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한국 근대가수 열전

정종배 2022. 8. 7. 08:54



한국 근대가수 열전

이동순 시인의 '한국 근대가수 열전'을 읽으며
반세기 너머의 추억을 반추한다

우리 집은 진주 정가 충장공파 집성촌인 고향 표산 마을에서 서울이나 광주 목포 도시가 아닌
호남 3년 가뭄 한 가운데
1968년 2월 21일 이삿짐은 도라꾸로
아홉명 식구들은 십리를 걸어서
학다리중고등학교 지금은 함평골프고등학교 옆 동네인 명암으로 이사했다

그해 음력 동짓달 초하룻날 밤 할아버지 17주기 제사를 모시고
음복 후 새로 차린 술상 앞에 노래자랑 시간이 펼쳐졌다
고향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안의 웃어르신 작은집 샛골 상매 하내 내외는 음복 후
곧바로 고향으로 밤길을 걸으셨다

징병으로 북간도로 끌려갔다 남북 분단 북한에 머물다 돌아온 학다리중앙국민학교 선생님 작은집 해남하내
징용으로 일본 홋가이도 탄광 막장에서 목숨 건 채탄을 한 우게큰집 3대 독자 마을이장 새마을지도자 임곡당숙
고향을 지키며 죽세공품 장인인 폐병걸린 큰집 첫째 철외당숙
서울살이 15년하고 귀향한 술꾼인 큰집 둘째 전주당숙
대구에서 10년 군대 생활 제대한 화투를 좋아한 큰집 셋째 신촌당숙
7년 전 서울에서 내려와 동네 점방과 이발관을 운영하며 술 한잔 하지 않는 큰집 넷째 여남당숙
나산중학 사회선생 사람좋은 작은집 기춘이당숙
화순탄광 기산연탄 공장을 운영하는 털털한 우게큰집 8대종손 종택이형님
월남에서 돌아온 귀신 잡는 해병대 제대한 빡센 큰집 5대종손 보현이형님
그리고 인민군에 뽑혀갔다 추석 전날 극적으로 내빼온 아부지

할매 하내 당숙과 당숙모 아부지 어매 형님 등이
유행가를 밤을 새 불러재켜
탱자나무 울타리를 뚫고서
마을 골목 휘젓고
안방의 문풍지를 흔들었다

구성진 목소리로 사회를 재미지게 노래소리 끊이지 않게 이끈 기춘이당숙
그리고 할매 당숙모 형수 아픈 엄마의 노래소리 처음으로 들었다
구경을 좋아하는 예순 넷 우리 할매 졸며 귀를 열어놓고 새벽을 맞이했다

이제는 구순이 내일모레 작은집 당숙모 한 분만 살아계신다
그 날밤 별들을 놀랬킨 노래소리 되새긴
'한국 근대가수 열전'을 펼쳐든 이번 주는 정말 귀한 시간이었다

일제와 남북 분단 6.25 독재정권 산업화 도시화 새마을운동 향도이촌 월남파병 등을
단숨에 허위허위 달려오며
그 생생한 현장이나 쉬는 시간 뒷풀이에
목청껏 외치거나 콧노래로 흥얼거린 노랫말과
그 노랫말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산 가수들의 굽이굽이 여정에 머리를 깊이 숙여 경의를 표한다

유행가의 가치를 온몸으로 연주하고 연구하여
대중에게 알려주는 이동순 선생님
오래 오래 건강을 지키시어
민족의 역사와 정서가 스며 있는
시와 유행가를 불러주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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