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3년 9월 5일 백작 송병준 신문광고
〇백작 송병준 씨. 송병준 씨 2일 이래 행방불명 동경 구정구내 행정 모여관에 유숙하는 조선일보사장 송병준 백작은 2일 이래 행방을 알 수 없다더라(4일 오후 대판 급 전보) - 조선일보 1923. 9. 5
〇‘삼가 알립니다. 본인의 부친(백작 송병준 씨)이 동경 여행을 하는 중 현장에 있었던 바로, 이번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천재지변 즉 관동대지진에 안전하고 무사히 지나간 것은 보통 사람과 지인 친구 모든 이들의 돌아볼 은혜로운 염려 덕분에 말미암아 자식으로서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이에 지면에 삼가 감사를 표합니다. 송종헌 고’ - 조선일보 1923. 9. 10
〇‘삼가 알립니다. 본회 회장 송병준(친일, 매국수작) 씨가 동경 여행 중 금번 진재에 무사하신 전신을 접하였기에 이에 삼가 알리니 회원 여러분은 안심하심을 경건히 요구합니다. 조선교풍회’ - 조선일보 1923. 9. 10
다음 날에도 <조선소작인 상조회 본부> 이름으로 본회 회장 송병준 씨에 대한 같은 내용의 광고가 실렸다. - 조선일보 1923. 9. 11
이 광고와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린 뒤, 신고가 들어왔다며 심사에 들어간다는 연락이 왔다 신문광고에 실린 내용을 올렸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라 반문하였다 며칠 뒤 혐오의 글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는 답이었다
지금도 반민족 행위 친일 분자들이 은밀하게 드러내놓고 비웃으며 암약을 하고 있다
〇‘한말 내부대신 민영달 아들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때 피살당한 것을 뒤늦게 안 조선총독 사이토 미노루가 민영달을 찾아가 사죄하였다.’ - 동아일보 1982. 9. 1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1923년 9월 2일 관동대진재 자경단과 학살령 페북에 올렸다. 삭제하였다. 폐북?에서 삭제를 당했다고 글 꼭대기에 한 줄 쓰고 다시 올렸다. 맨 뒤엔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암약하는 대한민국 민낯이라고 썼다. 아직 삭제 당하지 않고 있다. 폐북?이라 써서 그런가?
1923년 9월 5일 백작 송병준 신문광고 오늘도 또 당할까? 기대 고대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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