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랑 김윤식 75주기 추모식

2025년 9월 29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시인 영랑 김윤식 75주기 추모식을 치렀다.
1부는 망우문화마당 2부는 김영랑 묘역에서 각각 열었다.
1부 식전 공연으로
김혜선 오카리나 연주자가 시인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안치환 노래를 공연하였다.
중랑구청 류경기 구청장은 추념사에서 시인 김영랑 묘역을 재이장한 지 벌써 1년이라며,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들의 재이장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인 김영랑을 좋아하는 사람들>(회장 홍성례)의 수화로 전달하며 「모란이 피기까지는」시를 낭송하였다.

2부에서는
<별라밴드>의 판소리 한마당과 <시인 김영랑을 좋아하는 사람들>(회장 홍성례)의 「오메 단풍들것네」와 「북」 등 시 낭송 공연이 펼쳐졌다.
유족으로는 시인의 막내딸 김애란 여사, 장손인 김우식 종손부인 이윤정 부부, 장손녀인 김혜경 교수 등이 참석했다.
추모식 준비와 진행과 마무리를 깔끔하게 한 중랑구청 관계자들의 노고와 청명한 가을 멀길 마다하지 않고 귀한 시간 추모식을 함께 한 이와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시인 김영랑은 강진 생가 사랑채를 음악으로 채웠다. 서양 고전음악과 국악을 사랑하였다. 서양 고전음악 공연을 좋아하여 논밭을 팔아 동경과 서울을 오갔다는 풍문까지 전해진다. 철 따라 국악인들의 판을 펼쳤다. 당시 남도 정서와 풍류를 곱게 즐긴 메세나 선구자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시인 김영랑의 추모식에 판소리 공연이 펼쳐져 다행이라 생각하며 시인 김영랑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셋째 아들 김현철 선생이 쓴 『아버지 그립고야』 개정증보판(예다인,2024) 7번째 꼭지 「음악을 향한 정열과 집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7 음악을 향한 정열과 집념
독립만세운동 사건으로 감옥에 있던 영랑은 출옥하자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예술대학 성악과 진학을 꿈꾸었다. 웅장하고 풍부한 타고난 성량, 음악에의 예리한 감각과 자신감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음악도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조대로 영랑의 부친은 성악가를 ‘광대’ 취급했기에 결사반대했다. ‘집안의 장남이 광대가 되다니. 네가 계속 성악가가 되겠다면 학비를 끊겠다’는 부친의 강경함에 영랑은 결국 성악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성악가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영랑은 평생 음악 속에서 살았다. 레코드판에 실린 서양 클래식 음악과 각종 국악을 망라한 음악 감상과 바이올린, 거문고, 가야금 연주 등은 영랑의 일상생활이었다.

영랑이 부르는 남도 판소리는 당시 명창들도 놀랄 정도였다. 또 거문고, 가야금, 북, 양금의 연주 실력은 전문가를 뺨치는 수준이었다. 당대의 명창 임방울, 박초월, 이화중선, 이중선, 임유앵, 임춘앵, 김소희, 박귀희 등 국악의 대가들이 영랑의 초청으로 강진 생가를 방문해서 영랑의 북장단에 맞춰 소리를 했는데 이 명창들은 저마다 빼어난 영랑의 북 연주 실력을 믿고, 고수 없이 홀로 왔다고 한다.
그분들 앞에서 영랑은 흥에 겨워 틈나는 대로 거문고나 가야금을 탔는데 그때마다 명창들은 그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영랑이 북채를 들어 흥겹게 명창들의 판소리에 장단을 맞추다가도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등이 흘러나올라치면 북채를 얼른 내려놓았으니 훗날 그 이유를 묻는 가까운 벗에게 “그런 속된 판소리에는 격 높은 고수들은 손을 대지 않는 법”이라고 했단다.
영랑이 가장 잘 부르던 시조는 황진이의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였다. “실버들처럼 능청거려 휘늘어지는 한국의 정서와 멋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지닌 서정시인이 이 나라 시인 중에 영랑 말고 또 있는지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라던 평론가 이헌구의 글이 떠오른다.
이렇게 영랑은 서양 고전음악뿐 아니라 특히 국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조예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시의 언어를 음률화해서 시를 낭송할 때면 노래를 부르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시인이었다.
미당 서정주는 문학 선배 영랑에게서 들은 얘기라면서 “언니 이화중선(1898 ~ 1943)보다 아우 이중선(1900 ~ ?)의 소리가 촉기 있다.”라고 해서 자신도 두 자매의 판소리를 감상해 보았더니 역시 그렇더라고 했다.
필자가 대학 시절 한 학기의 학비를 도와준 미당을 공덕동 자택으로 인사차 찾아뵈었을 때 들려준 회고담이다. 원래 ‘촉기’라는 단어는 생기 있고 재치 있는 기상이라는 뜻이지만, 촉기가 무엇이냐는 미당의 질문에 영랑은 “같은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 데에 떨어트리지 않는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을 말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더란다.
영랑은 종종 어린 자식들을 네 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무릎 위에 앉히고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등 서양 고전음악을 비롯해서 거문고와 가야금산조, <춘향전>, <흥부전>, <토끼전>, <적벽가> 등 국악을 함께 감상했다.

이는 자식들 모두가 서양고전음악과 국악에 귀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 영랑생가 사랑채의 한 방에는 수많은 세계적인 작곡가들 작품에다 국악 판 등이 엄청 많이 쌓여 있었다.
지금은 CD 하나에 다 들어가지만, 당시는 레코드판 중에서도 길다는 LP판이라는 게 한쪽 면이 5분밖에 안 돼 앞뒤 다 해서 겨우 10분이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처럼 장장 1시간 10분이나 되는 긴 곡은 레코드 7장을 한 개의 앨범으로 묶어야 교향곡 하나를 들을 수 있는 시대였다.
서울에서 러시아의 세계적인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공연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도쿄에 세계적인 교향악단이 왔을 때에도 영랑은 어김없이 논밭을 팔아서까지 배편으로 현해탄을 건너 도쿄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래서 당시 문인 친구들은 영랑이 서울에 나타날 때면 이번에는 무슨 음악회가 열리느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비행기 여행은 생각지도 못할 시절이었으니 음악 감상을 위해 배를 타고 일본을 왕래하던 영랑의 열정에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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