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9월 16일 유언비어와 장형두와 진재 사진 4보 도착

정종배 2025. 9. 16. 22:50

1923년 9월 16일 유언비어와 장형두와 진재 사진 4보 도착

〇피난민 답지와 부산 부근의 인심 단속 유언비어가 날로 늘어가서

부산 지방 일대에는 요사이 일본지방에서 피난을 하여 나온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여 감에 따라서 일본지방에서 조선사람에게 대한 일본사람들의 감정으로 흘러나오는 난폭한 행동이 점차로 부근에 전파되며 이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유언비어가 날로 늘어가는 까닭에 부산 육상경찰서에서는 치안을 문란케할 염려가 있다하여 엄중히 경계를 하던 중에 지난 12일에는 일본인 한 명과 조선인 한 사람을 인치 조취중이요 이로부터는 그러하는 유언비어를 하고다니는 사람은 조선인 일본인을 물론하고 용서없이 인치할 방침이라더라

〇귀환 동포 소개 13일 아침 창경환 승객 19명 13일 밤 덕수환 승객 14명 14일 아침 창경환 승객 27명 - 《동아일보》, 1923. 9. 16

동경에서 출발한 승객 중에 경성의 방치규(3·1운동 주도, 신간회) 광주의 장형두 강영석 등은 부산항에 도착했다

장형두는 조선유일무이한 천재 식물분류학자로 1949년 고문사 당하며 망우리공동묘지에 묻혔다 좌익사범이란 누명을 지금도 벗지 못하고 있다

강영석(애족장, 학생운동)으로 1990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으나 《동양지광》 경리부장을 역임하여 친일인명사전(교육 학술)에 등재되었다

〇동경으로부터 귀향한 2인

전주군 난전면 원당리에 본적을 두고 벌써부터 동경에 가서 고학을 하던 김완철 김득철 형제는 지난 11일에 구사일생의 위기를 탈출하여 귀향하였는데 그들의 진재 당시로부터 전주에 도착하기까지의 경과를 들으면 실로 모골이 송연하더라

〇함흥 학생 소식

함흥 유학생으로 동경 진재 지방에서 조난한 자는 40여 인데 그 중 주수영 군은 동경을 탈출하여 5일 명고옥에 무사 도착하였다는 전보가 온 후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이 행위불명이 되었고 이동윤 군은 2일 동경을 탈출하여 노동자 5인과 같이 기옥현 월곡경찰분서에 호위되었다는 믿을만한 소식이 있고 김용현 군은 동경을 탈출하려다가 부상을 당하여 경찰의 구호로 지금 모 병원에 수용되었는 서신이 있으며 정병훈 군을 함흥인으로 금번 최초로 귀향하였는데 군의 조난 담을 들으면 비절참절한 상태는 무엇이라 말할 수가 없더라

〇전동여관에서 귀환동포를 무료로 숙박케하여

종로기독교청년회에서는 매일 경성역에 나가서 동경으로부터 피난 동포를 맞아가지고 여러 가지 편의를 보아주던바 종로 전동여관에 교섭한 결과 동 여관에서는 아주 갈 곳이 없는 이에 한하여 무료로 숙박식 이기를 쾌락하고 이미 숙박케 하였다더라

〇진재 사진 4보 착신 다시 본사 독자 우대

동경지방 진재 영화를 영사하던 조선극장에서는 13일까지 전부 끝을 막으랴 하였으나 아직 그 참상을 구경하지 못한 래객들의 요구에 의하여 다음 17일까지 연장하여 계속 상영하게 되었는데 15일부터는 사진이 전부 차환되여 ”사랑과 불“ ”하이스포이트“ 등 재미있는 파라마운트 문예영화도 있어서 매우 볼만하다는데 그를 따라서 본사에서도 다시 독자 우대권을 17일까지 연기하여 발행하게된 것이다. - 《동아일보》, 1923. 9. 16

-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관동대학살 참혹한 조선인 제노사이드 소식은 이미 고국에 쉬쉬하며 퍼져 있다. 이를 일제 군경은 유언비어라 입막음을 하고 있다.

조선 유일무이 식물분류학자 장형두 서울대 사범대학 부교수
1949년 이종조카 밀수사건에 네 집안에 빽을 써보라니까 이모부를 말했다.

일제 당시 본정경찰서로 밀정들의 천국이던 중부경찰서는 장형두 부교수를 10월 21일 연행했다. 까칠한 장형두는 사흘 후 23일 인천경찰국에서 고문을 당해 주검으로 나왔다. 망우리공동묘지에 묻었다. 70년 뒤 둘째 아들 장득성이 묘비를 다시 세우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교수 직함을 새겼다.

독립유공자 신현모 국어학자 및 제헌국회의원은 국회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여 이 고문사 문제를 다루었으나 지금도 좌익과 연류되었다는 억움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면에는 '국대안' 반대투쟁이 좌절된 후 학교 내 진보적인 교수와 학생들을 제거하며 '교육의 자주성'을 잘라낸 사건의 결과였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신현모가 투옥된 함흥감옥 옥바라지 김영한 여사 다시 기생 진향으로 적을 올려 첫 손님이 시인 백석이었다. 신현모 선생이 기생에서 빼내 김영한을 일본으로 유학시킨 보답이라고 알려졌다.

우리나라 식물학계에서 선배 학자 이름을 학명에 넣은 경우가 있다. 장억새는 경기도 가평 등 중부 지방에 분포하는 희귀 억새다. 식물학자 이영노가 발견한 뒤 1964년 선배 학자 장형두를 기려 그의 성(姓)을 따서 명명했다. 장억새의 학명은 ‘Miscanthus changii Y.N.Lee’인데, 종소명에도 장형두 이름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