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22일 진재지방재유동포의 제일회 안부 조사 도착 조선총독부출장소 제일회로 조사한 동포 소개
동아일보 1923년 9월 22일 호외 발행 후 재수록, 진재지방재유동포의 제일회 안부조사(362명) 도착 동경에서 십사일에 발송한 제일회의 조사
무쌍한 고생과 무한한 위험을 사양치 아니하고 수라장같은 동경을 들어가서 동포의 안부를 조사하는 본사 특파원이 제일회로 조사한 소식을 비행기 편으로 대판까지 부쳤다함은 이미 보도한 바이어니와 지난 십사일에 동경의 하늘을 떠나 대판으로 옮겨진 이 명부는 요사이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한 우편의 지체로 여드레 동안의 장구한 시일을 지난 금 이십일일 오전에야 비로소 본사에 도착하였도다 자녀의 안부조사를 본사에 부탁하시고 일초일각이 삼추같이 기다리시던 여러 가정에 대하야는 미안하기 그지 없거니와 그 역부득이한 사정에 말미암아 그리된 것인즉 이점에 대하여 충분히 해량해 하여 주시기 바라며 또 부탁하신 여러분에게 대하여는 응당 일일이 통지하여 드릴 바이나 주소에 미상한 관계도 있기에 우선 도착된 제일회분 삼백륙십이(362)인의 소식을 호외로 보도하고 제2회의 도착을 기다리여 속속 보도하기로 하였나이다(명부 중 아모 기록도 없으면 무사)
〇남장 경북 안동군 일직면 송리(대통령 표창, 국내항일)
190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50년 순국한 남장은 1925년 2월 경북 안동에서 개최된 경북청년대회에 참여, 대회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고 동년 8월에는 안동청년연맹 결성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6년 겨울에는 경북 안동에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이회승을 책임자로 하는 경북 야체이카에서 활동하다가 1927년 가을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1929년 1월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대표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30년 7월에 체포되어 동년 12월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독립운동 운동계열 국내항일 대통령표창을 2005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이다
〇박세균 함남 함흥군 상조양면 상한리 38 (21), 경성 전수학교 3년
1919년 3월 5일 서울 학생의 제2차 투쟁 남대문 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도상봉(대통령표창, 3·1운동) 김창식(대통령표창, 3·1운동) 김창제 백인제 한창달 김찬두(공의라 미서훈, 망우역사문화공원 유택) 심대섭(심훈, 애국장, 3·1운동) 전봉건(대통령표창, 3·1운동) 이동제 신봉조(친일인명사전 등재, 교육학술) 유점선(대통령표창, 3·1운동) 신특실(건국포장, 3·1운동) 노예달(대통령표창, 3·1운동) 탁명숙(건국포장, 3·1운동) 김분옥(망우역사문화공원) 등과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미 서훈한 상태이다
〇이용만 경북 안동군 풍산면 하리동
이용만 판결 대정 13년(1924) 형공공 제547호 [경북 안동군 농민운동 판결문] 징역 10개월에 처한다
- 이상 동경부 하고전정 잡사사곡429 형설회 기숙사 내
〇오영섭 23 경기도 강화군 부내면 신문리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기독교도 3.1운동 징역 10개월 조봉암 선생 등과 함께 만세운동
〇최이하 경북 김천군 관령면 광천동 최이하 고학생 형설회 간사
〇최승연 19 평북 운산군 북진면 북진동 172(애국장, 중국방면)
1905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1965년에 순국한 최승연은 1925년 중국 상해로 망명, 3.1학교에 입학하고 1926년 7월 중국 광동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한 후 당시 당생지군으로 입대하였다가 무창으로 이동하여 동지 군관학교 포병과를 졸업, 한국혁명청년당에 가입하여 동지 규합과 동지에 지회를 설립하는데 주력하다가 중국 상해에 있는 독립운동 단체와 연락을 취하려다가 상해 일국 영사관 경찰에 피체되어 징역1년을 받았으며 활동 4년여로 계 5년간에 걸쳐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2년 운동계열 중국방면 애국장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이다
- 이상 동경부 하호총정 650 장백료 내
〇고병희 24 전남 제주군 제주면 삼덕리 장기촌(애국장, 국내항일)
1900년 제주도 제주시 삼도동 206에서 태어나 1964년 순국한 고병희는 1927년 4월 항일을 목적으로 독서회를 조직하고 소비조합을 조직 일인 상품 불매운동과 1929년 9월 야학교를 설치하여 사상교육을 실시하다 체포되여 징역 3년형을 언도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운동계열 국내항일 애국장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이다
〇김택엽 26 함남 정평군 춘류리 복흥리 26
동경 국기관에서 개최한 조선인 초유의 대각력회 조선노동자 상애회 주최로 경비 수만원을 내 일본 최초의 조선인 씨름회가 시작됨 각력 조직 그 내용과 성명 제2조 정평군 대표로 출전 명단에 있다 - 시대일보 1923. 2. 19
〇정진용 26 전북 익산군 여산면 두여리(애족장, 국내항일)
1893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1965년 순국한 정진용은 1932년 7월 황해도 서흥에서 계명학원 교사로 재직 중 김가진 이상용 등과 함께 비밀결사「교육자동지회」를 조직하고 ‘조선독립’과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학생 및 주민을 계몽하다 피체되어 1934. 8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운동계열 국내항일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이인옥 23 평남 안주군 안주면 용서리
왜적의 총칼에 맞고 치료하는 애국지사들, 무슨 교파에 속하지 않은 이로 오직 독립을 위하여 활동, =셰브란스병원에서 버시 목사가 조사한 바=
리인옥 씨는 19세된 청년인데 3월 2일에 안주(평안도)에서 4천여 명 학생과 기타 시민으로 더불어 안주성 안에서 독립 만세를 부를 때 왜병정 헌병이 마구 총칼을 쓰는데 독립당원 8인은 즉시 폐명하고 20명이 중상이 되는 때에 기씨도 그의 왼편 다리가 도적의 총알에 맞아 중상하였으므로 곧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효험이 없음으로 인하여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들어가 치료하며 총알을 뽑아내고 편사나 하였는데 그이는 교인이 아니고 다만 이국자더라. 1단 노정연 61세도 노인도 안주성 밖 농민으로 평안병원에서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신한민보 1919. 7. 19
〇주만성 23 충북 괴산군 증평면 증평리
사법관 시험에 합격한 주씨 동경서 고학으로 조대졸업 현재 재판소 서기 한편으로는 재판소에서 사무를 보며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나머지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를 하여 사법관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매년 두세 사람 씩은 있었다 이번에도 재판소 서기로 있던 충북 괴산군 증평면의 주만성 씨가 또한 사법관 시험에 통과하여 6일부터 면허장을 받았다는데 그는 대정 10년에 동경으로 가서 고학을 하여 조도전대학을 졸업한 후 재판소에 취직하였었다 한다. - 매일신보 1930. 12. 8
- 이상 장기촌 거유
〇변희용 경남, 신간회 사회주의운동가 성균관대학 총장
〇최신복 18 경기 수원군 성내 북수리
아동문학가 최순애 작사 동요 <오빠 생각>의 오빠, 최초 수필 월간 잡지 《박문》 편집 및 발행인, 소파 방정환 유택 망우리공동묘지 이장 주도하며 소파 유택 아래 최신복(영주)과 그의 부모님 등 가족묘지가 남아있다
〇조종운 26 해남군 삼산면(건국포장, 3·1운동)
1896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71년 순국한 조종운은 1919년 4월 11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내에서 김동훈의 발기로 거사된 독립만세 시위 운동에 참가하여 목판으로 태극기 모형을 조각한 후 당목과 백지로 8백여 매의 태극기를 박아내고 대형 당목 태극기 6매를 제작하여 이날 시위 군중에게 나누어주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1,000여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장터를 누비며 활동하다 피체되어 징역 10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1992년 운동계열 3.1운동 건국포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신영순 31 개성군(애족장, 문화운동)
1892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1983년에 순국한 신영순은 개성 한영서원 ‘애국창가집사건’의 주모자로서 불경죄 보안법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복역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운동계열 문화운동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장정심 29 개성군, 시인 윤치호 일기에도 기록
〇공진형 25 개성군, 동경미술학교 졸업, 화가
〇공진항 24 개성군, 와세다대학 영문학과 졸업, 주 프랑스 공사, 농림부장관, 농협중앙회 회장, 천도교 교령, 양주군 목축농장 등을 역임하고 운영하였다
〇장복록 21 부여군 건선면 줄포리, 문천길 32 평양부 신양리 177-30, 은두기 경북 군위군 소보면 위성동 등은 1923년 3월 1일 매일신문 금의환향하는 동경 유학생들 전문이상 졸업자 백여명 명단에 들어 있다
〇탁명숙 함남 함흥군 주지면 후동리(건국포장, 3·1운동)
1900년 함남 함흥에서 태어나 1972년 순국한 탁명숙은 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붉은 깃발을 흔들며 시위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동년 9월 만세시위 참가로 인한 보석 상태에서 재등실 조선총독 처단을 시도했던 강우규(대한민국장, 의열투쟁)를 서울 누하동 지인의 집에 피신시켰다가 체포된 사실이 확인되어 2013년 운동계열 3.1운동 건국포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장선희 황해도 재령읍(애족장, 국내항일)
1893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1970년 순국한 장선희는 1919년 3월 1일 이후 김마리아(독립장, 국내항일), 황애시덕(애국장, 국내항일), 이정숙(애족장, 국내항일), 김영순(애족장, 국내항일), 이혜경(애족장, 국내항일) 등과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대한애국부인회 외교원(제2대 재무부장)으로 독립운동에 진력하며
독립사상 고취와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임정에 보내려다 피체되어
대한청년단 애국부인회사건으로 1920년 6월 29일 대지법서 2년 선고, 불복공소하여
제령7호 출판법위반으로 징역2년 언도받아 애국부인단 사건으로 대구감옥에서 3여년 복역코 출옥하여 1990년 운동계열 국내항일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주영방 24, 개성불교청년회 재동경 불교청년회 순회강연단, 고려청년회, 일본대학 종교학과 ‘현대생활과 오인의 각오’ 강연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〇김태흡 27 경북 문경, 승려 일본대학 종교학과 졸업(친일, 불교)
〇장용하 25 강원도(애족장, 3·1운동)
1900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78년 순국한 장용하는 1919년 2월 25일 이필주 택에서 학생간부 들이 회집하여 3·1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협의할 때 배재학당 대표로 참석(배재사 p.170)하고 본인은 중국영사관에 선언서를 전달하는 책임을 맡고 3.1 정오에 이를 전달하고 종로에서 시위대열에 합세하며 3월 2일 김팔봉(친일, 문학) 등 급우 3, 4인과 같이「목탁」이라는 비밀 팜프렛을 프린트하여 국내외 소식을 기재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다(배재사 p.209, 배재교지 24호) 4월 20일 「목탁」을 4. 20까지 등사 배부하다가 발각 피체되어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위반 및 출판법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했다(수형인명부, 배재사 p.209) 출옥 후 배재학교 교사, 교장을 역임하며 육영 사업에 헌신하는 동시에 학생에게 애국사상을 고취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운동계열 3.1운동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유기원 26 경기도 파주(대통령표창, 3·1운동)
1898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1986년에 순국한 유기원은 1919년 3월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동년 4월 계동의 민가에 자유민보를 배포하였으며 6월 초순경부터 자유농종보를 인쇄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을 받았고, 1928년 미국 뉴욕에서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삼일신보의 발기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31년 ML당 비서 김세연을 숨겨주었다가 체포된 사실이 확인되어 2010년 운동계열 3.1운동 대통령표창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현상면 26 평북 정주군, 중앙학교 교장 현상윤 동생으로 경찰서 수용 중 정신에 이상에 생겨 병원에 입원하였다
〇이양하 20 평남 강서군 내차면 조양리 323, 수필가 연희전문 교수 시인 윤동주 사사 수필 「신록예찬」·「무궁화」·「나무」 등을 발표하였다
〇이한복 화가 동 가족 3인 경성부 본향구 구입임정 174 이찬영 방, 이한복은 일본 유학한 한국 최초의 동양화가로 동경미술학교 졸업 한국 근대 동양화단을 대표하는 10대가 중 한 명인 무호 이한복은 ‘진명여고보 이한복’·‘효자동 이한복’으로 불렀다
〇정태영 37 충북 충주군 가금면 가흥리 금강동(애족장, 국내항일)
1888년 충북 중원에서 태어나 1959년에 순국한 정태영은 청년외교단 특별단원으로 애국부인회와 유력한 관계를 가졌었으며 외교활동 중 1919년 11월 피체 투옥(한국독립운동사 p.103, 항일순국의열사전 p.64)됐다. 기미 3·1운동에 참가하여 종로 보신각 종을 친 장본인이다. 피체되어 서대문감옥과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59년 음 5월 6일 중원 본가에서 별세하였다. “그”의 공적서에는 3·1운동비사 p.842 및 한국독립운동사 p.335(이선근)와 경향신문(1958년 3월 14일)이 인용되어 있음이 확인되어 1990년 운동계열 국내항일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이다
〇백남운 28 전북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하호총정 추방 20 재등방 금청구 백관수 완 전북 고창군 읍내
백남운은 도쿄상과대학 졸업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경제학자로 월북하여 북한의 정치인으로 월북 유명 인물 중 홍명희·이극로·박문규 등과 함께 끝까지 숙청당하지 않은 한 명으로 최고인민회의 의장 직함으로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〇박동차 21 전북 고창군 읍내 하호총정 유방정 20 재등방(우송 농주)
〇신용하 23 전북 고창군 벽사면 사천리 하호총정 추방 20(조선비행학교장)
〇임창모 황해도 은율군 일도면 루리 금감동(애족장, 미주방면)
1894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67년에 순국한 임창모는 1919년 3월 평북 선천에서 신성학교 학생으로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을 받았으며, 1925년 중국 남경에서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하여 ‘백년의 공’이란 연극 공연에 참여하고 1926년 4월 도미하여 1927년 남경 동명학교 학회 북미지회원, 1929년 흥사단에 입단, 1931년 동단 본부 시카고 지역 반장, 1933년 북미 대한인유학생 총회 영업부장, 1934년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 서기, 1935년 동 지방회 학무, 1937년 시국토론회 실행위원, 1940년 서기 및 국어학교 교육위원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10월 한국광복군 축하식에 흥사단 대표로 참석하며 1941년 지성지방회 서기, 194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회원으로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등의 활동을 하며 1928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이 확인되어 2019년 운동계열 미주방면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이기영 29 충남 천안군 천안면 유량리 219 금강동, 소설가, 카프 주도, 장편 대하소설 『두만강』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〇주만성(형, 중복 게재) 23 주세경(아우) 20 충북 괴산군 증평면 증평리 574 하고전정고전 418 중신방, 중복 게재되었다
〇이찬영 외 가족무사 경성부 한성은행원 본향구입임정 274 중복 게재되었다
〇김종옥 충북 괴산군 불정면(대통령표창, 3·1운동)
1866년 충북 괴산군 불정면 출생하여 1936년 순국한 김종옥 1919년 3월 27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찬동하여 여러 동지들과 분산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결의하여 광화문통에서 많은 군중을 집합시키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다 피체되어 징역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1992년 운동계열 3.1운동 대통령표창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진재 표방 강도 잡혀 취조 중
시내 중학동 77번지 박학래의 집에 와서 동경진재에 관한 동정금을 내라고 졸라서 현금 40원을 가져간 자는 그것이 사기 사건인 것이 판명되어 그가 소관 종로서에서는 범인을 잡기에 노력 중이더니 마침내 지난 8월 8일에 겨우 징역을 마치고 나와서 시내로 배회하던 양대현(39)이라는 자를 어제 21일 오전 중 체포하였는데 여죄도 많은 모양이다 – 동아일보 1923. 9. 22
〇재후 동포 소식 경성부 출장원 조사 경성부 동경재류 조사 출장원으로부터 재작일로 작일 9시까지 보고된 보에 의하면 동경의 93인 중 행위불명 된 자가 32인이오 횡빈에 44인은 다 무사하다는 우리 동포는 아래와 같다더라
동경에 재류동포 민석현 권희장 이석재 이종옥 김영근 김성녀 임학수 이재간 한규직 신용우 김기숙 한영선 박순오 최동석 이상 14명은 무사
송연준 한규정 김순용 이상 3명은 행위불명
횡빈의 재류 안철자 김봉환 박상현 이상 삼인 무사
경성에 도착 동포 양월봉 박진종 유기원(대통령표창, 3·1운동) 고한용(최초의 다다이스트 시인) 김영태 김효수 김태수 이달세 박동령 김유일 김승렬 남병린 최문국 김승철 이상 14명 무사 귀향
〇이재피난자 무임수송
이재피난자 무임수송 일본 동경진재에서 부산역을 통과한 무임수송 인원은 9월 7일부터 17일에 지하는 약 10일간(15일은 연락선 결항)에 이재자가 658명에 달하고 상차 송환자 947명을 가하여 총 인원 1,605명에 달한 바 기 발향지의 주요한 다수는 경성 134인 마산 58인 대구 52인 서호진 21명 평양 19명 목포 15명 원산 13명 함흥 12명 군산 10명 대전 김천 각 9명 등이더라 – 조선일보 192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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