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9월 19일 고학후 군과 민속학자 송석하

정종배 2025. 9. 19. 10:47

 

1923년 9월 19일 고학후 군과 민속학자 송석하

 

 

동아일보 광고 고학후군! (지난 8월 28일 동경향발정 본적 강화군 송해면 솔정리)이 광고 보시는 대로 곧 부서하며 우인의 지구간이라도 이 광고 보시거던 고에게로 곧 통지하여 주시면 감사천만 인천부 내리 203 송태식 강화군 송해면 솔정리 고학섭.

 

재일 진주학생 조사 파원 결의.

 

〇함흥 유학생 소식

함흥인으로 동경진재 지방에 있는 자 40여 인 중 최근 귀향한 자는 정병훈 박계은(소수구락부, 함흥청년회 창립) 2인이오 동경에서 무사 전신이 유한 자는 이동제(1924년 경시청 요시찰 인물) 이증림(1924년 경시청 요시찰 인물) 한림(1924년 경시청 요시찰 인물) 한성항 한동죽 김창호 방치규(3·1운동 주도, 신간회) 김교량 박홍기 이진영 박면연 이영수 이인선 이동윤 김용현 주수영 김원희 문태수 강용수(대한독립군비단원 이원 연락통신원) 이영일 차외 주북면 2인과 기타는 아직 소식이 망연하더라(함흥)

 

〇안주에도 진재 구제

홍사익 군은 무사 경기도 안성군 대덕면 소현리 홍사익(시인 홍사용 동생) 씨는 수년 전에 그 가족을 인솔하고 동경에 도거하야 현금 육군대학에 통학 중인데 금번 진재에 그 가족과 공히 무사히 피난하였다는 통지가 그 가족에게 도착하였다더라(안성)

동아일보 1923. 9. 19

 

조선일보. 진재지 동포의 안부 동경에 출장한 경성부리원의 전보

동경에 출장한 경성부 리원으로부터 이재민에 대한 안부조사 보고는 재작일을 위시하야 전보로 답지한다함은 이미 보도한 바어니와 작일 오전 9시까지 하여 경성부 주민으로 동경에 가 있던 총 인원은 348명이라는데 그중에 사망한 자가 2명이요 행위불명자된 자가 51명이라하며 그 중에 우리 동포는 아래에 기록하여 13명인데 1명을 행위불명이라더라

경성부 미근동 78 무사 김재학, 동 루하동 28 무사 김창모, 광주군 산주면 신사리 무사 민영희, 경성부 봉익동 8 무사 김홍호, 동 안국동 171 무사 고재흥, 동 간동 2 무사 주우명, 동 죽첨동 217 무사 이홍수 무사 이완근, 동 동림정 297 무사 정진환 무사 장종운, 동 간123 무사 유희경, 동 훈정동 8 무사 한상기, 동 적선동 157 무사 박상래, 동 사직동 26 2 행위 불명 김교경, 동 예지동 5 무사 이기동 무사 이기환, 동 창성동 158 무사 이완구, 동 경운동 76 무사 도상봉(대통령 표창, 도쿄미술대학 졸업, 화가) 무사 나상윤(일본 여자미술학교 졸업, 화가) 부부 화가, 동 가회동 92 무사 최의만, 동 루하동 199 무사 고희경(친일 백작, 이왕세자부이왕직사무관), 동 황금정 1-118 무사 이용근 이병규, 무사 이병규(22) 씨에 대하여 안부를 조사하여 달라고 경성부에 신입은 더였으나 의뢰자가 주소를 기록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통지치못한다는데 리씨는 조도전대학 제1고등학원에 재학중이라더라

 

1903년 함남 홍원에서 태어나 1977년 서울에서 순국한 화가 도상봉은 1919. 3. 1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3년생으로 재학시 파고다공원에서 조선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수천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에 가담하고 동월 5월에는 서울 남대문 역전에서 수백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기를 흔들며 조선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피체되어 징역 6월 3년간 집행유예를 받았으나 8월간 옥고한 사실이 확인되어 운동계열 3.1운동 대통령표창을 1992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경성역 도착

재작일로부터 작일 구시까지 경성역에 도착된 일본진재 피난인이 27명 중에 우리 동포는 19인이라는데 경성부 인사상담소에서 다소간 여비를 지급한 사람은 다음과 같다더라

함남 단천군 이중면 이호린 (50전 지급) 동 김충환 동 이권한 동 이충한 동 주호월, 함남 단천군 파도면 은호리 (50전 지급) 김학능 동 공동리 (2원 지급) 김왕환, 함남 명천군 하기면 포항동 (2월 지급) 김백권, 간도 용정촌 제4구 2호 17 (2원 지급) 이예순 8명도 역시 무사,

작 일본에 도착된 동경 전보에 의한 즉 아래 8명도 무사하다더라

제5중학 1년생 무사 송석구(민속학자 송석하 동생), 동경 소석천 록하정21 무사 김용환, 곡교중학교 생도 무사 김은한, 고과대학 예과 무사 송석하(민속학자). 동경시 외호총정 상호총 87 무사 조창호, 조도대학 무사 김병철, 동경소석천구 호기정 75 무사 장수학, 경응대학 무사 이강진

 

〇피화동포 금번 대진재에 강세형과 문두인 군 기쁜 소식이 본사에 도착 일본 동경에 유학 중인 상지대학의 강세형 명치대학의 문두인 양씨로부터 무사하였다는 소식이 작 일본사에 도착하였다더라

 

〇평양과 진남포에도 반갑게 집에 돌아온 사람

평양 신양리 24번지 정신복 양은 일본 횡빈신학교에 가서 공부하다가 이번 지진을 만나서 화염 중에 간신히 생명을 보전하여 가지고 지난 14일 반가이 집으로 돌아왔으며 진남포 신흥리 박성건 군은 동경 상야역전에 가서 우유장사를 하다가 이번 진재에 다행히 살아나서 홍노같은 시가를 헤치고나와 천신만고를 겪으며 집으로 돌아왔다더라

 

〇동경에서 온 일 소년 인천을 거쳐 서산 고향에 본적을 충남 서산군 태안면 동문리에 둔 이백룡(19)이라는 소년은 지난 1일 오후에 동경에 지진이 시작되자 즉시 그곳을 떠나 지난 16일 오전에 인천에 도착하여 방금 공동숙박소에 몸을 부쳐 배편을 기다리는 바 그 여비는 애국부인회 인천에서 지출하기로 되었다더라(인천)

조선일보 1923. 9. 19

 

경성부 주민으로 동경에 가 있던 총 인원은 348명이라는데 그중에 사망한 자가 2명이요 행위불명자된 자가 51명이라하며 그 중에 우리 동포는 아래에 기록하여 13명인데 1명을 행위불명이라더라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조선인 사망한 자 2명 신문에 처음으로 기사화되었다. 군경이나 자경단에 의해 살해된 제노사이드 기사는 아니다. 일제의 언론 통제가 엄격했다.

소식 없는 자식을 위해 신문광고을 내거나, 각 지방마다 동경으로 사람을 보내 확인하려 애가 탄다.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는 경제 공부하러 갔다. 관동대학살 참상을 겪은 뒤 2년 정도 정신이 오락가락 아팠다. 민족의 뿌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다 민속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 서거 했다. 대부분 참상을 목격한 분들이 1970년대 이후에 자신도 경험자로 밝혔는데 송석하 선생은 자신의 학문의 방향이 바뀐 경위가 관동대학살이라고 비교적 일찍 밝혔다.

도상봉(대통령표장,3.1운동,1992) 화가는 보성고보 다닐 때 3.1혁명 만세운동에 참여해 서훈을 받았다. 화단에선 조각가 김복진(애국장,국내항일,1993)과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두 분으로 알려졌다.

 

 

시인 홍사용 집안의 동생인 홍사익은 관동대학살 당시 육대 35기 동기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경호 관련 임무도 맡았다. 홍사익은 홍사용 시인의 친동생이 아니고 집안의 친척이라고, 장편소설 <마지막 무관생도들>를 출간한 이원규 작가께서 오늘 오전 전화로 바로잡아 줬습니다. 고맙습니다.

홍사익의 육사 26기 동기로는 이응준 신태영 지청천 소설가 염상섭의 형인 염창섭 등이 있다.

조선인 동기 중에 육사 수석 졸업하여 일본 육군 1사단 1연대 소속이었다.

홍사익은 일본 육군 중장으로 조선인으로 최고 계급이었다. 전범으로처벌받아 유일하게 사형 당했다. 반민족행위자로 국가공인 및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1936년 북청사자놀음 북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