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망우인문학

걸어온 거리가 다른 삶을 비교 말고 존중하자 / 정종배(시인)

정종배 2025. 9. 8. 09:03

걸어온 거리가 다른 삶을 비교 말고 존중하자 / 정종배(시인)

 

내 삶을 되새긴다. 삶은 길이다. 무겁고 미끄러운 길이다. 춥거나 병들고 생계가 막막한 길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황폐하고 시달리며 우울한 마음의 길은 다 달라, 각자가 평생을 벗 삼아 손잡아 주어야 한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말과 미더운 행동은, 길의 무게를 덜어내고 발걸음 소리가 가볍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길의 거리는 다르다. 재산을 나보다 훨씬 나은 수준으로 놓거나, 건강을 100세 너머 무병장수를 찾는다면, 발길은 팍팍하고 미끄러져 넘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과 삶의 결핍은 꿈의 세계에 올려놓고 보면,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

걸음을 잠시 멈춰,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라. 연약하게 태어나 비천하게 살다가 처참하게 죽지 않으려면, 그 어떤 삶도 사랑도 비교하지 말라.

 

1974년 5월.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면목동에 살던 친구 강원도 횡성군 둔내 출신, 형제들의 나이까지 동갑인 류성진과 망우리공동묘지를 두 번 다녀왔다. 지금도 만해 한용운, 죽산 조봉암, 설산 장덕수의 유택은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2000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유택에 오른 이후, 내 삶의 방향은 달라졌다. 그때부터 25년 학생 및 지인과 낙이망우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 길>을 걷는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유택을 마련한 선인들이 걸었던 가족과 민족을 위한 삶과 정신을 얘기했고, 학생들과 함께 체험 및 봉사활동을 하며 소통해 왔다.

그동안 ‘낙이망우 사색의 길’에서 만난 모든 분의 격려와 사랑을 깊이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1970년 학다리중학교 입학 전, 함평군 학교면 면장 아들인 내 친구 정병인의 큰형님이 미국 이민 가며, 고향 집에 책을 내려보냈다. 그중에 내가 빌려 읽은 책은 신동엽의 시집 『금강』과 서해 최학송의 소설집 『탈출기』 두 권이었다.

 

40여 년이 지나 2010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든 소설가 서해 최학송의 묘지가, 무연고처리를 막기 위해 관리인이 됐다. 2012년 ‘서해 최학송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사무국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매년 7월 9일 기일을 전후로 추모문화제를 치르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 소중한 인연을 맺으며 지인 및 제자들과 돈독한 정을 쌓고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이사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묻혀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인간의 가치 실현’으로 시작된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숙장대행도 역임했다. 2024년 8월에는 시인 김영랑의 유택을 34년만에 재이장하였다. 삶의 향기를 잡기 위해 동행하는 이들과 ‘사색의 길’을 한 바퀴 돌면서 선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삶의 지침을 풀어간다.

 

2021년 10월에는 『망우리공원 인물열전』(지노), 2023년 8월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에서 살아 돌아온 분들 7,500명 중 250명의 주요활동을 묶어 낸 정종배다큐시집 『1923 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2024년에는 (재)수림문화재단 후원을 받아 아사카와 다쿠미·폴 러쉬·김희수 선생 등 세 분을 중심으로 운영한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활동기를, 책으로 묶어 『조선의 흙이 된 다쿠미』(북키앙,) 등을 펴냈다. 이 중에 정종배다큐시집 『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굴하여 1차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 가운데 교과서에 수록된 항일저항시의 바탕은 관동대학살 당시 동경에 머물며 그 참상을 목격했거나, 가족 또는 주변인들이 관련을 맺고 있다. 김소월·이상화·김동환·김영랑·박용철 등은 현장에서 제노사이드를 피해 살아 돌아 왔다. 윤동주·이육사·김동명·이상 등은 가족이나 지인 들을 통해 듣고 경험한 뒤 시의 방향이 달라졌다. 소설가 이기영·채만식·한설야·장지락 등도 참상을 목격했다. 유치진·유치환 형제는 당시 동경에서 자취하며 한 달 뒤 학교에 나갔다. 일본 친구들이 어떻게 살았느냐 의아해하였다. 유치진 선생은 연극을 하게 된 계기가 그 참상을 가장 잘 전달하는 장르가 연극으로 계몽적인 극을 전개했다.

 

오늘 낙이망우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인물들을 통해 현대 우리 시대를 성찰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면 한다. 개화기·동학혁명·의병·13도창의군·경술국치·3.1혁명·27결사대·관동대학살·독립전쟁기와 항일투쟁·징병·징용·위안부 및 친일문제·한글운동·8.15해방·해방정국이념대립·남북분단·6.25한국전쟁·4.19혁명·5.16군사쿠데타·6.3항쟁·국가보안법·산업화와 독재정권·민주화 등 대한민국 기틀과 아픔을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과 장삼이사의 생애와 작품 및 일화를 중심으로 시대정신을 밝혀 후손들 삶의 지표이길 빌어본다.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구하고 기록 정리하여 후대의 지남차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분 한 분 깊고 높이 우러르며 글을 쓰고, 독자들과 탐구 및 답사도 함께하며 오래오래 기렸으면 한다.

 

시냇물은 봇둑을 넘지만 바닷물은 넘치지 않는다. 소인은 다우(多愚)하고 대인은 망우(忘憂)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