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국 박원희 부부 김사국 김사민 형제 항일무장투쟁 명가 후손과 소통 전화

김사국 그 장례식
이윤옥 시인과 망우역사문화공원 항일투쟁 인물 중에 미서훈 분들의 자료를 찾아 서훈 신청 여부를 묻는 사이다.
8월에도 정용식 김명신 변성옥 세 분은 서훈을 신청해도 될듯 싶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후손이 보훈부에 신청하면 6개월 안에 서훈 여부를 판단하여 연락을 받을 수 있다.
후손이 아닌 분이나 단체 등에서 신청하면 2~3년 뒤에나 심사를 이뤄질 정도로 신청자 많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심사 인원을 늘리거나 서훈 조건을 완하하여 가정과 가족을 외면하고 핍박받은 현실 속에 삶을 꾸린 후손들의 피눈물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고향인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영산 김씨 일강 김철 항일투쟁 독립장 서훈받은 분의 집안 후손이
소설 김철을 썼다. 내용은 보지 않았으나 이번에 <일강김철선생추모회>를 만들며 개설한 단톡에
만석군의 집안 재산을 항일투쟁에 써버려 후손들의 경제적 어려움
일경과 밀정의 눈과 총과 칼 등에 핍박받은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대통령 8.15해방 축사에서 3.1혁명이라 말을 하고
'범도' 작가 방현석 교수가 독립전쟁 3대 역사 용어 바로잡기 청원운동에 동참해주세요!
핸드폰 단톡에 돌리고 있다.
안중근 의사를 '안중근 장군' 또는 '안중근 참모중장'
독립운동을 '독립전쟁' 또는 '항일투쟁' '항일무장투쟁'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대를 '독립전쟁기' '항일투쟁 시대' '항일무장투쟁 시대'

김사국(애족장,국내항일,2002) 박원희(애족장,국내항일,2000) 항일무장투쟁가의 외손주로
중교장 정년퇴직한 김영열 선생님과 통화를 하였다.
이윤옥 시인한테 폰 번호를 알려주기 위해 허락을 받으려는 이유라 말씀을 드렸다.
통화 중에 새로운 사실 좀더 구체적인 말씀을 하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사민(애족장,국내항일,2009) 항일무장투쟁가는 전기고문으로 정신이상자로 피리를 불고 북촌의 재동 계동 원서동 거리를 다녔다.
그러면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주며 독립운동하다 저렇게 되었다며 안쓰러워 대접하였다.
6.25전쟁 중 북으로가 나름 대접을 받았다는 전언은
여운형 선생 따님 여연구 남북 여성 협의회 북측 대표로 남쪽에 와 말씀을 했다는 것이다.
김사민 서훈은 후손들이 신청하지 않았는데 보훈처 연락 받고 건국훈장과 증서를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따님 김사건 여사의 기억으론 어릴 때라 삼촌의 행동에 무섭기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따님은 외가에서 살았는데 친할머니 안국당 여사와 외할머니가 만나면 싸웠는데
그 이유는 김사국 사회주의 항일투쟁하며 당시 천원을 빌며가 사회주의 건물을 사는데 사용하여
그 돈문제로 사돈끼리 관계가 나빠져 친할머니가 외갓집에 오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며 갓머리를 깨뜨려, 부인 박원희 묘비 앞에 묻은 김사국 비석은 갓머리를 찾지 못한 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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