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을 '효창원'으로 원효로를 '이봉창로'로
2025년 9월 13일 토요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까지
장훈고 제자인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가 발간한 『항일로드 2000Km』 관련 현장 답사를 함께 했다.
효창공원을 '효창원'으로 되돌리고, 원효로를 ‘이봉창로’로 바꿔서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정조가 큰아들 문효세자를 잃고 직접 답산하여 정한, ‘효성스럽고 번성하다’는 효창원孝昌園.
문효세자의 어머니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 박씨의 손인 영온옹주 무덤이었다.
독립투쟁기 일제가 ‘구용산고지舊龍山高地’라 명명하고, 일군의 숙영지와 병참기지로 활용하였다. 독립군 토벌 및 소탕 작전을 펼쳤다.
1921년 6월 그 좋은 소나무 숲을 베어내고 경성 최초 골프장 9홀을 만들어 3년 운영했다. 주 고객층은 모토마치[元町]원정역(현재의 효창공원앞역) 주변 호텔에 머물던 투숙객이었다.
원정역의 원자와 효창원의 효자를 합성하여 원효로라는 도로명의 근거이다. 그에 따라 전혀 관련 없는 원효대사 동상까지 1968년 세웠다.
효창원 500여미터 아래에서 태어난 이봉창 항일무장투쟁가를 기리는 '이봉창로' 바꿔야 한다.
1924년 경기도 경성부(지금의 서울특별시)가 효창원 일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순환도로, 공중변소까지 갖추면서 8월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놀이시설이 들어서고 벚나무, 플라타너스 등의 외래 식물들이 심어져 유원지로 조성되었다.
일제가 조선 왕조 맥을 끊고 훼손하고자 전몰 군경탑을 세우려,
1944년 효창원이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삼릉 권역으로 이장되면서 이름만 남게 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 박열, 이강훈 등 아나키스트계 항일무장투쟁가들이 백정기·이봉창·윤봉길, 즉 삼의사三義士의 유해 수습을 촉구하여 '3의사국민장봉장위원회'를 발족하고, 그 유해가 국내에 공식적으로 운구되어 삼의사묘三義士墓에 안장되었다.
도마 안중근 장군의 가묘가 삼의사 묘지와 나란히 자리 잡고
백범 김구는 유방백세流芳百世 네 자를 새겼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출신인 이동녕·조성환·차이석의 유해가 안장되었으며
1949년에는 백범 김구가 서울 경교장에서 암살당함에 따라 국민장을 통해 안장되었다.
숙명여자대학교 도로 등으로 쪼개 나눠 버렸다.
제1공화국 이승만 정부는 명당수인 연못을 메우고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은 동양 최대 시멘트 축구장을 만들어 버렸다.
지금은 조기 축구 성지로 변하여 효창원 원형을 되찾기가 쉽지 않다.
박정희 정부는 대한노인회관과 육영수 여사 송덕비를 세웠다. 반공투사위령탑을 세웠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구장 자리에 2002년 김구의 생애와 항일 업적 등을 기념하는 백범 김구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용산구청에서 달리기와 걷기 좋은 공원 자연생태 학습원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9월 12일 13일 이틀 동안 2025 용산 국가유산 야행 행사로 답사하는 동안 흥청망청 노래소리가 드높았다.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서울 효창공원 (서울 孝昌公園)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시는 곳이다. 원래는 효창원으로, 정조의 큰아들인 문효세자·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숙의 박씨의 자녀인 영온옹주의 무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문효세자의 묘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기면서 효창원은 효창공원이 되었다.
광복 후에는 김구·이동녕·이봉창·윤봉길·안중근을 비롯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무덤을 모시게 되었으며, 매년 이 분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무덤 지역이 넓고 소나무숲이 울창하며, 무덤 주위로 산책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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