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제노사이드 피해자 37명, 자살 1명, 중상 12명, 유언비어 구류 5명, 행방불명 20명 명단을 찾아내다.
2025년 9월1일
문의 / 041-552-1923 (1923역사관), 1923kantou@gmail.com
아래는 6,661명 중 1/10도 안되는 학살 피해자 명단입니다.
(이 명단은 간토학살100주기를 맞아 한신대학교 상생전환센터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연구용역을 받아 하종문교수 (한신대교수), 성주현 연구소장(1923제노사이드연구소), 김종수 관장(1923역사관)이 공동연구에 참여하여, 간토학살관련 사료와 문헌, 현장연구자료, 추도비 등 각종 자료들을 분석하여 정리한 명단입니다.
더 충분한 연구와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를 통해 더 많은 학살피해자 명단을 확보하여, 조속히 위패를 모실 추도공간을 조성하고, 학살 현장에서 조선인 유해를 모시고 추도해 온 간토 각 지역의 관계자들과 협의를 통해 하루속히 유해가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도합니다.)
학살피해자 명단
강대흥, 강상백, 강문근 외 7명, 강양순 외 6명, 강정순, 고태(대)철, 개국길?, 공우용, 구유덕, 구학영, 권갑문, 권선규, 권왕석, 권유지, 권일섭, 김광삼, 김광진, 김광수, 김개학, 김건원, 김권이, 김규복, 김기내 외 열대여섯명, 김달선, 김덕수, 김덕현, 김도원, 김도현, 김동민, 김동원, 김동인, 김동하, 김두성, 김만이, 김말룡, 김말술, 김명도, 김 모, 김 모, 김 모, 김목환, 김문환, 김민수, 김백출, 김분남, 김사봉, 김삼명, 김삼선, 김삼쇠, 김상주, 김상호, 김석봉, 김석현, 김성동, 김성래, 김소룡, 김소선, 김수근, 김수범, 김수진, 김순갑, 김순이, 김 시, 김악개, 김영수, 김영일, 김영태, 김용호, 김우명, 김우생, 김원달, 김원준, 김월빈, 김유필, 김윤근, 김윤우, 김인수, 김인유, 김일영, 김일출, 김재근, 김재만, 김재수, 김재일(익), 김점암, 김정근, 김정대, 김정백, 김정수, 김주홍, 김지엽, 김진욱, 김 창, 김창석, 김천선, 김철진, 김철현, 김치두, 김태암, 김팔암, 김팽제, 김한권, 김한제, 김한주, 김 현, 김호범, 김호철, 김홍대, 김홍삼, 김홍엽, 김흥근
남만이, 남성(수)규, 남진갑, 노봉문, 달 이(이달이), 도갑기, 도기학, 도의환, 류 석, 류호영, 묘동곤(병상곤), 문재수, 민국길, 민인(린)식(내무대신 민영달 삼남), 민춘용, 박경득, 박경운, 박경이, 박경표, 박계운, 박 기, 박남필, 박노철 박단수, 박덕수, 박도인, 박명도, 박명사, 박명수, 박 모, 박무학, 박백오, 박백흥, 박복명, 박봉선, 박서동, 박성재, 박소송, 박소출, 박수재, 박순암, 박순이, 박영화, 박용술, 박위특, 박유신, 박윤두, 박인도, 박재룡, 박준봉, 박지용, 박쾌특, 박태선, 박판준, 박학조, 박해이 외 2명, 박호인, 박화순, 박희태, 배후홍, 백달이, 백소달, 백용덕, 백우개, 백운수, 변용창, 병상곤, 봉 모, 사태근, 서막동, 서중이, 서학운, 설인백, 성대갑, 성오주, 손봉원, 손봉현, 손우팔십, 신응수, 손태현? 외 4명, 송기일, 송세팔, 신경운, 신명개, 신만조, 신영섭, 신우준, 신응헌, 심상백, 심학봉, 심 모, 안계용, 안덕수, 안해조, 양순이, 여능암, 여종원, 여현희, 예상곤, 오관근 외 열 몇명, 오덕수, 오시조, 오우성, 오의수, 오택근 외 십수명, 오현주, 오효근, 우덕기, 유규석, 유세용, 유정식, 유지경
유형식, 유호영, 윤 길, 윤석순, 윤용학, 이건재, 이공기, 이관수, 이광국, 이광명, 이금호, 이기포, 이기표, 이달이?, 이달출, 이 당, 이도술, 이동근, 이만수, 이만희, 이명수, 이사중, 이삼석, 이상권, 이상금, 이상도, 이상호, 이소개, 이 속, 이손술, 이수문, 이순봉 외 6명, 이순양, 이순풍, 이언창, 이열성, 이영흥, 이왕원, 이용갑, 이운조, 이원석, 이을판, 이익호, 이일필 외 2명, 이재호, 이전국, 이정문, 이차석, 이차세, 이천석, 이철우, 이춘용, 이판개, 이판암, 이해용, 이현모, 이홍중, 이흥순, 이희원, 이희현, 임동인, 임만권, 임선일 옆에 앉아 있던 남성도 학살, 임소봉, 임수권, 임우권, 장교순, 장기선, 장동수, 장상규, 장상진, 장석진, 장판암, 전갑룡, 전민철, 전용문, 전우식, 전을생, 전판병, 전판암, 전필란, 전암천, 정경규, 정군팔, 정귀봉, 정기우,
정씨들 3명(거창군 출신) 조인승 증언, 정귀봉, 정기우, 정덕로, 정 모, 정병환, 정상조, 정성현, 정세윤, 정승현, 정암우, 정용이, 정인숙, 정종목, 정태열, 정현빈, 조건원, 조공국, 조묘성, 조석하, 조성도, 조성준, 조수구, 조수규, 조재석, 조정수, 조정원, 조정하, 조창순, 조판은, 진경만, 진상영, 진학승, 차봉조, 차태숙, 차학기, 천곡야, 천맹수, 천상곤, 최대준, 최덕용, 최만봉, 최만수, 최문봉, 최병식, 최병준, 최봉술, 최상근, 최상기, 최선 외 2명, 최석근, 최 선, 최순봉, 최승희, 최억환, 최연재, 최준석, 최희덕 외 1명, 표기식, 하석수, 하 모, 한민훈, 한봉구, 한용(룡)기, 한용석, 한용선, 한용조, 한합예, 허성일, 허일성, 홍기백 외 포함 3명, 홍기태, 홍성우(충청도 출신)의 사촌, 황종균, ●봉호, ●월봉,
〇조선일보. 진재지 동포의 안부 동경에 출장한 경성부리원의 전보
동경에 출장한 경성부 리원으로부터 이재민에 대한 안부조사 보고는 재작일을 위시하야 전보로 답지한다함은 이미 보도한 바어니와 작일 오전 9시까지 하여 경성부 주민으로 동경에 가 있던 총 인원은 348명이라는데 그중에 사망한 자가 2명이요 행위불명자된 자가 51명이라하며 그 중에 우리 동포는 아래에 기록하여 13명인데 1명을 행위불명이라더라
조선일보 1923. 9. 19
〇유치 중의 공부를 자경단이 학살
유치 중의 공부를 2백명의 자경단이 학살
이백명의 자경단이 경찰을 습격하야 공부 십오명을 무고 학살
일본 군마현 다야군의 자경단 2백명은 지난 9월 5일 등강경찰서를 습격하고 유치장에 있는 공부 십오명을 학살한 사실이 판명되야 주모자 수명이 검거되었는데 원인은 진재 발생될 때에 전기 경찰서의 태도가 온당치 못한 일을 하였다고 분개하여 습격하는 동시에 아무 이유 없이 전기공부 15명을 살해한 것이라더라(동경전) - 동아일보 1923. 10. 14
조선인 대학살을 내용을 완전하게 쓰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한 신문 기사이다.
〇‘한말 내부대신 민영달 아들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때 피살당한 것을 뒤늦게 안 조선총독 사이토 미노루가 민영달을 찾아가 사죄하였다.’ - 동아일보 1982. 9. 1
〇진재 중에 참사한 동포
일본 제빙회사에서 노동하던 8명의 청년은 사망하였다
진재 중 동경부 하정교[下淀橋]에 있는 일본제빙회사에서 노동하는 동포로 일사행위불명에 있다가 사망한 것으로 판명된 사람이 8명이라는데 그 씨명은 다음과 같다더라
원적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안계용, 제주도 조천리 김한주, 제주도 함덕리 김도현, 김덕현, 김원준, 김석봉, 김재익, 한민훈 – 조선일보 1923. 10. 13
〇진재 후의 대소란을 궐기한 유언의 출처가 판명
신내천현 고진서장의 입으로 나왔다
서원을 모아놓고 훈시를 한 후 방어 준비까지 시켜 – 동아일보 1923. 10. 17
〇이중난을 겪으면서 살아나는 기억(3) =제1 대난이 지진화재= =동도 문화가 일장춘몽 김상철(寄).
〇폭행자 20명을 검거 진재 당시에 자경단원들이
단장도 모르게 십여 명을 학살한 자 경시청에 검거하여 검사국으로
동경 경시청에서는 폭행한 자경단을 검거함에 노력하던 바 부하 사도촌에 출장하야 취조한 결과 20명의 폭행자를 검거하여 검사국으로 보내였는데 그 검거된 자는 기옥현 출신의 신곡복평 씨의 지휘 아래에서 활동하던 자경단으로 지난달 3일에 능뢰촌에서 신곡씨는 수병이 동행인에게 자세히 조사를 하는 중 단원 수명은 신곡 씨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14명을 살해한 사실이 발각된 것이라는데 신곡 씨는 다만 그 단원을 령솔하고 있을 뿐이오 살인 사건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듯한 바 방금 증인을 불러 볼 터이라더라(동경 전보) - 조선일보 1923. 10. 17
자경단의 살해인수 450명 이상 검거 기소된 자경단원은 40명에 불과했다
〇음모사건에 얽힌 정화
박열과 그 애인 사랑과 주의의 공명으로 감옥에까지도 같이 갔다
〇군마의 학살범 34명을 검거하였다 – 동아일보 1923. 10. 18
〇유언의 출처 산구정현 일파의 소위
일본에 진재가 발생한 당시에 전국에 유언이 돌아다닌 결과에 여러 가지 참극이 생기었다 하여 경시청과 신내천[神奈川]경찰서에서는 그 유언 출처를 극력 조사하였는데 방금 횡빈에 수감한 입현 로동당 총리 산구정헌[山口正憲] 일파 14명의 소위로 판명하였다더라 – 조선일보 1923. 10. 18
〇58명을 학살 기옥현에서 자경단이 노동자를
지나간 9월 4일 기옥현 웅곡정[熊谷町]서도 58명 참살 그곳 자경단이 노동자들 일이 발각되어 방금 범인을 염탐 중이라더라 – 조선일보 1923. 10. 18
〇이중고를 겪으면서 살아나던 기억(4) =제1대난이 지진화재= =동경문화가 일장춘몽= 김상철(寄) 10. 24(6) 10. 25(7)까지 이어짐
- 조선일보 1923. 10. 18
1923년 10월 20일 조선인 학살사건 ‘일부 해금’
10월 20일 일본 정부는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사건에 관한
신문 보도 통제를 ‘일부 해금’했다
10월 말에는 중국인 살해 및 피해 사실도 보도되기 시작했고
11월 3일에는 상하이의 독립운동단체, 한중호조사가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에 대한 항의의 뜻을 담은 ‘선언서’를 발표했다
신문에서는 서관수해동정금 모집과 공진회 기사를 줄기차게 게재하며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에 대한 기사는 내보지 못하게 통제하였다
〇진재 중에 참사한 동포의 추도식을 순창에서 거행
순창 동포로만 참사한 이가 15인.
전북 순창군에서는 동경진재 중에 무참히 사망한 동포 15인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동군 유지 신승휴 최규흥 외 6인의 발기로 지난 11일 오후 1시경에 읍내 <소작인상조회관>에서 추도회를 열고 성대한 추도식을 거행하였다는데 장내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엄숙히 거행하는 중 당일 추도식에 참례한 참사자의 가족들은 그 얼굴에 형언키 어려운 슬픔을 띤 속에서 조한균 씨의 엄숙한 개회사로 시작되어 곽명규 조학윤 양 씨의 슬픔에서 우러나는 비장한 추도사가 있은 후 계속해서 동경진재 중에 참경과 고통을 겪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여 돌아온 우치홍 씨의 추도회가 끝나자 죽은 동포 부모형제 처자들이 고인을 생각하고 호곡하는 형용은 보는 자로 하여금 두 줄 눈물을 금치 못하게 하여 현장은 참담한 광경을 이루었는데 추도식은 비애 속에 무사히 끝을 마치었는데 동경진재 중의 죽은 동포 씨 명은 아래와 같더라
김재근, 김홍삼, 김정근, 김순갑, 김삼쇠, 김한권, 최병준, 김규복, 리기표, 김창석, 서막동, 배우홍, 리철우, 로봉문, 류석 등이다. - 조선일보 1923. 11. 28
〇참사동포의 추도식
북청청년회에서 거 9월분 동경진재 중에 참사한 좌기 동포 제 씨의 추도식을 본월 15일 하오 1시에 본 회관 내에서 거행하기로 예정하였다더라
참사동포 전민철 이전국 이금호 고대철 이열성 정승현 정현빈(북청)
- 조선일보 1923. 12. 9
〇1923년 12월 10일 전민철 북청 청년 추도
전민철은 니혼[日本]대학 유학생으로 학우회와 천도교 청년회 도쿄지회의 중심인물이었다. 1921년 7월 하기고국순회강연 중 평안북도 박천에서의 연설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검거, 기소되었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고 도쿄로 돌아갔다. 이후 유학생들이 1921년 11월 5일 워싱턴회의를 향한 독립청원을 위해 ‘제2의 독립선언’을 했을 때 선언 주체인 5명의 ‘조선청년독립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 일로 출판법 위반으로 9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22년 11월 1일 만기 출옥하였다. 출옥 후 불과 10개월 만의 사망이었다.
독립운동가 전민철 나라에서 어떠한 기림을 받았는지 국가는 무엇을 하였는지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서해야 하지 않는가?
영원히 멈춘 청춘 언제 어디든 꽃봉오리 아니리
2018년 10월 두 번째 토요일에 펼쳐진 진관사 국행수륙재에
계호 주지스님 법해 총무스님 배려로
동경 등강경찰서 사건으로 학살당한 18명의 영가를 진혼하고 천도재를 지냈다
그분들의 이름은 김동원 김철진 조정원 김백출 남성규 김인수 허일성 김성래 김두성 조수구 김동인 이상호 묘동곤 김주홍 정용이 정귀봉 천곡야 차봉조 등이다
이재자 위로금
경북 의성군 경내에서는 작년 9월 관동지방의 대지진에 이하야 불행히 사망한자가 40여에 달하얏는대 거 12일 당 군청 내에서 해 유족을 소집하야 위금이라는 명목하에 매인 2백원식의 저축예금통장 일매식을 교부하얏는대 기중 의성면 오의수 안평면 김흥근 양씨의 유족은 해금을 절대사절 하얏다더라(의성)
- 동아일보 1924. 02. 19
이재자 위자료
동 손불면 북성리 박노철 씨는 작년 관동지방 진재 당시에 필시 조난 사망한 것이라는대 조선총독부에서 금 2백원을 위자료로 기 유족에게 수여하였으므로 거 10일에 본 군청회의실에서 군수 오광은 씨가 각기 전달하였다더라(함평)
- 조선일보 1924. 4. 15
행방불명자 명단
김교경, 김동하, 신영련, 유위동, 이이동, 임남식, 임창식, 정진영,
구원준(시인 구상 맏형) 김교경, 박덕수, 안영의, 이기, 김철, 임병주, 정의석, 권상부, 권중관의 일가족, 최창문, 허민수, 이성열, 안순영, 임창인, 이광실, 김창섭, 송연준, 한규정, 김순용
〇경성부에 15인 무사한 소식이 또 왔어 지난 18일로 19일 오전 9시까지 한하여 경성부에 도착된 동경재류인 안부조사 전보에 의하면 총인수 243인 중에 행위불명된 사람이 21인이라하며 그중에 우리 동포는 15인인데 그 씨명은 아래와 같다더라
임병주 정의석 권상부 권중관의 일가족 최창문 허민수 이성열 안순영 임창인 이광실 김창섭
- 조선일보 1923. 9. 20
〇재후 동포 소식 경성부 출장원 조사 경성부 동경재류 조사 출장원으로부터 재작일로 작일 9시까지 보고된 보에 의하면 동경의 93인 중 행위불명 된 자가 32인이오 횡빈에 44인은 다 무사하다는 우리 동포는 아래와 같다더라
송연준 한규정 김순용 이상 3명은 행위불명
– 조선일보 1923. 9. 22
〇안영의 동양대학 대학생 이기(치과의) 김철, 9월 3일 나라시노에 수용됨 → 13일경 경찰로부터 군대 측에 인도된 이래 완전히 행방불명 → 유족이 수사 요청
※ 확증은 없으나 나라시노수용소에 인도된 후 학살된 사람 중에 세 명이라 추측됨 수용소 내에 스파이가 들어와 사상적 선별을 통해 학살, 학생이나 의사 등 인텔리는 타켓이 됨(니시자키 주석)(《보지報知》 1923. 11. 22)
후유증으로 인한 자살
정인영
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살
서두천
남편 리정용 친정오빠 박무덕 생사 몰라 자살
박성녀(달성군 현풍면 하동) 두 살 아들 60여세의 시어머니
총상, 자상, 집단구타 등의 피해
강흔생, 고봉아, 고학이, 구철원, 권의덕, 권칠봉, 김건?, 김곤유, 김금류, 김동우, 김병권, 김봉화, 김상년?, 김승중, 김영일, 김용택, 김용현, 김위광, 김인수, 김정석, 김주영, 김태엽, 김해명, 김현모, 김희백, 노□진, 문기출, 민병옥, 박경진, 박기(사망자 명단 중복), 박도선, 박성춘, 박수인, 박 익, 박이현, 박일순, 박재춘, 배동주, 봉허도, 성리□, 송학백, 신창범, 이경식, 이규석, 이근영, 이내선, 이성구, 이영수, 이현모(막), 이홍중, 장덕경, 장선당(동), 전석필, 정삼준, 정숙개, 정숙용, 조창순, 진와정, 최규석, 최병희, 여자 1명 최승희 중상(사망자 중복), 최연재, 허연관, 홍홍예(조), 황광균
정신이상
현상명(중앙학교장 현상윤의 동생)
구류 유언비어
변산조, 차정빈, 김충의, 최성하, 김억문(귀향 열차 안에서 대구경찰서에 걸려 대구형무소 20일)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당한 희생자
2009년 5월 8일 현재까지
미시자키 마사오 그룹 호셍카(봉선화) 대표
관동대진재 조선인학살과 진상규명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 일본사무국
도쿄
〇강양순 외 6명, 9월 3일 스미다구 스미다쵸 타마노이 산오하시, 일본도 쇠갈고리 등으로 전원 살해되었다(법무부, 신문, 경시청)
〇유세용·최승희(20)·그 자녀 강문근 외 7명, 3일 스미다구 테라시마 타마노이 전원 살해됨 →재판으로(『도신문』)
※ 그 외 사료(법무성·그외 신문·경시청)에서는 조선인 남자 1명 살해, 여자 1명 최승희 중상
〇김윤우 27살, 3일 스미다구 스미다쵸 오오쿠라목장 부근 일본도로 살해(법무성·신문·경시청) ※《국민신문》에서 김곤유(중상)
〇최선 외 2명, 4일 스미다구 아즈마마치 우케치 토비키이나리 신사 부근 철도 건널목 큰 도끼 철봉 목검으로 구타살해 단총 일본도라는 설도 있음 재판→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법무성·신문·경시청)
〇홍성우(충청도 출신)의 사촌, 일시 불명 스미다구 케이세이선아라카와역 부근의 아사히나 고무공장 앞 텐트 외 끌려가 죽음을 당함(추도회 《회보》 제34호, 1986년)
〇정씨들 3명(거창군 출신), 2일 스미다구 요츠키바시 도망가려고 하다→쇠갈고리로 학살당함(조선대학교 『관동대재해 조선인학살의 진상과 실태』의 조인승 증언으로부터)
〇임선일(아라카와 제방공사에 종사), 4일 오전 2시 아라카와 제방 제이세이 철교 가까이 자경단에 의해 일본도로 학살. 옆에 앉아 있던 남성도 학살(조선대학교 『관동대재해 조선인학살의 진상과 실태』의 진창범 증언으로부터 발췌)
코토구 카메도경찰서에서 희생자 성명 본적
〇박경득 24 경기도 개성군 장서면 구하리, 〇김재근 44 전북 순창군 풍산면 연승리, 〇조묘성 제주도 대정면 인성리(살해 당시 임신부), 〇조정수 동, 〇조정하 동(최승만의 『극옹필경』)
〇민춘용 30 조창순 21, 3일 코오토오구 카메이도 오오지야나기시마 유원지 파출소 부근. 민씨는 박살 조씨는 일본도로 베어 중상 →사망설도)(법무성·신문·경시청)
〇유지경 28 외 2명, 2일 오오시마 제강 가까이에 있는 오나기카와 상류 부근에서 자경단이 박살(《요미우리》 1923. 10. 21)
〇한용기(룡기) 3일 아다치구 센쥬쵸2쵸메도로 도끼 일본도로 박살(법무성·신문)
〇이순봉 외 6명, 3일 이다치구 남릉뢰촌유하 죽창으로 살해당함(법무성·신문·경시청)
〇혼자 부근에서 전원 도망가고 학살당한 것은 이흥순 31(신문)
〇한봉구 박인도 김사봉 이원석 이건재, 4일 아다치구 화인촌장교 일본도 죽창 곤봉으로 박살 시체는 아에세가와에 던져짐(법무성·신문)
※ 『숨겨진 사(사이타마)』에는 손태현 외 4명 에노키의 다리(『통지』 10월 21일) ★이름 불일치
〇이희현, 3일 니시아리이무라 관공서 앞에서 엽총으로 사살됨(《보지報知》 1923. 10. 21)
〇통칭명 용공, 3일 다이토오구 미오와 학살(요미우리신문 1924. 2. 14)
〇신응수, 4일 미시마(타이토오구 미카와시마 인지?) 철판 뿔막대 떡갈나무로 만든 봉 도끼 등으로 박살(법무성)
〇김영일 31 상애회 박기 28 상애회, 4일 다이토오구 미노와역, 김영일 박살 박기 중상(법무성·신문)
〇박모씨 28, 2일 세타가야구 태자당 후두부에 사냥용총으로 맞아 살해됨(법무성·신문·경시청)
〇홍기백 기1를 포함한 3명
2일 세타가야구 치토세무라 카라스야마 조선인 토목공 17명을 칼날이 꽂혀 있는 지팡이 쇠갈고리 심장봉 죽창 삼목 통나무막대 등으로 습격하여 1명 살해 신문에서는 3명 살해로(법무성·신문·경시청)
〇민린식 25 일본대학 연구과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호동막리 상리 서문반 민영달 삼남, 3일~5일 제설 토시마구 스가모쵸오 지헤이마츠에서 창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사살당함(현대사 자료 6, 524쪽 조선총독부 경무국 문서)
〇‘한말 내부대신 민영달 아들(민린식)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때 피살당한 것을 뒤늦게 안 조선총독 사이토 미노루가 민영달을 찾아가 사죄하였다.’ - 동아일보 1982. 9. 1
김건(한위건)의 「학살」로부터 ※ 모두 날짜는 불명
〇양순이 경남 진주군, 유호영, 하석수(원적 불명) 스미다강 부근
〇월봉 평안남도 성은 불명, 카메이도 부근
〇이동근, 달이 대구부 신정 미나미센쥬 센쥬마치
〇김수일 경남 사천군 읍내면 선동 츠키시마 2호
〇김수범 카메이도
〇김월빈 평양부 장별리 카메이도 방적사 부근
아사쿠사바시
〇김광진 김광수 김동민 김광삼 이공기 목포에서 배로 건너간 팔이도 출신, 아사쿠사바시에서 양복 봉제 기술을 익혀 생활하고 있었지만, 지진재해 때 5명이 학살되었다. 고향에 무덤은 있지만, 유골은 없다. 어디에서 학살됐는지 상세한 내용은 불명. 같이 살고 있었던 김동진만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일본인 집에 굴러 들어가 도움을 청한 후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조선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관동대지진에 있어서의 조선인 대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추구하는 일한 재일 시민회 회보》 제3호 2009년)
김영수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소꿉친구 김영수는 칸다바시 쪽에서 귀가하는 도중에 학살되고 그 사실을 몰랐던 부인은 그 후 몇십 년 동안이나 남편을 기다렸다는 애화가 있다(『도일 한국인 일대』 김종재 기술 옥성소 편집 1978년)
장소불명
〇김민철 이전국 고대철 이전호 이열성 정정현 정현빈 7명, 사망일시 장소는 기재 없음. 경성 소재 청우장학회(봉남 출신 학생으로 조직된 단체)가 일본에 유학 중 이번 재해 때문에 7명이 사망하여 추도회를 행했다. 이때 고인의 약력에는 성만 기재되어 있다.(재해로 말미암아 사망인지 학살인지 불분명하나 추도 소감을 말하는 가운데 “ 이번 재해는 실로 참담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지진과 화재 속에서 또 다른 의미의 특별한 지진과 특별한 화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지역과 특별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라고 표현하여 발언을 중지당한 것을 보면 학살이었다고 생각함(주 니시자키)(조선총독부 경무국 문서→「현대사 자료⑥ 523쪽)
〇박덕수, 재해 시에는 군마에서 일(토목 청부업)을 하고 있었으나 부하가 돈을 갖고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그 부하를 쫓다가 재해 하에 있는 동경으로 향했다. 다들 말렸지만, 나이도 젊고 정의감도 강함. 일본어도 할 줄 알고 자리에도 밝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자신만만하게 향했으나 그 후 소식불명이 되었다(『바람아 봉선화의 노래를 날라라』
사이타마
〇강대흥, 4일 오오미야 편유촌 죽창 일본도로 학살 당함 오오미야시 소메야 츠네이즈미데라 『공조노여환비선정문위』의 비석(『숨겨진 역사』) 1924년 일본인이 만든 조선인 무덤 중 최초라고 일컫는다
강대흥의 이야기는 오충공 감독의 세 번째 다큐 <1923제노사이드 93년의 침묵>에 고향 손자와 오고 가며 일본 추모비와 고향 초혼장 무덤 옆 흙을 주고 받아 묻는 영상이 담겨졌다.
〇구학영 28일 조선 경남 울산군 상면 산전리 5일 기거경찰서 6일 사망 기거했던 마을 정수원에 「감천수우신사」의 비석 – 희생자 이름과 고향 주소가 적혀 있는 유일한 비석(『숨겨진 역사』)
구학영 씨의 이야기를 담은 『엿장수 구학영』(김종수, 기억의 서가)이 목사이자 작가인 김종수 ‘1923 한일재일시민연대 대표’에 의해 2021년 출간됐다
카나와나
〇차태숙 23, 4일 카와사키 타치바나군 타지마쵸오와 타리다에서부터 끌려나와 노상에서 단도로 사살당함(법무성)
〇이상금 31 박화순 24, 2일 카와사키쵸오 후지가스 방적공장 임시고용 부근에서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가다가 학살당함(같이 있던 강흔생 19세는 빈사의 증상)(《동경일일》 1923. 10. 21)
〇김기내 외 열대여섯 명, 토즈카 방면으로부터 피난 왔으나 학살당함 요코하마 토비토 부서 관내(《동경일보》 1923. 11. 19)
치바
〇박명사 성대갑, 4일 카토리군 나메카와쵸오 주차장 목도 통나무로 박살 ※ 같이 있었던 서두천은 두려운 나머지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법무성·신문)
〇이일필 39 조성도 20 조재석 26, 3일 및 4일 아비코쵸초 야사카 신사 경내 막대기 통나무 등으로 살해됨(법무성)
〇최희덕 박순이, 3일 우라야스쵸오 일본도 철봉 등으로 살해당함(법무성)
〇오관근 외 열 몇 명, 4일 후나바시경찰서 부근 쇠갈고리 죽장으로 상해 치사(법무성)
〇정기우 35 개국길 34 사탕 장난감 행상인 타이쇼오 8년부터 치바시 사무카와 카타마치 카즈사야노구치 기숙 군중에 의해 반 죽음당함 → 치바에이쥬병원에서 사망(《동경일일신문》 1923. 10. 21)
※ 《동경일일방총판》 11월 14일에는 정기우 36 살해, 이규(奎)석 35 중상(야마다 선생 책으로는 이규(圭)석의 이름으로) 피습당한 2명 중 1명은 이름이 틀림 사망, 중상 양쪽 설이 존재
〇박해이 외 2명, 4일 사와라에서 하천공사에 종사했던 토공 소방부가 학살함(《보지報知》 1923. 10. 26)
〇안영의 동양대학 대학생 이기(치과의) 김철, 9월 3일 나라시노에 수용됨 → 13일경 경찰로부터 군대 측에 인도된 이래 완전히 행방불명 → 유족이 수사 요청
※ 확증은 없으나 나라시노수용소에 인도된 후 학살된 사람 중에 세 명이라 추측됨 수용소 내에 스파이가 들어와 사상적 선별을 통해 학살, 학생이나 의사 등 인텔리는 타켓이 됨(니시자키 주석)(《보지報知》 1923. 11. 22)
군마
후지오카쵸오 후지오카경찰서에서 희생자 성명 본적
〇김도원 27 경북 예천군 감천면 돈산동
〇김철진 41 경북 상주군 화북면 동안동 〇조정원 43 동, 〇김백출 29 동, 〇남수규 38 동,
〇김인수 22 양남면 석촌리, 〇허일성 25 동
〇김성래 34 경북 영주군 영산 면포동, 〇김두성 23 동 관현동
〇정귀봉 25 경북 청도군 구도면 합천리, 〇묘동곤 27 동(법무성에서는 병상곤), 〇김주홍 28 동
〇조수구 27 경남 진주군 진주면 중안동, 〇천곡야 24 경남 울산군 능촌면
〇정용이 22 본적 불명, 〇김동인 26 동
〇이상호 26 경북 영주군 영산 면포동
(최승만 『극옹필경』, 《동경일일신문》 1923. 10. 21)
토치기
〇김원달 외 1명, 3일 밤 고가네이역에서 열차로부터 끌어내려져 막대기둥으로 상해 치사 ※ 황광균은 중상(법무성·신문)
※ 학살 희생자 중에서 이름 석자가 다 파악된 인원수(굵은 글씨로 표기) 68~81명 정도
부상자 리스트
도쿄
〇최규석 2·3일 제설 아다치구 센쥬 2쵸오메 도로상에서 일본도로 중상을 입음(법무성·신문)
〇김용택 44 인부, 〇김승중 19 고학생, 〇박일순 25 여공, 〇고봉아 20, 〇박수인 25 여공 2일 시나가와구 키리가야 = 오오사키오시 제약회사 구두제조용 쇠망치 심장봉으로 난타하여 중상(법무성·신문·경시청)
〇홍홍조·우 24·26살이라는 설 직업공, 히모헤비구보 막대기 죽창 천평막대 목검으로 중상(법무성·신문·경시청)
〇이현막 24, 2일 시나가와구 히라쓰카 시모헤비쿠라 마을 막대기 소방용 기구로 중상(법무성·신문·경시청)
〇장덕경 43가량 직업공, 장남 장선동 19살 2일 시나가와쵸 메이지고무제조회사 근무 타박(《선데이 매일》 1976. 9. 12)
김건 「학살」에서 일부불명
〇김병권 전남 광주군 서창면 서용두리 우에노공원 부근 → 중상
〇이내선 전남 장흥군 우에노공원 부근 → 중상
사이타마
〇박이현 41 원적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송북동 246호
〇김해명 44 원적 경상북도 각남면 구곡동
4일 사이타마 키타아다치군 하토가야쵸오 오오지 하타가야
〇박이현 두부 오른쪽에 길이가 한 치 정도 깊이로 골막에 달하는 열상 외에 신체 각 부위에 타박상
〇김해명 날의 폭이 넓고 칼등이 두꺼우며 끝이 뾰쪽한 식칼용 칼로 길이 2치 정도 깊이로 골막에 달하는 척부 부상 그 외 타박상
〇김상년 4일 아라카와구 오구마치카미오구 단도를 들이대나 외국인이 저지(법무성)
토치기
〇박성춘 17 4일 진와정 남자 2명 여자 1명 어린이 2명이 뭇매를 박씨는 숨이 끊어졌다가 소생 여장 1명 반죽음(《이바라기신문》 「관동대지진의 화근」 사꾸라이 유우꼬·고토오 토모코)
독립운동·불령선인[不逞鮮人] 학살(Genocide) 편집/1923 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 제작/기장생명선교연대 간토 89주기 자료집 33~39쪽
지바현 현장 답사 안내
지바현 내의 학살사건 일람
A. 군대에 의한 학살(지바현 관련)
〇시천지역 남행덕촌 하강호천교제(금정교)에서 조선인 1명을 기병 15연대군조 판본조광 일등조장 장조단십랑에 의해 9월 2일 오후 11시 반 사살하였으나,
〇시천지역 하강호천교북힐(금정교) 조선인 3명을 기병 산기중대 판본군조 기병졸 산기중대 기병졸소천주삼 소림건이 등이 9월 4일 오후 4시 사살하였으나,
〇시천지역 하강호천교북힐(금정교)에서 조선인 5명을 기병 산기중대 판본군조 기병졸 산구가중 고등보치 등이 9월 4일 오후 5시 반 사살하였으나
군대의 조치는 위수 근무령 제12조 1항 3호에 의거해 적절하였다고 보여짐이라 적었다
〇시천지역 남행덕촌 교량동단에서 조선인 3명을 기병 제13연대 제2중대 군조 무전등조 외 5명이 9월 4일 오후 9시 조선인 3명을 사살하였다 군대 처치는 기재가 없다
〇포안지역 포안촌 역장전 관동수산회사 전에서 기병 제15연대 특무조장 내등도삼랑 등이 조선인 4명을 9월 3일 오후 5시 사살하였으나,
〇송호지역 송호지선갈식교상에서 육군공병학교 공병상등병 제택모 등이 조선인 1명을 9월 4일 오전 2시 사살하였으나,
〇습지야지역 대구보촌남단경경철도답정 부근에서 기병 제14연대 기병 대위 관곡경지 외 2명이 방인(일본인) 8명을 9월 5일 오후 10시 사살하였으나
군대 조지는 제 12조 1항 1호에 의거해 적절하였다고 보여짐으로 적었다
B. 자경단 및 민중에 의한 학살(정부 조사)
①조선인을 학살한 사례
〇9월 4일 오전 10시경 향취군 활천정 정거장에서 율산 십 외 2명이 박복명 외 1명을 소요살인 죄명으로 목검 또는 몽둥이로 구타 살해
〇9월 4일 밤 동갈식군 중산촌 약궁지선에서 영목충삼 외 4명이 씨명불상 13명을 소요살인 죄명으로 이치카와 고도다이 군대로 인도하기 위해 호송하던 중 일본도로 살해
〇5일 정오 경 동갈식군 중산촌 약궁지선에서 김교권삼 외 2명이 조선인 3명을 소요살인 죄명으로 관헌에 인도하기 위해 호송하던 중 일본도로 살해
〇3일 급 4일 동군 아손자정 팔판신사 경내에서 궁곡일 외 5명이 이일필 외 2명을 소요살인 죄명으로 곤봉과 뭉동이로 3명을 살해
〇3일 오후 11시 동군 포안정에서 평야음길 외 4명이 최희덕 외 1명을 소요살인 죄명으로 일본도와 창 쇠갈고리 등으로 살해
〇3일 오후 4시경 동군 마교촌 마교정거장 부근에서 길천미차랑 외 8명이 씨명불상 6명을 소요살인 죄명으로 일본도와 쇠몽둥이로 살해
〇4일 오전 11시경 동군 선교정경찰서 부근 용구인삼랑 외 10명이 오택근 외 십수명을 상해치사 죄명으로 일본도로 살해
〇동일 오후 4시경 동정 구일시피병원 앞에서 도엽영 등이 씨명불상 3명을 살인 죄명으로 일본도로 살해
〇3일 오후 5시경 동군 마교촌 신작지 내에서 제등희시 외 1명이 씨명불상 남 1명을 살인 죄명으로 전봇대에 묶어놓고 쇠갈고리로 구타 살해
〇4일 오전 10시 반경 동군 유산정에서 미야홀길 외 5명이 씨명불상 남 1명을 살인죄로 일본도로 중상을 입힌 후에 도가와강에 던져 버림
〇동일 4시경 동군 선교정 구일시에서 석정원길 외 13명이 씨명불상 38명을 소요살인 죄명으로 후나바시경찰서로 인도하기 위해 호송하던 중 일본도 등으로 살해
〇4일 천엽시려사상총옥에서 삼지 훈 등이 씨명불상 2명을 살인 죄명으로 곤봉 쇠갈고리 등으로 살해
②조선인으로 오인하여 일본인을 살해한 사례 10건을 기록하였다(생략함)
『이유없이 살해당한 사람들 –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관동대지진 90주년 지바[千葉]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사건’을 걷다
후나바시[船橋] 나라시노[習志野] 야치요[八千代] 현장 답사 자료 10쪽
지바현에서의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희생자 추도·조사 실행위원회 편찬
홍세아·다나카 마사타카 옮김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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