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위령의 종루 보수 및 추모문화제를 돕는 사람들
1923년 9월 8일·9일 일본진재 영화 상영
〇8일 조선일보 1면 ‘동경·횡빈의 전멸상태와 금후 경제계의 관측’
〇8일 동아일보 1면 ‘동경재변과 인심 반성할 기회’라고 실었다
〇일본대진재 영화 상영과 일본대학생 최동설
일본대진재 영화를 조선극장에서 상영하고 우리 독자는 할인이 있다. 동경 지방의 공전의 진재로 “불나라” “죽음의 무덤”이 된 수라장을 편답하며 두 명의 기사를 희생에 바치어서 박히인 동경진해영화는 조선극장 주인 황원균 씨의 활동으로 제일보가 조선극장에 도착하였다. 신문지상으로만 보와도 그 처참한 광경을 능히 생각할 수 있었거든 그 현장을 박히온 활동사진을 볼 때에 과연 우리의 감회는 어떠할까?
살을 나누고 뼈를 함께 보존하는 자질과 친족을 동경에 보내고 초조히 지내던 친족들의 궁금증도 이번 제일보로써 동경 참화와 진상을 능히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금 9일부터 매일 주야 2회로 13일까지 5일 동안 조선극장에 상영할 터인데, 낮에는 하오 1시 밤에는 하오 7시 30분에 개관을 할 터이며 특히 우리 동아일보 독자를 위하여 란에 넣은 우대권을 오려 가지고 가면 특등 1원 50전을 1원 20정에 일등 1원을 80전에 이등 80전을 60전에 삼등 50전을 30전에 각 등의 할인이 있겠으며 겸하여 “파라마운트” 회사의 문예영화도 함께 볼 수 있을 터 이라더라. -동아일보, 1923. 9. 9
〇27명은 무사 귀국하였다 80여 명이 동행하다가, 본적 서산군 안면도인 일본대학생 최동설(고남리 출신, 서울중동학교 졸업) 씨는 어제 9일 아침 경성에 들어왔는데(하략) -동아일보, 1923. 9. 9
태안군을 포함한 일제강점기 서산군의 일본유학생이 28명인데, 그 가운데 안면도 출신이 5명이었다. - 향토문화연구소, 1995, 『태안해안 국립공원의 마을 안면도 승언리』
9월 1일 관동지방 일원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유언비어를 정부에서 확산시켰다.
군인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자국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세계 근현대사에서 유일하게 타국인을 학살한 사례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6,000여 명에서 20,000여 명이 제노사이드 당했다.
제노사이드 참상을 모면하고 귀국한 조선인들에 의해 실상을 알았다.
참상 현지에서 목숨 건 기자와 위문반 활동으로 사진과 영상이 곧바로 국내로 들어와 상영까지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언론 통제로 인해 관동 조선인 대학살에 대한 신문 보도가 막혔다.
관동대지진 참상에 대해 9월 20일까지 발표하지 못했다.
동아일보 특파원인 이상협 기자가 10일 쯤 도쿄에 들어가 살아 있는 조선인을 파악한 뒤, 신문에 이름을 밝힌 날이 9월 22일이었다.
10월 20일에서야 조선인 대학살 내용을 신문에 밝힐 수 있었다.
100년이 지난 현 정부에서도 제노사이드 당한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하는 한 마디 말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본 현지 자발적인 추모 모임의 한 단체로 들어 있는 조총련이라는 그 이름 하나로
이념으로 몰아 언론을 호도하며 국정 난맥상을 숨기려 하나 더 복잡하고 어지럽히고 있다.
일본의 22곳에 26개 위령비와 탑 종루 등 기림 시설 중 4개를 재일한국인 세웠다. 그 중 2개는 민단 2개는 총련에서 세워 기리고 있다.
총련은 학생들 소풍지로 정할만큼 꾸준하게 관리 추모하고 있다.
26개 기림 시설 중 유일하게 고국에서 후원금과 재료 기술 등으로 건립된 관음사 보화종루 위령의 종이 정상으로 울리지 않는다.
한국 일본 모임이 계획한대로 9월 1일 개보수를 마치고
9월 10일 추모문화제를 치렀으면 좋으렸만
한국 일본 관행과 의식 등의 차이로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차질을 빚어 내년 봄까지 미뤄졌다.
후원금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답사로 받은 강사료와
이번에 발행한 '1923 관동대학살 -생존자의 증언' 정종배 다큐시집에서 얻은 수익도 기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부할 예정이다.
더불어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를 발간한 민병래 기자와
오늘 오후 민족문제연구소 북콘서트에서
관음사 보화종루 개보수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말을 해야겠다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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