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소금강 계곡에서

정종배 2019. 1. 15. 17:08

 

소금강 계곡에서/정종배

 

 

20년 지기 교직 겨울 모임에서 찾아간

소금강 계곡에서

말의 힘에 짖눌린다

30여년 전

고3 대입 관동팔경 문제 풀며

입시공부 피곤을 덜어내는 양념으로

이라크가 쿠웨이트 폭격한 날

영어과 이선생님과 함께한

소금강 겨울산행 이야기를 하였다

4년 후 늦은 가을

불행한 소식이 가슴을 후벼팠다

서울대 중문과 4학년 2학기

군 입대 기념 과 동기 넷이서

소금강 산행하며

구룡폭포 기념사진 찍다가

한 명이 실족하여

소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키는 작지만 의협심이 강한 정현이가

뛰어들어 둘이 붙들고 헤어나지 못했다

남은 친구 둘은 쩔쩔매고 무서워 발만 동동 구르다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두 청년은 허무하게 짧은 생을

소금강에서 마감했다

죄인이 된 두 친구는

해가 지고 날이 추워

등산객 손을 잡고 하산하고

다음 날 밝기 전에 사고 현장에 당도한

어머니 첫 마디가

네 아들이 죽을 곳이 아니다며 졸도한

물은 깊지 않았다

이 아픔 뒤론 애들에게 어떤 말도 쉽게 하지 못했다

무심결에 던진 말 한 마디가 흉기가 되지 않기 위해

헛말을 아꼈지만 지금까지 쉽지 않다

소금강 계곡의 물소리는

네 영혼을 위로하듯

얼음장 밑으로 한결같이 흘러간다

가래열매 몇 개를 주었다

손에 쥐고 기도한다

정현아 미안하고 사랑한다

생명이 다해서도 가까운 분들에게

뜻깊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갈 곳 없이 떠도는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인데

'정종배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의 미  (0) 2019.01.15
능파대凌波臺  (0) 2019.01.15
중흥사  (0) 2019.01.13
저녁노을  (0) 2019.01.12
  (0) 2019.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