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서 우리는 감나무를 찾기 위해 애썼다. 화가 김용준이 김환기 김향안 부부에게 내준 그의 집 ‘노시산방’(수향산방) 터에 이제는 감나무밖에 남아 있는 게 없지만 그 감나무라도 좀 봐야겠다는 것이다. 그 감나무가 있는 집은 이미 다른 사람의 집이 되었다. 들어갈 수 없으니 멀리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도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감나무는 아직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고희동이 김환기의 주례를 섰다고 했다.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은 시인 이상의 부인이었다. 이 내용은 졸저 <춘곡 고희동>(도서출판 에디터·2014) 등에 이미 실려 있다. 그런데 위 다섯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성북동 골목 이야기를 하면서 뜬금없이 이름 있는 화가들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러기 전에 이 일대 골목 이야기를 해야 맞다. 물론 근대기에 이 동네가 부자 동네라고 알려진 이야기도 짚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성북동은 예로부터 ‘완사명월’이나 ‘완복지지’는 아니라고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 밝은 달빛 아래에 비단을 펼쳐놓은 형세로 이름을 날릴 귀인이나 부자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터이나, 흙이 두껍지 못해 그대로 드러난 땅으로 음풍영월을 즐기는 고관이나 부자들에게 알맞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양잠(선잠단지)이나 과수 재배(복숭아), 풍류업이 발달하였다. 나라에서 백성을 이주시켜 살게 했고 농사짓기가 어려운 산간 지대에 마전(천을 염색하거나 빨아서 볕에 바래는 일)권과 메주권(궁에서 쓰는 메주를 공급하는 권리)을 주어 그 일이 발달하게도 했다. 이런 자연 지리 덕분에 풍류객이 많이 찾아오고, 정치나 사회의 혼란을 피해 문인, 시객의 은거 수양처가 되기도 했다.
이런 성북동에 언제부터 문화, 예술인들이 찾아와 오늘날의 ‘인문학의 터전’을 이뤘을까? 사실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300~400명 정도가 사는 조용한 고을이었다. 그러던 것이 1930년대 후반 근대적 개념의 택지 조성이 이루어지고, 수도권 주거지가 확장되면서 이른바 ‘개량한옥’, 즉 집장사 집이 대거 들어서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량한옥업자 정세권도 성북동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도 했다.
1940년대에 성북동에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김용준, 김환기, 김향안(본명 변동림), 또 한용운, 전형필 등이 들어와 살거나 교류하게 된다. 사실 이때 들어와 살던 문화예술인들이 향후 성북동 인문학의 바탕을 이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뚜껑이 덮여 복개로가 된 성북천의 상류와 그 물길 따라 형성된 성북로는 나무로 치면 줄기가 되고 거기서 뻗어난 골목들은 가지가 된다. 그 가지들 하나마다 깊고 깊은 이야기들이 배어 있으니,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가지에 매달린 열매처럼 토실한 인문학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김환기는 부잣집 지주의 장남으로 목포 근해 안좌도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가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1937년), 훗날 자기 집을 내준 김용준은 그를 알아봤고 언론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변동림은 일본의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이상이 저세상으로 가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관부연락선을 타고 있었다.
건축가이자 천재 시인인 이상의 마지막을 지켜본 변동림이 딸 둘을 가진 이혼남 김환기와 부부로 연을 맺은 이야기는, 부모의 극구 반대에 저항해 가출과 함께 이상과 극적인 결혼을 한 만큼이나 큰 사건이었다.
문득 이상이 도쿄로 가서 폐인이 되기까지 기거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중요하지도 않는데 궁금하다. 변동림이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이상의 죽음을 지켜볼 때 김병기란 사람도 옆에 있었다. 수년 전 나는 이상이 기거했다는 신주쿠의 김병기 하숙집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는 ‘센베이’ 과자로 유명한 일본의 나카무라야 본점이 있는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 김병기가 기거를 했고 이상은 거기에 얹혀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던 김병기는 5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가 살았는데 후에 변동림(김향안)과 김환기의 뉴욕 생활을 지켜봤다고 했다. 사람의 연이란 이렇게도 얽힌다.
그나저나 변동림과 김환기가 어떻게 만나 평생 부부로 연을 맺었을까? 노리다케 가쓰오라는 일본인 잡지 편집자(후에 시인)가 있었다. 노리다케는 ‘이상’의 부인이었던 변동림을 끔찍이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변동림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노리다케는 잔머리를 굴려, 변동림을 꼬셔 집으로 오게 할 목적으로 김환기까지 불러 두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독자들은 짐작했겠지만, 김환기의 열정적인 눈빛이 변동림에 가서 꽂히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잔머리 굴리지 말고 좋아하는 여성이 있으면 늦지 않게 고백을 하든지, 치맛자락을 붙잡든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계속)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