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9월 18일 인천우편국과 인천 재적인 소식과 윤치호 일기

정종배 2025. 9. 18. 18:06

 

1923년 9월 18일 인천우편국과 인천 재적인 소식과 윤치호 일기

 

 

〇진재 후 우편물 인천우편국의 일본 관동지방 진재 후 인천우편국에 우편물 도착 상황을 듣건대, 전보는 8일부터 우편물은 13일부터 발하게 되었는데 도착한 통수는 전보는 8일부터 13일 정오까지 58통이요 우편물은 13일에 시내 배달한 것이 53통인 바 태반은 조선인의 진재 중 무사하다는 전보와 서신이라며 대개는 동경 직발이 아니라 비행기 혹은 선편으로 부근 지방을 거치어 도착된 것이라더라

동경 진재 후 인천 재적인 소식

과반 진재로 인하여 참담히 파멸된 일본 동경에 유학이나 혹은 노동을 목적하고 기우한 동포 중 인천 재적자는 그 수가 명확치 못하나 약 60명 이상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유사 이래 초유인 대지진 중에 있던 자녀의 소식을 알고자 본사 인천지국 후원으로 친족회를 조직하고 구제방법까지 협의하였다 함은 이미 기사화한 바 있거니와 그 후에 위기일발로 천신만고를 겪고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동포도 있으며 혹은 병사나 독학부에 수용되어 있어 부모 친척의 타는 가슴을 적게나 위로하는 전보나 서신이 있어 차차로 안부의 소식을 알게 되는 터인데 15일까지 판명된 소식은 여좌하더라

살아나온 사람 인천 송현동 86의 2 배순남(16) 배순석(14), 외리 180 김영운(19), 내리 205 김동수(20) 무사하다는 소식이 있는 사람 외리 206 고주철(의사, 고유섭 숙부), 용강정 44 이창문(20), 산근정 3 김형대(24)

마산 유학생 부모 위로 방문

마산에서는 지난번 동경 진재 후 그 자제의 소식을 알지 못하여 민울 중에 있는 일반 학부형을 위하여 부청에서는 심산[深山] 내무과장과 정규창 서기 양 씨를 부윤 대리로 경찰서에서는 김병태 강태문 양 씨를 서장대리로 수일 전에 각각 시내의 동경 유학생 가족을 방문하였더라

〇진재지 유학생 조사

이원의 일본 유학생회에서는 금번 동경지방 진재에 더불어 이원인으로 동경에 재유 중이던 동포의 안부를 조사하며 구제하기 위하여 협의한 결과 동경에 위원을 파견하기로 하고 한편으로 동정금을 모집 중인데 위원은 다음과 같더라

조홍국 김윤희 이상락 전원숙(애족장, 3·1운동) 박인준 정상섭 최세린

 

1894년 함남 이원에서 태어나 1948년 순국한 전원숙은 1919년 3월 11일 함남 이원군 남면 차호시장에서 약1천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국”이라 쓴 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행진하였으며 아울러 군중들에게 독립을 위해 노력하라는 연설을 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1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운동계열 3.1운동 애족장을 2000년에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철원 진재 구제 협정

금번 동경지진에 대하여 당지 일인과 조선인 유지를 군청에 회집하고 구제금 모집을 협의하였는데 일본인 측에서는 관리를 제하고 민간에서만 천원을 부담하기로 하고 조선측에서는 일천 오백원 이상을 부담하기로 협의하였다더라 – 동아일보 1923. 9. 18

 

윤치호 일기 1923년 9월 18일 화요일

다행스럽게도 도쿄와 요코하마에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조선인들이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게 낭설인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2천~3천 명의 조선인들이 격분한 일본인들에게 린치를 당했다는 내용의 소문이 나돌고 있다.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장용섭의 누이인 장정심이 9월 2일에 쓴 편지에 의하면,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 패거리가 그녀를 죽이려고 하숙집을 들이닥쳤다. 그녀는 하숙집 주인이 일본 옷을 입혀준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함께 하숙하는 사람들도 그녀에게 더할 수 없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장정심 감리교 전도사 - 여류시인, 개성 최초의 감리교 신자 중 한사람인 장효경의 딸이다. 호수돈여학교, 이화학당, 협성여자신학교를 거쳐 감리교 여선교회 사업부에 근무하며 문서 및 전도활동에 매진했다. 일제 말기에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 제4대 총무를 지냈다. 독실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 종교시를 다수 남겼다.

 

〇피난동포 경성역에 4인 각각 고향으로 갔다고 작이 오전 9시 경성역두에는 동경으로부터 피난하여온 우리 동포가 네 사람이 있었다는데 몸에 돈 한푼도 지니지 아니하였으므로 경성부인사담당소에서는 매인 앞에 오십전씩 점심값을 주어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는데 그네들에 주소 성명을 아래와 같다더라

함남 고원군 상산면 명현리 오재신 강원도 회양군 사동면 구만리 박보근 함남 고원군 하발면 현덕리 이준학 함북 종성군 행산면 삼봉리 엄문일

〇전남 청년 2인 피난하여 무사 귀국 전남 영광군 대마면 묘량리 16번지 소성순(29) 군은 대판에서 노동을 하다가 천신만고로 무사히 귀국하였다하며 함평 사람으로 동경에 유학하던 이재균 군도 무사히 귀국하였다더라(함평)

〇진남포의 학생 구사일생의 힘을 다하여 다시 고국 구경을 하였서 진남포부 신흥리 심희돈(25) 군과 동 부동리 서순삼(23) 군은 동경에서 고학 생활을 하던 중 구사일생의 힘을 다하여 다행히 귀국하였다더라(진남포)

〇진남포의 일가족 진남포 차제창 군의 가족 네 사람은 지난 13일 아침에 진남포역에 도착하였는데 그들은 횡빈으로루터 돌아왔다더라(진남포)

〇광주는 11인 십오일에 무사 도착 일본 관동지방 진재지로부터 피란한 동포 중 지난 15일 오전 1시 40분 광주 착 열차로 도착한 이의 씨명은 다음과 같다더라

화순군 청주면 관영리 주상순 광주군 광주면 기옥정 강영석(애족장, 학생운동)으로 1990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으나 ‘동양지광’ 경리부장을 역임하여 친일인명사전(교육학술)에 등재 되었다. 동 박일덕 동면 이득수 최경문 강순명 이영권 장형두(조선 유일무이 천재 식물분류학자로 1949년 좌익으로 몰려 고문사 당하여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있음) 외 일본인 소야정오

〇생환고국의 동포수 금번 관동지방 진재에 이하여 7일 저녁으로부터 부산 상륙하는 동포가 매일 연적한바 부산수상경찰서에서 조사 발표에 의하면 12일 현재 부산에 상륙한 조선인 통계가 1,272명 중 402명이 피난 학생이라더라(부산) - 조선일보 1923. 9. 18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각 지방마다 유학생 노동자들의 귀국 소식과 경찰서에서 귀국하지 못한 유학생 집을 방문하고

윤치호 일기에서 유언비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 조선 내에서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참상의 소식을 듣고 알고 있는데

신문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통제한 조선총독부 군경의 통치행위 윤건희 정부도 이와 같아

친일 청산 반민특위 해산한 리승만 대통령의 헛발질이

독버섯으로 돋아나 분탕질을 쳤고

그에 동조하는 돈먹는 하마들의 개독과 미쿡 추종자들이 날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