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환시인/정종배
이른새벽 봄눈이 내렸다
정년 1년 남았지만 오는 2월말
명퇴하신 고재호선생님 얼굴 보는
점심 약속 지키려
인사동 눈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같은 학교 근무하며
늘 빚을 진 마음의
전교조 해직교사 고재호 박일환 선생님과
정년 4년 남은 박형순 선생님
넷이서 오랜만에 만났다
박선생님 시집과 시해설서 두 권을 받았다
나는 진관사 후문 계곡 가래를 선물했다
간단한 된장비빕밥에 막걸리 몇 잔을 마셨다
귀천에서 전통차를 마셨다
화봉문고 전시장도 들렸다
고재호 선생님은 국립중앙박물관 교사초청 마지막 연수하러 가시고
셋이서 두부를 앞에 두고 막걸리 몇 병 더 축냈다
나는 아름다운가게 종로책방
두 분은 몇 잔 더 드시겠다 헤어졌다
집에 들어 와 저녁 몇 술 뜨고
술기운에 바로 잠을 잤다
눈을 떠 핸드폰을 켜니
자정 무렵이다
집사람은 초등친구 7명과
1,2년 늦은 회갑여행 다낭으로 떠나 혼잠이라
눈치 보지 않고
내 멋대로 보내기 편하다
박일환선생님 메시지를 보았다
잘 들어 가셨느냐
둘이서 술을 더 마시고 헤어진 뒤
핸드폰을 잃어버려
박형순선생님 핸드폰번호 알려주시란다
번호저장 뒤적였는데
세 분 다 카톡은 주고 받는데
번호가 저장되지 않았다
5년 전에 핸드폰 번호를 실수로
몽땅 다 날려버렸다
번호가 입력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어 신기했다
세 분께 번호 알려 달라 메시지 보낸 뒤
박일환시인 시집 《등뒤의 시간》으로
삼경을 지새는데
주인 잃은 핸드폰 생각에 미치어
시가 함께 찾아 나서자는듯
눈 앞에 앞장선다
사는 곳이 서울에서
새벽을 제일 늦게 맞이하는 연서로라
눈밭이 그대로 남아있다
박일환 시인 시가
봄눈의 포근한 눈발로
내 가슴에 휘날린다
핧아주는 혀/박일환
갓 태어난 송아지를 혀로 핧아주는
어미 소의 축축한 눈망울 속에서
새끼 소가 천천히 뒷다리를 일으키고 있다
혀의 쓸모는 말을 할 때보다 핧아줄 때가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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