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강 계곡에서/정종배
20년 지기 교직 겨울 모임에서 찾아간
소금강 계곡에서
말의 힘에 짖눌린다
30여년 전
고3 대입 관동팔경 문제 풀며
입시공부 피곤을 덜어내는 양념으로
이라크가 쿠웨이트 폭격한 날
영어과 이선생님과 함께한
소금강 겨울산행 이야기를 하였다
4년 후 늦은 가을
불행한 소식이 가슴을 후벼팠다
서울대 중문과 4학년 2학기
군 입대 기념 과 동기 넷이서
소금강 산행하며
구룡폭포 기념사진 찍다가
한 명이 실족하여
소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키는 작지만 의협심이 강한 정현이가
뛰어들어 둘이 붙들고 헤어나지 못했다
남은 친구 둘은 쩔쩔매고 무서워 발만 동동 구르다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두 청년은 허무하게 짧은 생을
소금강에서 마감했다
죄인이 된 두 친구는
해가 지고 날이 추워
등산객 손을 잡고 하산하고
다음 날 밝기 전에 사고 현장에 당도한
어머니 첫 마디가
네 아들이 죽을 곳이 아니다며 졸도한
물은 깊지 않았다
이 아픔 뒤론 애들에게 어떤 말도 쉽게 하지 못했다
무심결에 던진 말 한 마디가 흉기가 되지 않기 위해
헛말을 아꼈지만 지금까지 쉽지 않다
소금강 계곡의 물소리는
네 영혼을 위로하듯
얼음장 밑으로 한결같이 흘러간다
가래열매 몇 개를 주었다
손에 쥐고 기도한다
정현아 미안하고 사랑한다
생명이 다해서도 가까운 분들에게
뜻깊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갈 곳 없이 떠도는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