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용성) 시집 '박꽃' 머리글 - 사십리- 단로 사십리, 이것이 내가 걸어온 좁고도 굽은 길이다. 다섯 살 먹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일곱 살 자피던 해에 어머니를 여읜 나는 꼬불꼬불한 소로 사십리를 친 외할머니의 여윈 손을 붙들고 걷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어느 산비탈에서 그들조차 작별하고 단영으로 가시덤불을 헤치기도 하고 의외에 좋은 동행을 얻어 실개천을 손잡아 건널 때도 있었다. 사십리, 먼 길은 아니지만 로방에 한숙을 경험하고 점촌에 밥을 빌은 적도 적지 않다. 이제 오십 고개를 바라보니 걸어온 길을 한번 회고하고 가까워오는 앞 고개를 넘으려 한다. 굽고 거치른 소로를 걷는 동안 나는 싱겁고 우스운 일이 많은 바른손 편만을 치우쳐 보며 걸었으나 때로는 왼손 편에 따르는 슬픔도 곁눈으로 보고 지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