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9월 24일 동아일보 특파원 제이회 안부 조사, 총독부 제일회 조사

정종배 2025. 9. 24. 06:25

 

1923년 9월 24일 동아일보 특파원 제이회 안부 조사, 총독부 제일회

 

 

동아일보 동경 특파원의 제이회 안부 조사(227명) 도착

총독부 제일회 조사도 동시 도착

동아일보 조사는 흩어져 있는 학생의 소식 위주되고

총독부 조사는 수용 중의 노동자에 한하여 조사된 것

독학부 기숙사에 있는 학생 제군과 목사 오기선 씨의 특별한 원조로 비교적 다수히 조사할 수 있었으며

《동경일일신문》 《보지報知신문》 신문에 광고를 내어 두 조사를 합하여 보도했다

 

동아일보 동경 특파원의 제이회 안부 조사

 

〇이동제 28 함흥군, 조선동포위문반 간부인 백무·변희용·한위건·이동제·박사직·이근무 등이다. 진재 후에 있어서는 3월 16일 일화·일선회관에서 일본 노동총동맹 및 조선노동동맹이 주최한 진재 때에 학살된 일본·중국·조선 노동자 합동 추도회를 열고 백무·한위건(독립장, 중국방면)·김학의·이동제·박사직·박명련 등이 출석하여 학생을 가해서 약 1백 50명 및 중국인 30명, 일본인 약 200명이 집결하였으나 끝을 마치지 못하고 해산 명령을 받았고 메이데이 당일, 동경노동동맹회의 깃발 밑에 20여명이 참가하였을 뿐이었다 – 경시청 편입 요시찰인물

〇서원출 울산군, 유학생들은 자신들 뜻을 강화시키고 단합된 힘으로 일제에 대항하고자 유학생 모임체를 마련하였으니 3·1운동 직후 발족을 한 조선불교동경유학생회가 그것이다. 김상철·이동석·서원출·김태흡이 주요 회원이었는데 한용운을 지도자로 모셨다.

〇엄상수 고성군, 창립벽두 민족운동 후원을 결의 동아일보 고성기자단 조직하였다 위원은 천두상 엄상수 구종근 등이다

정인영 하동군, 9월 28일 자살 동아일보 기사 게재

정열모 1 외 가족 3명 보은군, 국어학자 월북함

손우성 20 동 보은군, 불문학자 평론가

〇인태식 당진군, 일본 야마구치 고등학교 문과 졸업 도호쿠제국대학 법문학부 졸업 제3대 관재청장 제7대 재무부장관 제3,4,6대 국회의원

김성숙 28 제주도 대정면 가파리(건국포장, 국내항일)

1896년 제주도 대정에서 태어나 1979년에 순국한 김성숙은 1919년 3월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면소처분을 받았으며 1926년 7월 도일 유학 중 협동조합운동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후 중앙집행위원장등을 역임하였고 신간회 선전부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 1월 학생만세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후 다시 1931년 7월에 만보산 격문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48일만에 석방된 사실이 확인되어 2005년 운동계열 국내항일 건국포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〇고병희 24 제주도 성내(애국장, 국내 항일)

〇김준규 21 홍성군 고도면 상촌리 이이진사 21 동

8만평 상원 수입을 광과금으로 대납 빈농가에는 종자를 대부하고 홍성 김준규 씨 미거. 충남 홍성군 고도면 상촌리 김준규(29) 씨는 작춘 동경 일본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볼 때에 농촌생활 상태가 각 일각으로 비참하여짐을 보고 빈농가에는 종자를 무상으로 대부하여 주며 소농가로서 금비사용하는이만치 불경제되는 취지를 일반에 주지시키어 이를 사용 방지 시키며 자급적의 비료 증산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권하여 사재로써 농가의 필요품인 제반 농구를 구입하여 농사개량함에 따라 성적우량자에 대하야는 부상을 수여하며 토지 8만평을 상원으로 하여 동리 백여호의 농가 이 협력하여 공동작을 하여 그 수입으로 동리 빈농가들에 공납급 납부에 충보케함으로 칭송이 자자하다 - 매일신보 1930.10.7

빈민에게 시미 – 김준규 씨 미거 홍성군 고도면 상촌우편소장 김준규 씨는 맥령빈궁을 동정하야 극빈호 일백호에 백미 일백 두를 희사하였다 한다. (축) 흥아신춘 김준규 광고 - 매일신보 1937. 7. 9

오기선 가족 인천 오현명 하득애 오인명 오진명 오천범 오순명

〇오영섭 강화 13일 귀국 조봉암과 강화읍 3·1운동 주도함

〇현좌건 경성 간도기자단 발기대회 간도일보 현좌건 매일신보 1926.3.18.

〇장용하 원주(애족장, 3·1운동)

〇이필현 야방촌 신정 260(애국장, 중국방면) - 동아일보 1923. 9. 24

1902년 평남 중화군에서 태어나 1930년에 순국한 이필현은 1922년 일본에서 흑우회 간부로 활동하였고 1926년 서울에서 나석주가 실행한 동양척식회사 폭탄의거의 관계자로 일경이 지목하였고 1928년 4월 중국 북경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의 비밀결사인 동방연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2010년 운동계열 중국방면 애국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총독부 제일회 조사(706명)

 

국정구중 6번정 49 금감동 수용

소석천수용소 보호

〇고학후 18 강화 송해면 솔정리, 동아일보 9월 19일 신문광고에 신고해줄 것을 실음

〇이찬영 경성부 와룡동 72, 이한복의 아버지

〇이한복 부천시 계남동 소사리, 동양화가 일본 최초 유학생

〇구용서 경성부 영락정 2의 70 〇송지혜자 동

함석헌 용천 용천면 중흥리(건국포장, 국내항일)

1901년 평북 용천군에서 태어나 1989년 서울에서 순국한 함석헌은 1919년 3월 평양에서 형을 도와 연락과 전단배포, 시위 등을 통하여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1927년 김교신 등과 『성서조선』을 발간하고 지상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등을 기고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1942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조와」라는 글을 『성서조선』에 실었다가 근 1년의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되어 2002년 운동계열 국내항일 건국포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정태성, 단천 북두구면 신덕리 흑우회 흑우호 김중한(애족장, 일본방면) 박열(대통령장, 일본방면) 등과 활동하였다

목흑수용소 보호

〇최화수 대구부 남산정 - 동아일보 1923. 9. 24(조선일보 9월 23일에 실림)

 

〇학생 3명 구류 일본 진재 말하고 류언비어 죄로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면 청교리 149번지 동경 일진영어학교 생도 변산조(24)와 평남 순천군 자산면 청룡리 조도전 공수학교 생도 차정빈(24)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하서리 226번지 동경일진영어학교 생도 김충의 3학생은 동경으로부터 고향에 돌아가는 도중 부산 대구 사이에서 동경진재에 대한 말을 하다가 류언비어라 하여 대구경찰서의 손에 걸려 가 구류 20일씩에 처하였다는데 구류집행은 대구형무소에 행한다더라

동아일보 1923. 9. 24

 

〇진재 보고의 진상 인천공회당에서 개최 조선신문사 특파원의 관동진재보고회는 지난 21일 오호 7시 반부터 열렸다 갖은 재해와 구사일생 살아온 동포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학살 참상을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을 탓할 수밖에 없다

〇함평의 3인 소식

전남 함평사람으로서 동경에 유학 중의 고학생 강이영 군은 지난 21일 천신만고를 하야 고향에 돌아와 말하되 서한주와 최항진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하였다더라(함평)

〇송도면에 도착 전신

개성군 송도면 이원을 동경에 파견하였다함은 본보에 기히 보도한 바이어니와 거 21일 오후 1시에 해 면소에 도한 전보에 운하되 개성에 원적인 동경 유학생

박상우 최영진 황성현 마찬규 안승만 공진형(도쿄미술대학, 화가) 공진항(고려인삼흥업사장, 농림부장관, 농협중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실업가 행정가). 공진오 진봉숙 박광진 이영자 장정심(시인) 신영순(애족장, 문화운동) 김재환 임한조 임진철 조인식 신영원 이흥신(기자) 임창빈 이병렬 주원회 주이회(상공부 차관) 진교순 진귀복 손용득 제군은 무사다하였다더라(개성) - 조선일보 1923.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