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23일 공초 오상순吳想殉
1923년 9월 23일과 9월 30일 오상순吳想殉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에 걸쳐 동아일보에 게재한 공초 오상순吳相淳 시인은
이름에서 순박할 순‘淳’자를 순국할 순‘殉’자로 바꾸어
1913년 4월 20일에 쓴 시 「허무혼의 선언」 에 1923년 9월 9일 추언을 덧붙었다.
〇추언追言 나는 우주 세계 인생- 그리고 그 속에 포장된 일체의– 그 과거 현재 급 그 장래에 훤한 모든 현상 사건 활동과 그 운명과 귀추를 응시하고 골수에 사무치는 일종 말할 수 없는 눈물에 감기어 이 말을 허무행의 도반에게 드린다– 그런데 이글은– 십년 이래의 상습인 세계와 인생과 자아 문제에 대한 나의 심적 고민– 사상적 회의와 탐색과 우울이 『클라이 막쓰』에 오르고 또 그 해결에 대한 결정적 의지의 욕구가 백열하여 초점에 탐을 경험하던 지난봄 어느 날의 가장 신비롭고도 심각한 밤– 물론 나에게 있어서 밤을 새우고 난 아침에 그 경험의 일단을 표현해 보고자 우연히 붓을 손에 들어 보았던 것이 이 일편의 글을 낳게 된 동기이다 그러나 극히 불안전한 표현이 되고 말았다– 또한 불완전한 초고를 책궤 밑에서 꺼내서 먼지를 털고 독자의 눈앞에 내어 놓게된 동기는 이번 일본의 미증유한 사변 그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무서운 자연의 폭력을 보았고- 『자연 자체에 있어서는 폭력도 아무것도 아니오 자기의 당연한 일종의 상례사일 것이지마는』- 적지 아니한 인간 노력의 참패를 보았다- (이후 인간의 노력은 반발적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도 상상할 수 있지마는)- 따라서 일종의 심각한 비통-은 사람의 가슴을 친다
그리고 그곳에- 나는 역시 일종의 『허무감』을 새로이 한번 느끼지 아니할 수 없는 그것이다- 1923년 9월 9일 조朝 - 동아일보 1923. 9. 23·30
공초 오상순은 민태원 변영로 염상섭 황석우 김억 남궁벽 김유방 김일엽 나혜석 등과 <페허> 동인이며 망우역사문화공원 한류 1세대인 아사카와 다쿠미와 교류했다
특히, 임종국 선생이 1965년 발표한 친일의 글 한 편도 남기지 않은 오상순 황석우 변영로 시인 등과 절친했다
공초 오상순 시인이 담배를 물고 《타임》 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고맙고 반갑고 기쁘다” 만나는 이마다 손을 잡고 격려하여도 탈이 없는 것은 동지사대학 종교학과 즉 정규대학을 졸업한 이가 그 당시 드물었기 때문이다고 알려졌다 시인 구상은 세 구절을 인용하여 시 「꽃자리」를 남겼다
꽃자리 /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한국전쟁 후 환도 뒤에 호가 운성인 시인 구상과 호가 하성인 이용상은 약속했다 구상은 공초 오상순을 하성은 수주 번영로를 돌아가신 뒤 유택과 선양사업까지 책임을 다했다. 진주의 파성 설창수 시인이 지은 호로 문단 3성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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