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2일 관동대진재 자경단과 학살령
경도京都에서 / 이서구(친일,연극)
산 곱고 물 맑은데 님 없는 손이로다 / 네 마음 태같으면 고인 즉도 할 것이 /
월하에 밤이드니 흥겨울가 하노라 – 동아일보, 1923. 9. 2
신문에는 이렇게 한가로운 시가 게재되었지만
도쿄 부근의 진재를 이용하여 조센징[朝鮮人]은
각지에서 방화하고 불령의 목적을 수행하려 한다
현재 도쿄 시내에서는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려 방화하는 자가 있다
이미 도쿄부 일부에서는 계엄령을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지에서는 면밀하게 시찰하여 조선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엄밀하게 단속할 것
조선총독부 대만총독부에도 타전되었다
일본 정부의 삐라나 선전은 조직적인 학살의 뇌관을 때리는 불화살로
동시에 2일 오후 3시경 조선인 폭동에 대한
엄중한 단속 및 조선인 보호 수용 방침을 결정한다
후테이 센징[불령선인不逞鮮人]에 대한 ‘단속과 호보’라는
이중적인 지시는 사실상 ‘학살령’이었다
자경단의 만행을 일본 정부가 부추긴 죽음의 불구덩이다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일본 정부 주요 보직에, 조선에서 식민지 고위 관료 근무하다 귀국하여 한 계단 더 영전한 자들이 앉아 있다.
3.1혁명 당시 10년 넘은 무단정치로 눌렀다 생각한 조선인들이 끈질지게 이어 들고 일어난 만세운동 트라우마에다, 관동대진재로 폭발 직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조선인을 타켓으로 살륙을 자행했다.
자연재해로 자국의 민심을 돌리기위하여 타국민을 살해한 제노사이드 사례는 관동대학살이 세계사에 거의 유일하다
2일 낮부터 일제의 군경은 물론 동학혁명 남도의병대토벌 등에 참여하여 조선인을 무차별 살해한 퇴역군인들이 주도한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살륙을 시작하였다.
시인 김동환의 이름을 3,200여명의 나라시노수용소 명단에서 찾을 수 있다.
1925년 2월 장편서사시 <국경의 밤>은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그해 12월에 발간한 <승천하는 청춘>은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김동환은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쓴 7부 800행의 장편서사시로 두 남녀의 만남은 수용소 안이었다.
항일투쟁을 상징과 은유를 통해 함축하고 있다.
관동대학살 관련 독보적인 영상작업을 하고 있는 재일한국인 오충공 감독은
파인 김동환의 딸인 김채원 소설가의
화봉문고에서 아버지 시 <승천하는 청춘>를 낭독하는 영상작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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