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9월 23일 동경진재지방생존동포 제일보

정종배 2025. 9. 24. 05:41

1923년 9월 23일 동경진재지방생존동포 제일보

 

 

동경진재지방생존동포 제일보

 

일본의 동경과 횡빈을 중심으로한 대진재는 진실로 역사상 초유한 참극이라 할지로다 우리 동포가 혹은 생활이 곤란하야 이개월 기원의 임금을 도득할 목적으로 혹은 학문을 요구할 주의로 해지에 도거한 자가 무려 수만인데 우리는 지진의 참혹한 정형과 유언의 공포한 상태를 문한 후로 비록 귀환하는 자가 낙역하나 중심이 초조하야 폐망한 전진에 출정한 형제를 사념함과 무이하고 복몰한 선박을 좌승하였든 지구를 우려함보다도 회상이 절지하더니 금회 총독부 출장소로부터 제1회로 조사한 동포의 무사히 생존한 자가 여좌함으로 차를 급히 동포에게 소개코져하야 이하에 열록하노라

 

국정구 중6번정 49 금강동 재재학사생 성명 연령 본적지(88명),

〇주만성, 23 괴산군 노평면 노평리 사법관 시험에 합격한 주 씨 동경서 고학으로 조대졸업 현재 재판소 서기

〇임창모 30 은율군 일도면 루리(애족장, 미주방면)

〇신영순 29 개성군 송도면 고려정(애족장, 문화운동)

〇이기영 28 천안군 천안면 류량리(소설가, 장편소설 『두만강』)

〇정태영 30 충주군 가금면 가흥리(애족장, 국내항일)

〇조종운 22 해남군 삼산면 신흥리(건국포장, 3·1운동)

〇남병린 22 길주군 동해면 창촌리(건국포장, 만주방면)

1903년 함북 길주에서 태어나 순국년도 미상인 남병린은 1926년 6월 중국 길림성 혼춘, 연길현 등에서 동 지역의 신사상 운동 상황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는 고려공산당 당원에게 보고하려고 시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재류금지처분 2년, 동년 11월 비밀결사 ‘태양회’ 사건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1927년 12월 함북 길주군에서 길주청년동맹 동해지부 교양부장, 1928년 2월 신간회 길주지회 정치문화부 간사 등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어 2021년 운동계열 만주방면 건국포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강홍식 21 평양부 신창리, 강홍식은 1930년대 ‘조선의 스타’ 가수이자 영화배우 및 감독이다 예명 '진훈'으로 1902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일본에서 무용을 배우고 돌아와 영화배우와 가수로 활약하다 영화배우이자 가수였던 전옥과 결혼하여 맏딸은 남한의 강효실 그 아우는 북한의 강효선이다 둘은 배우로 활동했다 강홍식은 전옥과 헤어진 남매를 데리고 북으로 가서 활동했다 강효실은 6·25 때 북진한 국군을 찾아가 문예대를 따라 내려왔다 뒷날 최무룡과 결혼하여 최민수를 낳아 연예인 가족을 이루었다 강홍식은 1971년에 요덕수용소에서 별세했다

 

소석천수용소 보호, 성명 연령 본적지(126명)

〇강재원 26 구례군 광의면, 니혼[日本] 대학 사회과에서 수학 일제강점기의 승려 법명은 만호 화엄사 주지

〇주영방 26 곡성군, 태안사 개성불교청년회 재동경 불교청년회 순회강연단 고려청년회 일본대학 종교학과 강연 제목 ‘현대생활과 오인의 각오’으로 강연하였다

〇신영순 20 개성군 송도면 고려정,(애족장, 문화운동)

〇김태흡 23 경북 문경군 북산면 전두리, 동양대학 인도철학과 입학하여 일본대학 종교과로 옮겼다 고등사범부 국한과를 졸업했다

〇이기영 29 불명,(소설가)

〇이찬영 경성 와룡동 29 불명,(이한복의 아버지)

〇이한복 부천군 계남면 소사리, 대한민국 동양화 화가 최초 일본 유학의 거목 화가

〇구용서 경성부 영락동, 〇송지혜자 동,

구용서는 정미칠적 매국노 백작 송병준의 외손자로,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 우범선과 을미사변의 주역으로 일제하 경찰 간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아버지 구연수(친일, 중추원),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 졸업, 해방 후 한국은행 초대 총재, 대한석탄공사 총재, 상공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목흑수용소 보호, 성명 직업 본적지(492명)

직업란에 ‘노동’이 주이고 ‘직공’ ‘학생’ ‘재봉’ 등도 있다

〇최화수 학생 대구부 남산정, 허명 동경명치학원에 유학 화가로 소설도 쓰고 경북 달성 군수 등을 역임했다 - 조선일보 1923. 9. 23

 

〇귀환동포 씨명(21일 야 덕수환 도착) 출발지는 동경으로 55명

〇이재지 인사 소식 좌기 제씨의 무사하다는 소식이 모처에 도착되었더라 김림전 한장석(광복군) 임한수 길목석 임보균 장수학 최진순(독립운동가) 마형규 최병훈(애족장, 3·1운동) 채홍석(경시청 편입 요시찰인물) 안순태 신기환 윤승용 – 동아일보 1923. 9. 23

1872년 강원도 철원군 내문면 독검리 584에서 태어나 1947년에 순국한 최병훈은 1919년 3월 1일 철원군 천도교교훈으로 있으면서 군내 교도를 통하여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며 독립만세시위를 사전 준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운동가이다.

〇인천동포 무사

동경에 자녀질과 친척을 보내고 의외 진재의 참보를 접한 그의 친척은 형언키 어려운 노심초사하던 바 그 후 안정에 따라 차차로 혹은 귀환 혹은 소식을 듣게 된다. 그중에 인천 재적자의 소식 일부는 기보하였거니와 지난 17일 일본을 떠나 말할 수 없는 고경을 겪고 수십명 지기 및 친족의 환영 속에 20일 밤 10시 25분 축현(현 동인천역)착 열차로 무사 귀착한 동포가 있다. 그는 동의전을 일찍이 마친 인천부 외리 206 고주철 군인데 군은 수년 전 도동하여 의학을 연구 중이었다. 군의 진재 후 동경 소식담을 듣건대 동포는 대개 무사하다하며 재외 동포위문회를 대표한 동아일보사 특파원이 재난 중에 여러 방면으로 분투하여 이재자에게 신생명을 주었으며 특파원은 더욱 각관 공청에 교섭키 어려운 활동을 맹렬히 하고 있음을 떠날 때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무사한 줄 아는 이는 다음과 같다.

인천부 사정 5 하창순 최만달 그 외 동거 학생 48인 전부 오기선 목사 사전 25 유해룡 – 동아일보 1923. 9. 23

 

인천이 낳은 위대한 미학자 우현 고유섭의 숙부이며 《대중일보》의 초대 사장을 지낸 고주철은 1893년 인천 외동에서 태어난 인천 토박이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애관극장 옆에서 한방을 겸한 병원인 <고주철의원>을 운영한 의사였다.

고유섭 일가가 인천지역 문화운동에 미친 영향은 크다. 그의 숙부인 고주철은 해방 후 인천에서 《대중일보》를 창간했다. 고유섭과 함께 인천이 낳은 큰 예술가로는 함세덕이 있다. 인천지역 연극 침체기인 1930년대 활동한 극작가 함세덕(친일, 연극)은 한국 연극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인천상업학교(현 인천고)출신으로, ‘만포진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시로 등단해 연극 극작가로 활동하다 1940년대 들어서는 친일연극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해방 후‘조선연극동맹’에 가입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하다, 월북하여 한국전쟁 당시 서른다섯의 나이로 폭사하고 만다 망우역사문화공원 가족묘지에 인민군 선무반 신분으로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