뒤인 두번째 휴가 때
동생 광주 자취방에서 한 번 본 뒤
행방을 몰랐던 동리 영감 유묵을 아버지 유품 속에 뵙게 되어 은사님의 따뜻한 정을 되새긴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광우야 국문과 중세국어 수강하며 이름이 같다며
남광우 선생님 출석을 부를 때마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나는 경기도 광주 너는 전라도 광주 광자를 길고 짧게 발음하시던 품위도 어언 42년이 흘렀다.
광우야 미국 생활 재미지냐
동리영감 유묵 읽고 있겠지
'정종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 (0) | 2022.09.08 |
---|---|
표산가 (0) | 2022.08.26 |
함평문학통사 현대문학 분야 문인 및 맥잇기 (0) | 2022.03.19 |
봄비와 김희옥 개인전 '꽃들의 향연' (0) | 2022.03.13 |
김희옥 개인전 '꽃들의 향연' (0) | 2022.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