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리히터 규모 7.9의 대지진이
일본 도쿄와 간토 남부를 휩쓸었다
지진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시간에 벌어졌다
난롯불도 끄지 못한 채 몸만 빠져나온 터였다
도쿄는 3일 아침까지 화재가 꺼지지 않았다
현재 일본은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하고 있다
9월 1일 당일 조선총독부는 매우 늦은 시간에 지진 발생 소식을 들었다
이튿날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은 아리요시 주이치[有吉忠⼀] 정무총감 문서과장 토목부장 총독부 병원장 국민신문 기자 등 일본인 6인은
신석린(친일, 중추원)·민영기(친일, 매국수작)·박기양(친일, 매국수작)·이희두(친일, 군)·윤덕영(친일, 제국의회)·이진호(친일, 제국의회)·민대식(친일, 경제)·송진우(독립장, 문화운동) 등 9명의 한국인 유력자를 모아 대책회의를 열었다
진재지로 총독부 관리를 파견하여
도쿄 소재 조선총독부 출장소와 함께
조선인 실태 파악과 진재 처리 실무를 담당케 했다
사이토 총독도 10일 도쿄에 도착했다
정종배 다큐시집 『1923 관동대학살 - 생존자의 증언』(정종배, 창조문예사, 2023)
1923년 9월 1일 밤부터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우물에 독을 푼다, 불을 지른다, 여인을 강탈한다 등의 황당한 유언비어가 퍼진다.
일본정부의 치밀한 계락이라 볼 수 있다. 자연재해인 지진으로 인하여 폭발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방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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