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랑 김윤식 75주기 추모식을 준비하며
-국악인들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 공연이 이뤄지길 바라며

1950년 2월 망우리 안석영 장례식 때 영랑 사진
시인 영랑 김윤식 75주기 추모식이 다가온다. 오는 9월 29일 월요일 오전 10시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망우공간 <미디어홀>에서 치른다. 주최는 중랑구청, 중랑문인협회, 김영랑 시를 사랑하는 모임 등이다. 중랑구청 망우리공원과 운영팀에서 추모식을 주도하여 개최한다.
시인 영랑 김윤식은 음악에 대한 자질과 사랑이 대단하다고 알려졌다. 서양음악은 물론이고 국악에 대한 조예가 깊을 뿐 아니라, 국악인에 대한 예우로, 당대의 판소리 명창들이 강진읍 영랑의 사랑채에 초청을 받아 판을 함께하는 시간을, 대단한 영예로 알았을 정도였다.
작년 9월 재이장 추모문화제 때는, 국악 판소리 공연을 염두에 두었으나, 재이장에 관련 행사가 주여서 제안하지 않았다.
올해는 판소리 공연이 이뤄지길 바랐다. 구청 행사 관계자들의 계획에는 국악 공연이 없었다. 일주일 전 팀장에게 제안했다. 최고 수준 공연을 원하였다. 공연료 책정은 중고등학교 동아리팀도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오늘 오후 배일동 명창과 통화했다. 외람되고 무대책의 극치로 지금도 뒤꼭지가 부끄럽다. 강진 영량 생가 사랑채 판소리 공연만 생각한 행동을, 조심스레 툭 터놓고 너그러운 통화 뒤에, 저녁에 문자로 선약이 있어 추모식에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알렸다. 영랑 시인의 판소리 사랑에 대한 면으로는 재능기부 할 수 있으나, 예인들을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으면 공연이 이뤄지지 않아도 되지 싶다. 배일동 명창께 다시 한번 죄송하고 용서를 빈다.
예향 목포 국악 유학 중인 판소리 인재 임사랑의 아부지와 통화했다. 그 아부지 임대균은 장훈고 제자로 미학을 전공하였다. 임사랑 소리꾼은 전국 초등부 경연대회 대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뉴스와 방송에도 출연했다. 예향 목포 판소리 부흥과 교육과 관광 등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국악에 대한 관심 사랑이 넘치는 아부지는 명인들의 공연 사진 촬영 및 숨은 지방 소리꾼의 얘기와 옛 녹음테이프를 복원하는 일에도 일가를 이뤄가 주변의 기대가 드높다.
내년부터 시인 영랑 김윤식 추모식에 판소리 공연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1954년 11월 14일 한남동 이태원 경계 가매장한 영랑을 망우리로 이장하며 당대 문인들이 개최한 이장식
작년 9월 재출간한 『아버지 그립고야』 개정증보판(김현철,예다인)의 7장 「음악을 향한 정열과 집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7. 음악을 향한 정열과 집념
독립만세운동 사건으로 감옥에 있던 영랑은 출옥하자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예술대학 성악과 진학을 꿈꾸었다. 웅장하고 풍부한 타고난 성량, 음악에의 예리한 감각과 자신감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음악도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조대로 영랑의 부친은 성악가를 ‘광대’ 취급했기에 결사반대했다. ‘집안의 장남이 광대가 되다니. 네가 계속 성악가가 되겠다면 학비를 끊겠다’는 부친의 강경함에 영랑은 결국 성악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성악가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영랑은 평생 음악 속에서 살았다. 레코드판에 실린 서양 클래식 음악과 각종 국악을 망라한 음악 감상과 바이올린, 거문고, 가야금 연주 등은 영랑의 일상생활이었다.
영랑이 부르는 남도 판소리는 당시 명창들도 놀랄 정도였다. 또 거문고, 가야금, 북, 양금의 연주 실력은 전문가를 뺨치는 수준이었다. 당대의 명창 임방울, 박초월, 이화중선, 이중선, 임유앵, 임춘앵, 김소희, 박귀희 등 국악의 대가들이 영랑의 초청으로 강진 생가를 방문해서 영랑의 북장단에 맞춰 소리를 했는데 이 명창들은 저마다 빼어난 영랑의 북 연주 실력을 믿고, 고수 없이 홀로 왔다고 한다.
그분들 앞에서 영랑은 흥에 겨워 틈나는 대로 거문고나 가야금을 탔는데 그때마다 명창들은 그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영랑이 북채를 들어 흥겹게 명창들의 판소리에 장단을 맞추다가도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등이 흘러나올라치면 북채를 얼른 내려놓았으니 훗날 그 이유를 묻는 가까운 벗에게 “그런 속된 판소리에는 격 높은 고수들은 손을 대지 않는 법”이라고 했단다.
영랑이 가장 잘 부르던 시조는 황진이의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였다. “실버들처럼 능청거려 휘늘어지는 한국의 정서와 멋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지닌 서정시인이 이 나라 시인 중에 영랑 말고 또 있는지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라던 평론가 이헌구의 글이 떠오른다.
이렇게 영랑은 서양 고전음악뿐 아니라 특히 국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조예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시의 언어를 음률화해서 시를 낭송할 때면 노래를 부르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시인이었다.
미당 서정주는 문학 선배 영랑에게서 들은 얘기라면서 “언니 이화중선(1898 ~ 1943)보다 아우 이중선(1900 ~ ?)의 소리가 촉기 있다.”라고 해서 자신도 두 자매의 판소리를 감상해 보았더니 역시 그렇더라고 했다.
필자가 대학 시절 한 학기의 학비를 도와준 미당을 공덕동 자택으로 인사차 찾아뵈었을 때 들려준 회고담이다. 원래 ‘촉기’라는 단어는 생기 있고 재치 있는 기상이라는 뜻이지만, 촉기가 무엇이냐는 미당의 질문에 영랑은 “같은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 데에 떨어트리지 않는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을 말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더란다.
영랑은 종종 어린 자식들을 네 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무릎 위에 앉히고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등 서양 고전음악을 비롯해서 거문고와 가야금산조, <춘향전>, <흥부전>, <토끼전>, <적벽가> 등 국악을 함께 감상했다.
이는 자식들 모두가 서양고전음악과 국악에 귀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 영랑생가 사랑채의 한 방에는 수많은 세계적인 작곡가들 작품에다 국악 판 등이 엄청 많이 쌓여 있었다.
지금은 CD 하나에 다 들어가지만, 당시는 레코드판 중에서도 길다는 LP판이라는 게 한쪽 면이 5분밖에 안 돼 앞뒤 다 해서 겨우 10분이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처럼 장장 1시간 10분이나 되는 긴 곡은 레코드 7장을 한 개의 앨범으로 묶어야 교향곡 하나를 들을 수 있는 시대였다.
서울에서 러시아의 세계적인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공연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도쿄에 세계적인 교향악단이 왔을 때에도 영랑은 어김없이 논밭을 팔아서까지 배편으로 현해탄을 건너 도쿄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래서 당시 문인 친구들은 영랑이 서울에 나타날 때면 이번에는 무슨 음악회가 열리느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비행기 여행은 생각지도 못할 시절이었으니 음악 감상을 위해 배를 타고 일본을 왕래하던 영랑의 열정에 감탄할 뿐이다.

AI 활용





영랑의 시 <묘비명(墓碑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전에 이다지 외로운 사람
어이해 묘 아래 빗돌 세우오
초조론 길손의 한숨이라도
헤어진 고총(古塚)에 자주 떠오리
날마다 외롭다 가고말 사람
그래도 뫼 아래 빗돌 세우리
'외롭건 내 곁에 쉬시다 가라'
한(恨) 되는 한마디 삭이실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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