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이야기

박일환시인

정종배 2019. 2. 16. 02:25

 

박일환시인/정종배

 

 

이른새벽 봄눈이 내렸다

정년 1년 남았지만 오는 2월말

명퇴하신 고재호선생님 얼굴 보는

점심 약속 지키려

인사동 눈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같은 학교 근무하며

늘 빚을 진 마음의

전교조 해직교사 고재호 박일환 선생님과

정년 4년 남은 박형순 선생님

넷이서 오랜만에 만났다

박선생님 시집과 시해설서 두 권을 받았다

나는 진관사 후문 계곡 가래를 선물했다

간단한 된장비빕밥에 막걸리 몇 잔을 마셨다

귀천에서 전통차를 마셨다

화봉문고 전시장도 들렸다

고재호 선생님은 국립중앙박물관 교사초청 마지막 연수하러 가시고

셋이서 두부를 앞에 두고 막걸리 몇 병 더 축냈다

나는 아름다운가게 종로책방

두 분은 몇 잔 더 드시겠다 헤어졌다

집에 들어 와 저녁 몇 술 뜨고

술기운에 바로 잠을 잤다

눈을 떠 핸드폰을 켜니

자정 무렵이다

집사람은 초등친구 7명과

1,2년 늦은 회갑여행 다낭으로 떠나 혼잠이라

눈치 보지 않고

내 멋대로 보내기 편하다

박일환선생님 메시지를 보았다

잘 들어 가셨느냐

둘이서 술을 더 마시고 헤어진 뒤

핸드폰을 잃어버려

박형순선생님 핸드폰번호 알려주시란다

번호저장 뒤적였는데

세 분 다 카톡은 주고 받는데

번호가 저장되지 않았다

5년 전에 핸드폰 번호를 실수로

몽땅 다 날려버렸다

번호가 입력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어 신기했다

세 분께 번호 알려 달라 메시지 보낸 뒤

박일환시인 시집 《등뒤의 시간》으로

삼경을 지새는데

주인 잃은 핸드폰 생각에 미치어

시가 함께 찾아 나서자는듯

눈 앞에 앞장선다

사는 곳이 서울에서

새벽을 제일 늦게 맞이하는 연서로라

눈밭이 그대로 남아있다

박일환 시인 시가

봄눈의 포근한 눈발로

내 가슴에 휘날린다

 

핧아주는 혀/박일환

 

갓 태어난 송아지를 혀로 핧아주는

어미 소의 축축한 눈망울 속에서

새끼 소가 천천히 뒷다리를 일으키고 있다

 

혀의 쓸모는 말을 할 때보다 핧아줄 때가 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