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9월 10·11일 의연금 모집과 부산부두 귀국 동포

정종배 2025. 9. 10. 21:42

1923년 9월 10·11일 의연금 모집과 부산부두 귀국 동포

동경지방이재동포구제회 발기 구급의 의연 모집에 대해서

〇휴지통. “동경의 참혹한 혹한 진재에 대하여 동정을 표하고 힘자라는 데까지의 원조를 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의미로 좋은 일이겠다

그러나 요전 서선지방에 비참한 수해가 있을 때는 본체도 않던 놈들까지 제가 인정 많은 사람을 대표한다는 듯이 날뛰는 것은 좀 괴이쩍은 걸 월전까지 철이 나지 않았다가 별안간 동경 지방 지진으로 정신이 났다하면 그처럼 경사로운 일은 없겠지

이번 동경지방 지진이 생김으로 우리 조선사람에게 이익이 있다하면 이것 한 가지는 이익이라할까 만일 그자들이 여전히 총독부에 곱게 보이기 위하여 날뛰는 것이라하면

아아 이 세상은 철저히 개벽 되어 버리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라고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상황을 알고 있지만 밝히지 못하는 상황을 함축했다

〇일본 신석[新潟]현의 어느 수도공사에 품팔이를 하던 조선인 노동자 31인이 지난 9일 마산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 동아일보 1923. 9. 10

〇본사 특파원 동경에 본사 특파원 재외 동포 위문회 파견원 리상협 씨는 10일 무사히 동경에 도착되었다는 전보가 있었다

〇중국에 전학하려는 은시세에 주의하라 중국 유명학교의 일 년 동안 학비와 기숙사비를 소개하여, 있는 집의 행태는 100년 전에도 주변을 살피지 않았다

〇노동 갔던 사람들이 들어와 부산 부두는 귀국동포로 혼잡하다 더욱이 7일부터는 일본관서 지방에서 노동을 하던 동포들이 당국의 “귀국 명령”으로 인하여 연일 배마다 백여 명씩 무료승차 승선의 편을 조차 부산에 상륙되나 본시 그날 벌어 그날 사는 노동자들이므로 상륙하여부터 즉시 “배고프다”는 타령이 일어나도 도저히 구제할 방법이 없음으로 아직은 각 관공서의 주선으로 밥을 지어 먹이며 한편으로는 만철에 교섭하여 무료승차권을 배부하여 각각 귀향을 시키려하나 만철에서는 아직 쾌락이 없음으로 더욱이 대혼잡을 이루는 중이라더라

〇동경지방이재조선인구제동정금모집 사무소는 경운동전도교당내(본사에서도 취급) 기한은 본월 말일까지 금번 구제회의 사무 보는 기한은 9월 말까지로 하였으나 구제는 일시가 바쁜 터이므로 동정하실 이는 늦어도 일주일 안으로 가져오기를 바란다더라

〇이재지 동포의 통신을 어제부터 온다 이재민의 통신을 더 원만하게 교섭할 차로

체신국에서 소도[小島] 부사무관이 그저께 밤에 동경으로 출발하였고 오늘도 이재민의 전보가 많이 올 터이다

〇대판 방면에서 노동하던 우리 동포의 일부분은 요새 동경대지진으로 인하여 생계를 구할 수 없어서 지난 8일 오후 3시 목포에 입항한 궁도환으로 150명이 귀국하였다는데 그중에 유학생도 많이 있다더라 - 동아일보 1923.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