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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 민족대표 33인 중 유일한 순수 민간인 출신 이갑성 부인차숙경(車淑卿, 1889~1948.8.18.) 77주기

정종배 2025. 9. 8. 07:05

3.1혁명 민족대표 33인 중 유일한 순수 민간인 출신 이갑성 부인

차숙경(車淑卿, 1889~1948.8.18.) 77주기

차숙경 묘비

차숙경 묘비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 길 동락정 정자 정면에서 구리시 쪽으로 난 오솔길을 30m 내려가다, 좌측에 민족대표 33인 중 순수 민간인으로 참여한 이갑성의 부인 차숙경 유택이다. 묘비 앞과 뒷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묘비 앞면, 연안 차씨 숙경지묘. 묘비 뒷면, 약력 경인 12월 2일 서울시 당인리에서 탄생 배화학당 수업 18세 결혼 생 2남 2녀 기미년 3월 1일 독립만세사건 당시 조선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부군 투옥 독립운동을 부군으로부터 계승하야 비밀연락으로 필사의 노력과 아울러 부군의 감옥 바라지와 자녀교육에 주력하시다 부군 옥중생활 4년 망명 생활 10유여년 구금 감옥 3년 극빈과 일경의 박해와 품팔이로 생활을 유지하여 자녀를 최고학부까지 수업시키시다 계해년 경성여자기독청년회 이사에 피임 사회부구제부를 전담 을유년 8월 15일 해방 후 애국부인회중앙집행위원 여자기독청년회 이사 재 피임 절제회 이사 교회간부 양재학원원장 침식을 잊으시고 자조지석 활동하시다가 과로로 인하여 무자년 2월 한 번 병석에 누우시메 부군과 자녀의 지극한 정성도 효험을 얻지 못하시고 8월 18일 오후 한 시 40분 59세를 일기로 영면하시다 단기 4281년 서기 1948년 8월 18일(묘지번호 109453)

 

차숙경의 남편 연당 이갑성은 1889년 대구에서 이기덕과 파평 윤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13세 때까지 고향에서 한학을 배웠다. 13~15세까지 대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1904년경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경신학교와 세브란스 의학교 약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3학년을 다니다 중퇴하였다. 의전 재학시절 학비는 세브란스병원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받은 월급으로 해결했다. 그는 1915년부터 세브란스병원 제약주임으로 근무하였다. 세브란스병원 사무원으로 있던 이갑성이 민족진영에 가담하게 된 것은 기독교와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갑성이 3.1혁명에 참여하게 된 직접 계기는 고종이 승하(1919.1.21.) 한지 2주일 뒤 무렵 이승훈의 권유를 받고서였다. 두 사람은 같은 장로교파 소속으로 7~8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열린 2심 재판에서 그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감옥 안에서 그는 동지들과 함께 옥중투쟁을 벌였다. 그의 술회에 따르면, 구속된 지 1년 후 가출옥이 결정됐으나 이를 거부하고 3.1혁명 1주년 때 옥중에서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경향신문,1981.3.26.) 그는 1922년 5월 5일 경성감옥에서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오화영(대통령장,3.1운동,1989)과 함께 만기로 출옥하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내려가자 대구지역 유력자들이 성대한 환영회를 베풀어주었다.

 

차숙경 유택

민족대표 33인은 성직자이거나 혹은 종교계와 관련을 맺고 있는 인사들이다. 비성직자 가운데 이종일(대통령장,3.1운동,1962)은 천도교의 비밀결사체인 천도구국단 단장, 천도교 계열 인쇄소 보성사 사장 출신이며, 최린(친일,천도교,중추원 참의,매일신보사 사장)은 천도교 산하의 보성고보 교장 출신이다. 기독교계 인사 가운데 박희도(친일,언론)는 YMCA 간사로 있었으며, 박동완(대통령장,3.1운동,1962)은 기독신보사 서기 출신이다. 순수 민간인 출신은 이갑성(대통령장,3.1운동,1962) 한 사람뿐이었다. 3.1혁명 만 30세, 세브란스의전 부속병원 사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분 중에 이종일 박동완 등은 나용환(대통령장,3.1운동,1962) 홍병기(대통령장,3.1운동,1962) 등과 함께 1966년 망우리에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현 국립서울현충원이 군인묘지에서 묻힌 분들의 영역을 확대한 법이 개정된 1년 뒤의 일이다. 현재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중 3.1혁명 민족대표 33인 중 한용운(대한민국장,3.1운동,1962) 오세창(대통령장,3.1운동,1962) 박희도 세 분의 유택이 남아있다.

세브란스 교수 학생 사무원 간호사 등 52명이 항일투쟁에 임하였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항일투쟁 관련 책을 발간했다. 국가보훈부에 서훈도 신청을 하였다. 그런데 의사들은 개업한 지역 공중보건의를 맡았다. 그로 인해 서훈을 받지 못한 분이 많다. 황해도 서흥 신막의 화타라 일컫는 김찬두는 의전 1학년생으로 3.1혁명 항일투쟁으로 감옥생활을 하였다. 공중보건의로 서훈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어 서훈 기준을 낮추는 게 어떨까 싶다. 3.1혁명 이화고녀 1학년 유관순(대한민국장/독립장,3.1운동,2019/1962) 열사와 6인결사대로 활동한 김분옥 대한민국 최초 여성경찰 총경(18명) 초대 여성경찰국장도 세브란스의전 간호과장을 역임하였다. 이화여대 간호학과 설립을 맡았다. 이화여대 우월 김활란(친일,교육학술) 박사와 친일을 동조하고 활동한 이력으로 경찰의 인물로도 선정되지 못했다.

반면 도산의 조카사위 김봉성(건국포장,3.1운동,2005)의 아내인 안맥결(건국포장,국내항일,2018) 총경과 도산의 아내인 이혜련(애족장,미주방면,2008) 여사도 서훈을 받았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해관 오긍선(친일,교육학술)은 세브란스의전 제2대교장, 행농 이영준은 제3대 교장을 역임했다.

33인 가운데 제일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그는 1981년 3월 25일 94세로 별세했다. 장례는 3월 29일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1962년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수여했다. 묘소는 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183번)에 마련됐다. 이용희 전 통일원장관은 그의 차남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 흥사단 원로 단우들과 망우리공원을 답사하며 이용희 전 통일부 장관이 아버지 이갑성 옹의 일제 밀정 문제 입막음하려고 무척 애를 많이 썼다고 말하였다. 차숙경 여사는 애국선열로 서훈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애국선열 중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 김봉성 독립운동가의 부인 안맥결, 안맥결 총경은 도산 선생의 형님 안치호의 딸이다. 설산 장덕수 부인 박은혜 경기여중고 교장 15년 및 은석초등학교 설립자, 부부 독립운동가 김사국(애족장,국내항일,2002)과 박원희(애족장,국내항일,2000), 김영랑(건국포장,국내항일,2018) 시인의 부인 안귀련, 통속소설가 김말봉, 한국의 잔 다르크 유관순 열사,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친일,교육학술) 이화여대 부총장 등 망우리 여인열전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을 국가보훈부에서 합동묘역 <애국선열묘역>으로 정하고, 국립현충원에 준하는 관리와 기리겠다고 몇 년 전에 발표했다. 답사길에 서울 북부보훈처 직원들과 마주친 적이 몇 번이 있다. 그냥 관리 상태만 점검한다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겠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서훈을 추서 받은 분은 김중석(건국포장.3.1운동,1992) 서동일(애족장,중국방면,1990) 오재영(애족장,의열투쟁,1990) 김영랑(건국포장,국내항일,2018) 서광조(애족장,국내항일,1990) 한용운(대한민국장,3.1운동,1962) 오기만(애국장,중국방면,2003) 문일평(독립장,중국방면,1995) 오세창(대통령장,3.1운동,1962) 방정환(애국장,문화운동,1990) 유상규(애족장,중국방면,1990) 유관순(대한민국장/독립장,3.1운동,2019/1962) 등이다.

미서훈 항일투쟁가들 열 분 넘게 잠들어 있다. 그 가운데 변성옥, 김명신, 정용식 등은 친일 관련 기록이 없어 서훈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