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이 겨레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사회운동가 이경숙(李景淑)

정종배 2025. 11. 18. 14:00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이 겨레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사회운동가 이경숙(李景淑, 1924.3.9.~1953.11.18.) 72주기

 

이경

 

 

묘비 앞면, 李景淑무덤. 묘비 뒷면, 소년시절엔 일정하 민족애의 꽃 청년 때엔 정열적인 어린의의 스승 장년엔 크리스챤홈의 태양 이 나라 MRA운동의 개척자의 하나 순수한 신앙 착한 덕행의 30년 일생은 이 고장 여성의 영원의 거울 1953년 11월 18일 서울대학교 교수 유달영 씀

 

성천 유달영 선생 개성 호수돈여고 이경숙 3년 내리 담임교사 입학 때는 우울하다 담임을 아버지로 믿고 따라 2학년부터 놀라운 성장에 눈을 몇 번이나 비벼 바라봤다 평균 97점 성적으로 졸업했다. 늘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겸손했다. 유달영 중매와 주례로 결혼했다. 이경숙의 한결같은 신념은 "이 겨레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으로 페스탈로치와 같은 삶을 살고자 개성 큰 학교 스카웃을 외면하고 시골학교 교사로 늘 너그럽고 부드럽고 남 앞에서 말하기 쑥스러워하였지만 불의에는 엄숙하고 날카로운 얼굴로 맞서며 몸과 마음 다 바쳤다.

샤머니즘에 완고한 시어머니 시집살이 고달팠으나 "제 며느리는 성인이죠 이 하늘 아래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요 나도 착하고 어진 마음씨에 결국 항복하고 말았어요 선생님" 며느리를 좇아 크리스천이 되었다. 성천에게 고백했고 화장터에서 이경숙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

 

큰 스승 시인 구상 말년에 불편한 몸을 필자가 고물차로 모시고 성천 집에 찾아가 수세守歲하는 두 분의 우정을 지켜보며 아끼는 제자 중 이경숙을 으뜸으로 여긴다며 두 손을 잡아 주었다. 아사카와 다쿠미 유택과 남동쪽으로 이웃하여 4월 5일 식목일 전후 다쿠미 선생 추모식 참배객들이 많을 때는 이경숙 선생의 유택을 이용했다. 다쿠미 선생과 같은 남향이다. 묘지번호 203364이다.

 

이경숙의 호수돈여고 스승 유달영, 유달영의 양정고보 스승 김교신, 김교신의 무교회 운동 스승 우찌무라 간조와 연결되어 유달영 박사의 글을 소개한다.

 

서울의 북한산 기슭에 김교신 선생이 개천의 돌을 주워 모아 집과 서재를 짓고 거기서 양정고보까지 자전거로 통근하면서 ‘聖書朝鮮’(성서조선)을 10년간 발간하였다. 그 집에서 겨울 방학에는 전국의 독자들이 모여서 약 1주일 동안 합숙하면서 성서 공부와 함께 일본에 병탄된 이 나라의 장래를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밤에 토론이 끝날 무렵 내가 농촌운동의 선구자인 샘골(泉谷·천곡)의 최용신 양의 생애를 전기로 남겨두기를 바란다는 제의를 했다. 김교신 함석헌 선생은 좋은 의도라고 찬성하였고 자리를 함께했던 다석 유영모 선생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찬의를 표했다. 그의 출생지인 원산으로 찾아가서 그가 졸업한 루씨여고를 방문하고 재학시절의 성장 과정과 학창 생활 등 자료를 조사했다. 그가 함께 자란 오빠 시풍씨도 만나서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생활 과정도 상세하게 알아냈다. 그리고 다시 최양의 활동무대였던 시흥군 샘골에 가서 최양을 도우며 함께 일하던 동지들과 밤을 새우며 그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샘골에 자료를 수집하러 갔을 때에는 최양의 바로 아래 동생인 최용경 양이 용신 양의 뒤를 이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최양이 쓰던 방에서 먹고 자면서 업적을 조사할 때에 최양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듯 하였다. 개성으로 돌아와 혹독한 더위에 밤낮을 이어 글을 썼다. 전기의 스타일은 누구도 시도해 본 일이 없는 편지체로 썼다. 조선의 딸에게 써 보내는 장문의 절절한 소원을 담은 편지로 썼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나의 담임반 졸업생 조윤희 양과 이경숙 양 두 사람이 박물실에서 철야하며 나를 도와주었다. 무의촌에서 일생을 바치려던 조양은 경성제대 의학부 연구생이었으며, 이양은 교육자로 제2의 최용신이 되려던 나의 동지들이었는데 모두 젊어서 고인이 되었다.

 

2024년 10월 31일 파주 하늘묘원으로 이경숙 여사의 무덤을 이장하였다. 후손들이 이장하면서 대리석으로 직사각 묘역을 조성하였다.

 

                                                                              스승 성천 유달영이 쓴 비문

 

2000년 이후 필자가 답사하는 망우리공원에서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거듭났다. 25년 동안 답사하며 보고 듣고 정리한 묘지 관련 얘기를 풀어본다.

 

유명 인사 중 이장해오거나 이장한 묘역은

 

이장해온 유명 인사

 

1936년 유관순 이태원공동묘지 무연고 2만 8천여 명 합장묘

소설가 나도향도 이 이태원 무연분묘 합장묘에 묻혔다고 추정할 수 있다.

1936년 이종일 민족대표 33인 이태원공동묘지에서 이장

1936년 방정환 홍제동 화장터 봉안당

1936년 지석영 개인묘지에서 이장함

1942년 아사카와 다쿠미 이문동 공동묘지에서 이장

1953년 오세창 서화가 대구에서 이장

1954년 김상용 시인 부산에서 이장

1956년 이중섭 봉원사 봉안당에서

1958년 박희도 민족대표 33인, 최학송 소설가 미아리공동묘지에서 이장, 시인 이상 묘지는 실전됨

2024년 김영랑 시인 용인천주교공원묘지로 이장하였다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재이장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우정의 공원> 형식으로 재이장뿐만 아니라, 무덤이 없는 분이나 실전된 유명 인사들의 무덤을 조성할 수 있다고, 서울시 관계자분(국장)이 중랑구청 과장들과 담소를 나눴다. 서울시 시의원과 장소도 가봤으나 감감무소식이다.

 

정말 잘만 정리하고 교육하여 홍보하면 K-문화에 힘입어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날 수 있는데 더딘 행정 집행으로, 눈에 보이는 무장애라는 이름에 데크 길만 내놓고, 섬세한 자료 축적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그나마 자료를 보관 중인 직계 후손들도 이제는 연세가 80대이다. 말씀을 나눠보면 언제 죽을 줄 모른다며 있는 자료 행방을 걱정한다.

 

                                      1954.11.14. 석영 안석주 시비 제막식 뒤에 영랑의 <바다로 가자> 시행 일중 김충현 새김

 

이장하신 분 독립유공자

 

국립서울현충원

 

1993년 박찬익 묘역 비석 남김

1966년 나용환, 박동완, 이종일, 홍병기 민족대표 33인

1988년 송진우

1969년 동우 이탁

2016년 김봉성 비석 남김

2020년 김병진 부인은 남음

 

국립대전현충원

 

1988년 선우훈

1990년 조종완 비석 확인

1991년 최익환

1992년 명재 이탁 비석 남김

1994년 김승민 비석 남김, 나운규 비석 묻음, 이태건 비석 남김, 유진태

1995년 김진성 묘역과 비석 남김

1998년 백대진

2002년 김사국과 박원희 부부 비석 남김

2003년 강학린 비석과 부인은 남음

2006년 문명훤 비석 남김

2008년 서병호 비석 남김

2011년 김정규 비석 묻었다 다시 세움

2019년 김춘배(추정) 정춘산으로 묘역 조성됨,

 

그 외 독립유공자

 

도산공원 1973년 도산 안창호, 2016년 옛 비석 옮겨옴, 가묘 조성, 강남 개발을 위해 이장하였다. 강남이 세계적인 부자 동네로 거듭났기에 이제는 민족의 어른의 상규군 옆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후손들은 지켜 줘야 되지 싶다.

 

2003년 신명균 무연고 처리 용미리 비석 남김

 

                                                               죽산 조봉암 연보비

 

 

망우리공동묘지에서 이장한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

 

1964년 조각가 차근호 평양 출신 이병일 영화감독이 망우리 공동묘지에 묘지를 조성하였는데 소재 파악이 되지 않음

 

동원중학교 뒤 도로를 건설하며 화가 함대정 묘역이 실전됨. 조각가 차근호가 제작한 묘비의 행방도 묘연함.

 

1963년 박동훈 전한승 진영숙 등 다수의 4.19혁명 열사들 국립4.19민주묘지로 이장함

1976년 이기붕 박마리아 이강석 등 가족묘지 고양 공원묘지

1992년 김활란 이정애 이화여대 가평수목원

1993년 함이영 작곡가 성환공원묘지

1995년 송석하 민속학 태두 태안 개인 농장, 비석 묘역 재조성

2002년 손창환 제3대 보건사회부 장관 대한적십자회장 비석 남김

2005년 박길룡 건축가

2009년 김윤근 국민방위군사건 사령관 연희전문 출신 씨름 8연패 비석 남김

2010년 시인 김동명 강원도 강릉 사천 김동명문학관 뒤 선영 문중 봉안당

2012년 작곡가 채동선 보성 벌교 생가 뒤 부용산

2018년 최백근 마석민주열사묘역 묘역 비석 깨짐

2022년 장준하 선생 가족묘지 이장함

2024년 애경그룹 장회장 부모님

 

안석영 파주 청하공원 봉안, 비석까지 옮겨가 꽃밭에 세워져 있음

오기선 목사 남양주 화도읍에 가족묘지로 이장함

임방울 명창 남한강공원묘지

 

그 외 가족묘지 이장한 분

임숙재 장석인 장해윤

곽영주 임화수 이정재 등 5.16군사쿠데타 후 사형 집행

 

망우역사문화공원 묘지 관련 이야기는 오는 20일 김승면·신명균 두 분의 독립유공자 기일 날 맞춰 이어가며 흥미로운 풍수와 관련하여 풀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