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인 인기와 드라마틱한 삶과 가족과 친구 관계 국민화가 한국미술 3대 거장
대향(大鄕) 이중섭(李仲燮, 1916~1956.9.6.) 69주기

이중섭 자화상
2016년 5월 21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미술대회를 개최했다. 김병기 이중섭 탄생 100주년 사생대회가 (재)수림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사)중랑문화연구소가 주관하여 김희수기념아트센터와 국립산림과학원 일원에서 열렸다. 서울시 미술영재고등학교 상명고, 서울고, 청량고 등 학생 100여명이 참여했다. 오전 10시에 김희수기념아트센터 공연장에서 이중섭 화가 평양종로보통학교 동기인 김병기 화백이 100년을 거쳐 온 자신의 예술관과 친구 이중섭과 교류한 예술인 등 국보급 인물들을 이야기했다.
수림문화재단 하정웅 이사장이 그림 1만여 점을 수집하여 국내에 기증한 미술 컬렉션 이우환, 전화황, 조양규, 송영옥, 천경자, 피카소, 앤디 워홀 등의 화가와 그림수집의 일화와 메세나 및 봉사정신을 강연했다.
『이중섭 평전』을 쓴 최열 미술평론가의 ‘이중섭의 인간 이중섭과 예술성’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2017년 7월에는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 및 영암의 하정웅미술관을 관람하며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체험활동을 실시하였다.
한편, 수림문화재단은 중앙대학교 이사장으로 22년간 재직한 김희수 선생(1924~2012)이 2009년 설립하였다. 수림문화재단은 교육과 문화입국을 목표로 ‘북촌뮤직페스티벌·수림문화예술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전·수림문화재단 인문학 아카데미·수림문학상·임방울 국악제·전주세계소리축제·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등 40여 행사를 주최·후원하고 있다.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이중섭 김병기 탄생 100주년 기념 미술대회
태경 김병기 화백과 교류를 주선하며 10여 차례 작업실을 찾아갔다. 수림문화재단 하정웅 이사장, 동경한국학교 무용교사 박경란, 오충공 감독, 구상 선생 딸인 구자명 소설가 김의규 조각가 부부 외 지인들도 시간을 함께했다. 김화백을 만난 이들은 가슴 벅찬 감동으로 한동안 시간이 정지되는 느낌이라 정말 고맙다고, 김화백과 다시 만날 약속을 주고받았다.
수림문화재단 동교 김희수기념아트홀에 전시된 서구식 현대적 기법의 춤을 창작하고 공연한 최초의 인물로 8·15해방 이전의 한국무용계를 주도했던 무용가 ‘최승희 사진전’을 찬찬히 감상하며 최승희 사진을 보면서 “어글어글 잘 생겼다.”며 평안도 사투리로 70여년의 과거를 눈앞에 펼쳐 놓은 듯 말씀하였다.
망우리공원 이중섭 묘지를 찾아가자면 나는 망우리 가지 않을 이유가 있다며 뒤로 미뤘다. 김병기 화백이 1947년 월남한 계기가 장안의 미인이라 소문난 서모 정충실 다이아몬드 권총강도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그 서모 정충실 묘지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남아 있다
또한 노산 이은상 씨앗을 낳아 끝뫼 김말봉 소설가의 도움으로 정리한 작은댁 묘지도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 정부 수립 후 평양에서 시인 백석의 생활, 윤동주 시인의 숭실고보 시절 기억 등 이제는 그 어느 누구도 전할 수 없는 귀중한 증언을 머리 하얀 소년이 어제 일처럼 말씀을 이어갔다. 오장환, 황순원, 김광섭, 김광균, 조지훈, 박인환 등 작가들과 사귐을 말씀하였다. 시인 구상과의 만남은 이중섭 화가를 통해서였다. 시인 구상과 김병기 화백은 이대원 화가의 단골집인 인사동 ‘선천집’에서 김광균, 이중섭, 김이석, 양명문, 차근호 등과 자주 만나 광복 전후 남북관계 한국전쟁 전과 후의 어려움을 서로 위로하며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였다. 한국전쟁 시 종군화가와 작가로서 함께 조국의 운명을 열기 위해 고민하고 예술세계에 대한 격려와 뜻을 펼쳤다.

김병기 화백 평창동 작업실
대향 이중섭과 시인 백석과 구상과의 미남에 대한 말씀을 하였다. 세 분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미남으로 인정하였다. 백석은 구수하고 지성적이며 어수룩한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하였다. 백석 시인의 남과 북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삶과 예술을 높이 평가하였다. 시인 구상의 따뜻한 웃음으로 구도자적인 삶과 시와 사람을 구별하지 않은 만남은 지금도 본받고 싶다고 하였다. 시인 구상을 이중섭과 우리가 더 오래 사귀었다며 어디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며 친구들과 놀리면 구상 시인은 환한 웃음으로 답을 하였다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시인 구상의 딸인 구자명 작가와 사위 김의규 조각가, 수필가 임완숙, 소설가 홍행숙 등과 2018년 가을 찾아뵙고 석식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01세에 예술원회원이 된, 103세 현역 화가의 놀라운 이야기꽃의 향기에 취했다.
이중섭 화가의 생일(1916.9.16)과 김병기 화백(1916.4.10)의 생일 바뀌어 이제야 바로 잡았다. 고은 시인이 이중섭 평전인 『이중섭 그 예술과 생애』을 쓰기 전 김병기 화백과 대화 중에 4월 10일 김병기 화백의 생일을 이중섭 화가의 생일로 기록하여 지금까지 기념하였다. 필자가 망우리공원 인물들의 일화를 2018년 월간 《작은 책》에 연재하며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전은자 큐레이터에게 전화를 해, 김병기 화백의 말을 전했다. 이중섭 특별전도 4월 10일 기준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모든 일정을 9월 16일로 바꿔야겠다고 고마워했다. 이중섭 생일을 기록한 유일한 공식 문서인 제국미술학교 학적부 ‘생년월’ 항목에 ‘대정(大正) 5년(1916) 9월 16일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병기 화백은 동경에서 시인 이상, 서울에서 이중섭, 뉴욕에서 김환기 화가의 장례식을 주도한 애기도 엊그제 같게 이야기를 전한다

송곡여고 미술동아리활동 대향 이중섭 묘비 탁본
이중섭은 박수근과 권진규과 더불어 한국 현대미술을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서양화가이다. 평남 평원 부유한 농가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8세 때 평양 이문리 외가에 머무르며 평양종로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해 몸이 아파 휴학한 후 복학하며, 유학파 최초의 부부화가 임용련 백남순으로부터 미술지도를 받았다. 임용련은 예일대학교 미술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로 학생들에게 향토적인 주제에 의한 미의식을 가르쳤고 그의 부인 백남순 화가는 1923년 관동대학살 제노사이드를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조시비여자미술대학) 1학년 때 목격자로 중퇴하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하였다. 이는 이중섭의 화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무렵 일본에서 황소를 그리는 붐이 있어 그는 들에 있는 소를 관찰하며 스케치에 열중했고, 오산학교를 졸업할 때는 앨범의 서명란에 한반도를 그리고 현해탄에서 불덩이가 날아드는 그림을 그려 소동을 빚기도 했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 미술학교에 들어갔다가 문화학원에 재입학해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자유로운 경향을 공부했다. 이때 이정규, 김환기, 유영국, 김병기, 문학수 등과 사귀었다. 1938년부터 일본 추상 그룹인 미술창작가협회에 참여했으며 1941년에는 협회상인 원명 조선예술상인 태양상을 받았다. 그해 김환기, 유영국, 문학수 등과 서울에서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창립전을 가졌다. 프랑스 유학을 원했으나 형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1943년 귀국하여 2년 후 문화학원 후배인 야마모토 이남덕과 결혼하여 원산에 정착해 살면서 8·15해방을 맞았다.
1946년 북조선미술동맹에 가입하여 절친인 시인 구상의 시집 『응향凝香』 표지그림을 그린 후 구상의 사건에 연루되어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 뒤 불우아동들의 무료강습소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1950년 겨울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부산, 서귀포, 통영 등지로 전전하며 피난살이를 했다.
1952년 UN군부대 부두노동을 하며 양담뱃갑을 모아 은지화를 제작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고 이듬해 부인을 만나러 일본에 1차례 건너갔다 온 것을 제외하고는 만나지 못했다. 궁핍과 고독의 나날을 보내면서 종군화가로서 몇 차례 단체전에 출품했고 1953년에는 통영에서 유강렬과 함께 지내며 다방에서 40점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듬해 진주를 거쳐 상경했고 박생광의 초대로 진주로 내려가 작품 활동을 했다.

박순녀 소설가 친필 제공
서울 서촌 누상동에 거주하면서 국방부, 대한미술협회 공동주최의 대한미협전에 출품했다. 1955년에는 미도파 화랑과 대구의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해 7월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 대구의 성가병원에 입원했다. 친구들의 배려로 여러 병원으로 옮겨 다니며 치료해 얼마간 호전되었으나 무단으로 퇴원한 후 불규칙한 생활로 병세가 악화 되어 1956년 9월 6일 적십자병원에서 일본에 부인과 두 아들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
대표작으로 <아이들과 물고기와 게>·<싸우는 소>·<흰소>·<투계> 등이 있다.
무연고자 주검으로 3일 동안 시체실에 누워 있다. 김광균·김이석·구상·김병기 어느 분이 제일 먼저 이중섭의 주검을 확인하였는지 설이 무성한데, 김이석 소설가의 부인 박순녀 소설가는 화가 황염수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중섭 화가에 대한 도우미는 한국전쟁 월남 이후 운명할 때까지 결정적 일에는 절친 시인 구상, 실제 뒤에서 도움을 많이 준 이는 평양종로보통학교 1년 선배 김이석 소설가로, 박순녀 소설가의 증언은, 말이 없는 김이석 소설가도 술에 취하면 ’시인 구상‘ 몇 번을 반복하며 부르다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죽은 뒤에 현재의 이중섭 화가의 명성을 드높인 이는 시인 구상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이중섭 화가의 부인 이남덕 여사가 있는 사실만 이야기하라고 할 정도였다.

유골은 셋으로 나누어 망우리공동묘지에 안장과 일본 부인에게 1년 뒤 시인 구상에 의해 전해졌고, 박고석 화가가 보관하다 정릉 골짜기 소나무 밑에 뿌려졌다.
전봇대 / 정종배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달동네 정착촌에
나무와 시멘트와 철제의 전봇대
셋이서
다정히 자리를 지키며
전깃줄로 전기만 공급하지 않는다
한묵 박고석 이중섭 세 화가의 정릉골 이야기도 불을 켜 전해준다
이중섭 유골 일부를 안고 온 박고석 화백이
정릉 솔밭에 뿌리기 전
박화백의 부인이며 건축가 김수근의 누나인 김순자 의상디자이너가
대향의 유골을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대 봤다는 신문 기사에
평양종로보통학교 이중섭과 동기인
1916년 생 태경 김병기 화백은
2017년 박고석 화백 탄생 100주년 특별전
현대화랑 오픈식에 초대를 받았지만
평창동 작업실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축하하고 참석하지 않는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시인 구상과 장조카 이영진씨가
자리 잡은 이중섭 유택 안
조각가 차근호가 1957년 제작한 묘비에
화가 한묵은 대향이중섭화백묘비라고 새겼다
전봇대가 재개발에 사라져도
세 화백의 우정은
청수장 물소리와 끊어지지 않는다
대향 김병기 화백 평창동 작업실에서 일화를 소개한다. 남편인 박고석 화백이 대향 이중섭의 유골을 종이에 싸 와, 이것이 무엇인지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김병기 화백이 “에이 실제 그랬더라도 지금 와서 신문에 낼 이유가 없다”며 박고석 화백의 부인 김순자 의상디자이너의 대담 기사를 읽다, 오늘 박고석 화백 탄생 100주년 특별전에 초청을 받았으나, 가지 않겠다며 아쉬워하였다. 김순자 여사는 김수근 건축가의 누나로, 가난한 화가인 매형과 각별한 정으로 김수근이 타계하기 3년 전인 1983년 명륜동 집을 지어 선물했다.

소설가 박순녀 친필 제공
묘역을 뒤덮고 있는 소나무는 대향이 평소 즐겨 불렀다는 독일민요 <소나무>를 생각해, 절친인 시인 구상과 장조카 이영진씨가 심었다. 1956년 대향의 묘를 쓸 때 형님 따라 죽겠다고 구덩이에 쓰러지던 조각가 차근호 제작으로 1957년 묘비가 세워졌다.
1960년 수유리 4.19혁명기념탑 공모 문제로 조선일보에 유서를 보내고 자살한 차근호 조각가의 무덤도 1964년 차근호와 동향인 평양출신 이병일 영화감독 주선으로 망우리공동묘지에 썼으나, 그 위치나 행방이 현재까지 묘연하다.
2024년 9월 이중섭 묘역은 소나무는 물론이고, 굶어 죽은 대향을 위로하듯 자생하던 구황 열매 개암나무를 비롯하여, 사연 있는 나무들도 사라졌다. 묘역을 확장하며 석축으로 둘러싸 어른들의 풍정이 넘치던 예전의 고졸하던 묘지가 추억으로 남게 되어 답사하는 발길이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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