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20일 정평 군청 처지 부당과 각 지역 소식
〇동아일보 1면 일본 진재와 동양의 정국 중국의 동정은 무엇을 의미
〇진재 동정모집 정평군청 처지 부당
함남 정평군청에서는 금번 동경 진재에 대하여 면장 회의를 열고 일군을 통하여 빈부를 막론하고 각 호 평균 15전씩 배당 징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내면 풍교리에서는 리회를 열고 이번 동경 진재는 실로 미증유의 참사라 누구든지 인류애로써 이를 동정치 아니치 못할 것이나 원래 정평군은 토지가 척박하여 군민의 생활은 분전이 곤란할 뿐 아니라 방금 사선에 입한 차시에 그 모집의 방법을 강제로써 평균 배당을 시키는 것은 의연금 본연에 타당치 않고 모집 성적도 유산자에 향하여 자유 모집함만 같지 아니할 터이니 우리 이민은 그 불공평 불원만만 처치에 대하여는 반대치 아니치 못하겠다하여 차에 반대하기로 일치 가결하였다더라
〇안악 재일 학생 소식
안악군에 본적을 두고 동경에 유학하던 최제태 원경량 김성섭 3군은 지난 7일과 14일에 구사일생의 위기를 탈하여 귀향하였는데 지금까지 동경에 있는 안악 학생은 무사하다는 통지가 있다하며 귀향한 그들의 진재 당시로부터 안악에 도착하기까지의 경과를 들으면 실로 모골이 송연하더라
〇진재지 학생 구제책
멀리 고국을 바라보며 진재의 유허에서 방황하는 동경 유학생을 구제하자 하는 부르짖음은 각지에 일어나는바 고창의 유학생은 27인이라 본군 인사는 신속 차의 구제책을 계도하기 위하여 고창청년회에서 지난 5일 오후 8시 동회관에서 긴급회의 소집하고 좌기 문제를 결의한 바 전군을 표준 삼아 취지서를 공포하고 동정금을 모집하기로 일치 가결되었는데 좌기 4대로 분하여 9월 말일까지 동정금을 수집하기로 하였다더라
〇담양 구제 극과 동정
전남 담양의 유지 인사들은 서선 수재와 동경 진재를 당한 동포를 구제하기 위하여 지난 12일부터 3일간 구제 연극을 개최하여 매야 만원의 성황을 이뤘는데 동정금을 기증한 인사는 다음과 같다더라
〇원산 자선 연주회
관서 수재와 동경 진재에 이한 동포를 구제하기 위하여 원산에서 구제회를 조직하였다함은 본보에 이미 보도한 바와 같거니와 지난 15일에는 이에 대한 구제 자선 연주회를 상리동아좌에 개최하고 해성악대의 양약과 원산유지의 아악이 있었고 춘성원신양권번예기도 총 출연하여 오후 12시까지 연주를 마치었으며 동회에서는 17일 오후 2시 원산청년회관 루상에서 위원회를 개최하고 구제금 발송달에 취하여 협의하였더라
〇초계 청년 구재 결의
초계기독청년회에서는 지난 9일 오후 10시 동회관에서
〇원산역 여객 감소
원산역의 승강 여객수는 강우와 진재의 관계로 기분 감소되는 바 근간은 더욱 그 수를 감하여 13,14일 승강객은 양일 공히 평균 450명이며 기 수입액은 평균 천 2,3백원 가량이라더라
〇귀환 동포 씨명 18일 아침 입항 창경환 27명 18일 밤 입항 덕수환 10명
- 동아일보 1923. 9. 20
〇진재와 동포 80동포 소식 동경시 국정구 중6번정 49 금강동에 현재소를 두고 영문학교 다니는 박남식(24) 군은 지난 13일 오후 4시에 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로 무사히 돌아왔는데 그의 말에 의한 즉 동경 지방의 이재상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으며 진재 당일 오후부터는 동경 전시의 공기가 가장 험악하여져서 문밖을 나가기 못하고 동거하는 80명 동포가 서로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 이튿날에 계엄령이 내린 후부터 7일까지 구제소에 수용이 되어 일일 하루에 현미 한 말씩으로 80명 동포가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여 오다가 7일 이후에는 총독부 출장소에 수용이 되어 구호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창)
〇마산에도 12학생 다섯 명은 생사불명 김영근 김재곤 손기택은 살아 돌아왔다
광주역에 또 6명 17일 오전 10시 40분 도착 광주 지정선 동 조삼용 동 신상균 화순 박형기 동 박비기 동 박형덕
〇개성에도 1학생 개성군 송도면 고려정 230 산번지 임광익 군은 소석천구 취방정 7번지에 하숙하던바 대진 당일에 피난하여 명하정경찰서에서 보호를 받다가 증명서를 얻어 가지고 지난 10일에 출발하여 무사히 자기 집에 돌아왔다더라(개성)
〇제주에 피난동포 사지를 간신히 버텨서. 제주도 사람으로 일본 동경에 가서 혹은 유학 혹은 노동하는 이가 70여명에 달하는바 이번 진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있어 그 부형들은 소식을 몰라 불안으로 지내는 중 신좌면 함덕리 한동이(22)는 죽은 줄 알고 있다가 피난선을 만나서 대판에 왔다가 부산을 거쳐 무사히 돌아왔으며 유학생으로부터 피신하였다는 통지가 대부분은 왔으나 노동하는 형제의 소식은 아직도 망연하다더라(제주)
〇경성부에 15인 무사한 소식이 또 왔어 지난 18일로 19일 오전 9시까지 한하여 경성부에 도착된 동경재류인 안부조사 전보에 의하면 총인수 243인 중에 행위불명된 사람이 21인이라하며 그중에 우리 동포는 15인인데 그 씨명은 아래와 같다더라
임병주 정의석 권상부 권중관의 일가족 최창문 허민수 이성열 안순영 임창인 이광실 김창섭
〇경성역에 5인 18일 오후로부터 19일 오전까지 동경으로부터 피난하여온 우리동포는 5인인데 그 씨명은 아래와 같더라 김재환 박윤건 오영섭 오정식 한기욱
〇인천에 또 희소식 구사일생으로 사지를 면하여
인천에서도 일본 관동지방에 가 있다가 이번 진재의 참혹한 광경을 당한 동포가 적지아니한 중 이미 살아나온 이에게 전하여는 당시에 보도한 바어니와 지난 18일까지의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형제와 다만 살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동포들은 아래와 같더라(인천)
인천부 송현리 86의 2 배순남(16) 동 배순석(14) 외리 180 김영운(19) 내리 20 김동수(20) 등 4인은 귀국 외리 206 고주철 동 용강정 44 이창문(20) 산근정 3 김형대(14) 사정 25 유해용(19) 등 4인은 소식만 유할 뿐 - 조선일보 1923. 9. 20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동경 진재 동정금을 함남 정평군청에서는 빈부를 막론하고 각호 평균 15전을 배당 징수하기로 결정하였다. 부내면 풍교리 리회에서는 우리 리민은 그 불공평 불원만만 처치에 대하여는 반대치 아니치 못하겠다하여 차에 반대하기로 일치 가결하였다더라.
고창군 고창청년회에서도 전군을 표준 삼아 취지서를 공포하고 동정금을 모집하기로 일치 가결되었다. 초계 청년회에서도 가결되었다.
담양에서는 연극 원산에서는 자선 연주회에서는 권번예기까지 총 출연하였다.
관동대학살에 대한 진상과 진실은 외면하고 관서(서선)수재와 관동진재에 대한 기사와 의연금 모집 기사가 동등하게 게재되었다. 일제 군경이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관심을 돌리려는 기획이라고 추정한다.
영문학교 다니는 박남식(24) 군은 지난 13일 오후 4시에 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로 무사히 돌아왔는데 그의 말에 의한 즉 동경 지방의 이재상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으며 진재 당일 오후부터는 동경 전시의 공기가 가장 험악하여져서 문밖을 나가기 못하고 동거하는 80명 동포가 서로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 이튿날에 계엄령이 내린 후부터 7일까지 구제소에 수용이 되어 일일 하루에 현미 한 말씩으로 80명 동포가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여 오다가 7일 이후에는 총독부 출장소에 수용이 되어 구호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창)
관동대지진 당일 오후부터 동경 전시의 공기가 가장 험악하여져서 문밖을 나가지 못하였다고 토로하는 증언으로 미루어 일제의 제노사이드의 시작 시각을 추정할 수 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관동대학살 관련 기사 주된 지역은 대도시 및 번성하는 군이 중심이다. 특히 동아일보 기사에 자주 나오는 지역은 고창 부안 영광 함평 등으로 일제 강점기 일제가 빼먹을 게 많은 군으로 볼 수 있다.
내 고향 함평은 학교역(학다리역)과 함평읍 사이 6Km를 궤도열차를 전국 두 번째로 운행할 정도였다. 지금도 그 구간을 달리는 버스를 궤도버스라 부른다. 1960년대 15만 명이었던 군 인구가 올해 들어 2만명 대로 떨어졌다. 고향 주변 동네 밤나무골 노리골 마당실 엄적굴 정겨운 마을도 이름만 남았다. 내 고향은 그래도 80여 호가 지금은 30여 호로 줄었다, 고향 마을 3할을 잡아먹은 동함평산업단지로 버티고 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따뜻한 중음탕을 마신다.
부족한 가을비 관련 시를 소개한다
가을비 소리에 철들다 / 정 종 배
이제는 봄비보다
가을비가 더 좋다
아니 가을비 소리가 더 좋다
봄비에 꽃봉오리 벙글대는 소리보다
단풍잎 물들어가는 소리가
가슴에 못질하듯 파고들어 더 좋다
오월의 숲 가득 차오르는
신록의 향기 퍼지는 소리도 좋지만
가을 하늘 뭉게구름 적막하게
흩어지는 소리 그냥 내버려두었다
저녁노을 슬며시 검붉게 타오르며
앓은 소리가 더 좋다
시각보다 청각이 더 편하고 오랜 기억으로 가는
내 삶의 계절은
가을비 소리로 철벅거리는지
이제야 철들어 가는 소리 아닌지
달항아리 내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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