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0월 4일 김동환 안창남

파인 김동환 장편서사시 승천하는 청춘 경성신문학사 1925.12
동경진재지방생존동포 조선총독부 출장소 조사 제8보
습지야수용(560명)
〇김동환 23 경성군 오촌면 수성리, 시인 「승천하는 청춘」
〇오해모 37 창원군 진북면 추0리 – 조선일보, 1923. 10. 4
〇오해모는 징역 1년 반
진재 중에 폭발물을 가지고 황천 부근을 배회하였다고, 폭발물 취체 규칙 위반으로 동경에 지진이 있던 9월 2일의 혼란한 중에 다이나마이트 11개와 뇌관 5개를 가지고 황천[荒天] 부근을 배회하던 경남 출생 오해모(27)에게 대하여 지난 3일 폭발물 취체법 위반으로 징역 일 년 반의 판결이 있었다더라(동경전보) - 조선일보 1923. 11. 5

〇안창남씨 작고 부산발 고생은 했으나 원기는 왕성해
일시 사거설을 전하던 비행가 안창남 씨는 10월 3일 부산에 입항하는 창경호로 상륙하여 오전 9시에 부산을 떠나는 특별 급행열차로 경성을 향하였는데 씨는 지진 중에 여러 가지로 고생을 많이 하였으나 원기는 매우 왕성하여 보이더라(부산 전화)
〇휴지통. 동경에서 지난 1일부터 화류계의 영업을 개시하였는데 동경의 진재 중 각 유곽의 주인들이 예기를 가두어 두었기 때문에 다수의 사상자를 내었을 뿐 아니라 유곽 그 자체도 도저히 인도상 허락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각 부인단체들이 맹렬히 운동하던 것도 수포로 돌아갔다. 품천[品川] 신숙[新宿] 판고[板橋] 등 각처 유곽에는 저녁때부터 사람들이 산과 같이 몰려들어 오후 7시 30분에는 벌써 만원이 되었는데 손님의 대부분은 노동자이었다고 한다

〇춘풍춘우 오백년을 궁문 앞에 마주 앉아 경복궁 옛 대궐을 굳게 지켜오던 한 쌍의 해태도 10월 2일 총독부를 새로 지은 일본사람들이 그곳에 있으면 걸리적거린다고 치워버려 이제는 이리저리 옮기어 천대받는 가엾은 몸이 됐다. 너의 몸통이 결박 지은 대로 거적을 쓴 채 참혹히 드러누워 있어 흰옷 입은 사람의 가슴도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 동아일보 1923. 10. 4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 - 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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