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국외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국군창설 주역소아(素我) 김진성(金振聲, 1892~1968) 57주기

정종배 2025. 11. 20. 16:39

국외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국군창설 주역

소아(素我) 김진성(金振聲, 1892~1968) 57주기

김진성 사진

김진성은 평남 덕천군 성양면 지양리 423번지에서 1892년 태어나 1968년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산3의 27번지에서 별세한 독립운동가이다. 한자 김진성 이명으로 김필보·김정만이다.

 

1919년 초에 하얼빈의 노군사령관 호리왓트대장과 연락하여 해삼위를 중심으로 동지 유동열(대통령장,임시정부)·신영삼(독립장,임시정부,193) 등과 같이 한인 2세 8백여 명을 모집하여 동청철도수비대에 편입시켜 활동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하얼빈 러시아군의 용병으로서 오성만·김창연·송일훈·이승무(애국장,만주방면,1991) 등과 함께 의용병을 조직하여 실전연구를 하기도 하였다.

 

한편, 임시정부와도 연락을 취하였는데 이때 일경에 체포되어 서울에 압송되었으나 유동열·양기탁(대통령장,계몽운동,1962) 등의 석방운동으로 2개월 만에 출옥하였다. 그 후 전남 광양지방의 지주들로부터 군자금 7천원을 모금하여 양기탁에게 전달하기도 하였으며, 미국의원단이 내한했을 때에는 격문 천여 매를 만들어 배포하고자 하였다. 1920년 9월에는 김교우·김한규(애족장,국내항일,2014) 등과 함께 고산의 부호 고갑준을 설득하여 현금 9,600원을 받아 상경하였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한 뒤에도 계속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5년 5월 1일 국립대전현충원 묘역 독립유공자(2ㅡ368) 구역에 안장됐다.

망우리공원에는 묘역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면목고 후문에서 500미터 위로 옛 이기붕 일가 가족묘지 터와 가깝다.

 

비문 앞면, 獨立志士金振聲之墓. 묘비 뒷면, 공의 휘는 필보요 자는 진성이며 호는 素我(소아)요 관은 광주이니 (중략) 공은 1892년 임진 7월 15일 평남 덕천에 출생하시다 1919년 기미에 재 하루빈로군사령관 호리왓트 대장과 연락 해삼위를 중심으로 유동열 신영삼 등과 같이 한인 8백여 명을 모집 동청철도 수비대에 편입시켰고 또 상해임정과 연락을 취하다가 倭憲(왜헌)에 체포 경성으로 압송되었으나 유동열 양기탁씨의 석방운동으로 삼개월여의 옥고 후 석방되어 계속 전남 광양지방의 부호들에게 군자 7천원을 모집하여 양기탁씨 등에 1만 3천원의 모금 전달과 일천여매의 전단을 만들어 미국의원단 내한시에 살포하였으며 또 전주 고산의 부호 친구인 고갑준씨 집에 야간 침입하여 군자금 9천 6백 강요하여 상경 은신 중 체포되어 징역 12년형을 받고 7년 복역 후 가출옥 석방 뒤에도 소위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국내외의 항일 투쟁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왜경에 구속되기 수십 차였다. 해방 후 임정요인이 환국하자 옛 동지 유동열씨가 통위부장으로 당선됨에 그를 보좌하여 국군창설에 다대한 공을 세웠으며 6.25사변 이후 과거 고문 여독으로 행보조차 불능하여 항상 병석에서 신음하시다가 1968년 1월 1일 향년 74세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 공의 공적을 치하하고 1968년 3월 1일에 건국공로대통령포장을 추서하였고 또 동 77년 11월 20일 재심에서 다시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공의 일생은 실로 건국을 위해 형극의 일로였다. 배 온양 방씨는 1897년 11월 8일생에 1928년 1월 21일 졸하시고 배 김해 김씨는 1896년 3월 27일생에 1969년 5월 27일에 졸해 동년 29일에 부군과 합장하였다. (중략) 세 분의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으니 장남 용화는 실업계 3남 성배는 예비역 준장 사위 감사원 사무총장 손서에 허화평 예비역 준장 (중략) 이제 자 3형제는 선고의 명복을 기원하고 거룩한 구국충정을 후손에게 전승케 하고자 통천곡지의 효성으로 이 비가 세워지노라. 西紀 一九八七年 丁卯 三月 日 鏞華 成培 經華 奉建 儒學博士 梁大淵 謹撰 國展審査委員 金濟雲 謹書

-『망우리공원 인물열전』(정종배,지노,2021)에서

김진성 묘비

 

김성배 준장은 일명 윤필용 사건에 걸려들었다. 실체가 없는 독직을 하였다고 실형을 살았다. 대법원판결로 무죄를 받아 복권됐다.

허화평은 전두환 신군부 3허로 불리며 실세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필자는 일명 강남 부자 사모님들이 노니는 명당 찾아 삼천리 곳곳을 헤매는 의외 곳인 충남 청양의 ‘소중화’라 불리는 한반도에서 유일한 성인 공자가 태어난 지명과 같은 ‘곡부’라는 곳에서 한나절 함께 보낸 때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과 그들의 선조와 가족과 후손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독립운동 명가에는 13도 창의군탑의 왕산 허위, 이태원묘지무연분묘합장비 유관순 열사,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오기만. 전북 완주 5형제 김춘배(정춘산) 신창지서습격사건 김일성 보천보 사건의 모델, 김사국 박원희 부부 집안, 서병호와 그 처가 김마리아 집안 등이 독립운동 명가이다.

 

왕세자인 영친왕 사부로 글씨를 가르치고 1903년 대한문 앞에 ‘천연당’ 사진관을 열고 1913년 그 사진관 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화랑인 ‘고금서화관’을 연 해강 김규진과 ‘한국화’라 명명한 청강 김영기 화백의 종택과 가족묘지 7천 평, 딸기원 마을에 종가가 있고 가족묘지는 집 뒤에 자리 잡고 있다.

 

대종교인 별산 나우와 둘째 아들인 나성돈은 2대 항일투쟁가로 미서훈 항일투쟁가 김기만의 따님과 결혼하였다. 김기만 집안은 큰 과수원으로 매년 사과 오천 상자를 팔아 독립자금으로 보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집을 찾아 유숙했다. 채명신 장군도 어릴 적 가난하여 김기만 집에서 생활하였다.

흥사단 단우인 김기만과 나우는 미서훈 독립운동가로 사돈지간이다. 나성돈의 2남 2녀 중 첫딸 나인숙씨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정현숙·박미라 등과 함께 금메달을 거머쥔 유명 스포츠 스타였다. 미국 이민 간 나인숙은 미국 탁구계의 전설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나성돈 둘째딸이 올봄 귀국하여 처음으로 할아버지 묘지를 참배했다. 현재 묘지는 나무로 둘러싸여 떼 한 장 살지 못하여 낙엽으로 쌓여 있다. 사설 관리인에게 의뢰하여 떼를 입힐 예정이다.

 

4형제 어학 천재 동아일보 초대 주필 정치인 설산 장덕수와 교육자 난석 박은혜는 은석초등(현 동국대학교 부설 초등학교) 설립자이고 경기여중고 교장선생님 15년 역임하고 두 분은 부부이다. 김활란 박사는 장덕수의 청혼을 거부하고 박은혜를 소개하였다.

장덕수 큰 따님과 국제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매년 막내 남동생이 귀국하여 묘지를 관리하였다. 그 동생도 이제는 나이 80대로 비행기 타기가 쉽지 않다. 관리가 되지 않으면 파묘 하여 유골을 뿌리겠다는 것이다. 구청에 연락하여 뒤로 미뤘지만 언제까지일까?

 

평북 선천의 2대 미서훈 항일투쟁가 아버지 이창석과 둘째 아들 이영학이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친일인명사전 수록된 첫째 아들 이영찬은 구리시 왕숙천, 둘째 아들 이영학의 묘지 면목천을 거쳐 중랑천으로 흐르는 망우역사문화공원 안에 떨어져 잠들어 있다.

 

평산 신씨 문희공파(전점공파) 선영 25기 묘역 신립 장군의 아들 영의정 신경진이다. 영의정 신완 대장은 고손자이다. 신립 장군의 가묘로 고손자 신완 대장과 곤지암 선영에 역장으로 조성되었다. 묘지 앞 산봉우리와 능선은 화려하여 한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1949년 정부 수립 후 제1차 선발 도미 유학생이고 우리나라 최초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모르몬교) 침례 신도이다. 한국 최초 축산대학인 건국대학교 축산대학을 설립하며 초대 학장으로 운명할 때 명함에 26개 직함이 찍힌 콩박사 김호직과 그의 장남 김신환 성악가는 생물학 전공에서 성악에 눈을 떠 한국 오페라에 초석을 다졌다.

 

승암리 출신 대한중석 초대 사장 안봉익의 손자 SK바이오사이언스 대표이사 사장 안재용이다.

대한중석 안봉익 초대사장

 

‘순수귀신을 버려라’ 여장부 끝뫼 김말봉의 공식 첫 번째 남편인 전상명과 그의 전처소생 등을 「찔레꽃」, 「망명녀」, 「밀림」 등 신문연재 대중소설가로 전업작가로 글을 써서 길렀다.

가곡 <그네> 작곡 금수현, 김환기 화백 132억 그림 환희 재미 의사 마테 김 등 두 사위는 전상명의 전처 사위이다. 김관식, 천상병과 더불어 3대 기인 시인 이현우는 끝뫼 묘지 옆에 누운 아나키스트 이종하의 아들이다.

여장부 끝뫼 김말봉 소설가에 의해 씨앗을 정리해준 노산 이은상의 작은댁 유택도 망우리 공동묘지였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십자가형 묘비가 남아있다.

 

일본으로 세 번째 미술 유학생 김찬영(필명 김유방, 문화재 수집가 김득영) 화가의 작은댁 정충실의 유택도 남아있다. 정충실은 1947년 당시 국내에서 최고의 다이마몬드를 소지하고 있다고 소문이 났다. 두 명의 권총 강도 살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태경 김병기 화백의 월남하는 계기였다. 김찬영 화가 그 소실의 두 딸은 ‘길에 나서면 길이 확 열릴 정도로 미인’이었다. 이태준 소설 「석양」의 주인공과 망우리에 묻혔다 이장한 현요한의 형 현시학과 재혼하였다. 김병기 화가는 10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중섭 화백의 종로보통학교 동기로 죽마고우였다. 필자는 김병기 화백과 99세부터 103세까지 4년여를 찾아뵙고 귀한 말씀을 듣고 배웠다. 백세 넘은 건강과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 고맙습니다. 김병기 화백님 천상 영복을 기도드립니다.

 

8대역관 집안 위창 오세창 아버지 오경석 2대 문화재 감식안 드높았다. 보화각 현판을 쓰고 간송 전형필 멘토, 위창 오세창의 장손인 오원석(1899~1957)은 1930년 동경제대 피부과 논문으론 조선 최초 박사학위 수여자이다.

 

「실비명」의 소설가 김이석의 아내는 박순녀 소설가의 딸 김양하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식품영양학회 회장이다. 박순녀 소설가 말씀은 자기를 닮았으면 차관급 마지막 2인으로 남았을 때 청장에 부임하였을 것인데 아버지인 김이석 소설가를 닮아서 아쉬웠다고 토로하였다. 그런데 인생은 새옹지마 그 임명권자는 비상계엄으로 탄핵받아 법정투쟁의 모습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이정애 간호학과 김분옥의 가사과 설립에 대한 자료를 열람할 기회에 함께 하겠다고 소통하며 얻어냈다. 박순녀 소설가의 노환에 차도가 있기를 기도드린다.

 

세종대왕 이래 최고 기상학자 국채표 둘째 아들 국정련의 둘째 딸인 국미여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 대학 할아버지와 같은 고고 기상학 분야 교수이다. 국채표 이화여고 수학 교수는 삼양사 김년수 사장의 자녀들 과외교사로 성북동 김년수 사랑채를 내줘 담양에서 부모님은 물론이고 동생들이 상경하여 공부하였다. 여동생은 서울대 영문과 막내동생은 서울 약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정련과 함이영의 딸인 함천혜는 대학 동아리 동기로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국정련은 서울중·고 영재로 고3 때 오보예 연주자로 서울시립교향악단 정식 단원이었다. 아버지 국채표의 반대에도 서울대 음대에 입학 미국 전액 장학금으로 유학했다. 다시 물리학을 전공하여 항공우주 관련 연구자로 상당한 성과를 이뤘다. 국내에도 귀국하여 국방 방위 산업 자문하였다. 국내에 들어올 때 미국 국가에 서약을 하고 비행기에 오를 정도였다. 아주대 약학과 김홍표 교수는 군 시절 운전병으로 국채표 연구자를 몇 번 모신 기억을 되새겼다. 김교수는 국채표 가족묘지 바로 뒤에 묘지가 있는 막내동생 국세호 서울대 약학대학장도 기억하고 있다. 국세호 약학과 교수는 의료사고를 크게 내 신문에 게재되었다.

국채표와 둘째 아들 국정련 1968년 경 미국에서

 

죽산 조봉암 사위는 박인환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인 영화인 이봉래이다. 그의 외손자들이 추모제에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죽산을 닮아서인지 인물이 환하다. 이봉래는 박인환 시인이 여장부 김말봉 소설가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3.1혁명 민족대표 33인 이갑성의 부인 차숙경 여사 그 아들은 이용희 통일부 장관이다. 이용희 장관은 아버지 밀정문제로 뒷감당에 시간을 쪼갰다고 원로들이 망우리 답사하며 얘기를 나눴다.

 

3대 의사 집안 개업은 하지 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한 해관 오긍선과 제2대 보건사회부장관 아들 오한영 오한영의 두 아들 결핵·철도병원장으로 근무 노블리스 오블리제 전형,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오긍선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오긍선의 딸 오삼순의 남편 의사 최용태 의사는 아내를 상대로 생체 실험을 실행하여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 장식하였다. 등 40여 명 최대 의사 집안 최초 고아원 안양의 <좋은 집> 운영하고 있다.

 

5대 의사 집안 종두법 송촌 지석영의 맏손자 지홍창(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군 인연)은 박정희 대통령 주치의였다. 증손자는 지금도 송파구 지내과를 운영하고 있다.

 

문일평 사학자의 외손녀 사위는 조선일보 방우영과 중앙대학교 임영신 총장의 조카인 임철순 총장 등이다. 북으로 간 손자는 남북적십자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에 나타나 정인보 홍명희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호암의 서훈이 늦은 이유는 부인을 포함하여 자식들의 월북이 한몫하였다고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독보적인 식물분류학자로 1949년 고문사 당한 서울대학 사범대학 부교수 장형두의 딸 장혜경은 영화 <산유화>의 주인공이고 아들 장득성은 술에 관한 국내외 영국 황실에도 인정받은 두주불사 이름을 떨치며 롯데관광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아버지가 마지막 교정지를 가슴에 안고 고문사 당하여 박만규 교수 이름으로 출간된 아버지의 세 번째 식물도감을 아버지 이름으로 펴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도산의 발치에 묻어 달라’는 미서훈 독립운동가 추담 허연의 아들 시나리오 작가 허진, 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허일, SK부사장 사업 코칭 및 집필가 허달, 미국에서 IT 사업하는 손자 허용 등이다. 미국 유학 시절 박마리아와 선을 봤다.

추담 허연

 

둘째 아들 차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을 설립한 어머니.

첫재 아들이 광운대학교를 설립한 아버지

첫째 아들이 세종대학교를 설립안 어머니

개화기 사리원 선각자 사업가 손자 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

목천마씨 할머니의 맏손자 얼굴 사진작가 윤주영 3공화국 전 문공부 장관.

「인연」의 수필가 금아 피천득 부모님.

광복군 출신으로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김준엽 어머니.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어머니.

대한민국 유일 3대 국회의원 집안 정일형 어머니이자 정대철 할머니이며 정호준 증조모.

권투선수 홍수환 가수 홍수철 부모님.

아나운서 국회의원 박성범 부모님 신은경 아나운서 시부모님

정운찬,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부모님.

그룹 <들국화> 전인권의 할아버지 등이다.

 

극작가 이광래 형 이일래는 <산토끼> 작곡가.

학병 박진동 LG그룹 설립자 구씨 가의 맏사위.

부인식 증손녀 사위는 신선호 율산그룹 회장이다. 부인식의 아들은 부완혁으로 2대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선각자 설태희 큰아들 설원식 그 사위 김우창 교수 외손주 수학자 김민형. 월북 시인 설정식의 외손자 의리의 김보성 배우이다.

순조 부마 증 영의정 신안동 김씨 김현근과 명온공주이다.

라디오방송 아나운서 1호 이옥경과 최초 방송 기술인 노창성의 둘째 딸 국내 최초의 디자이너 노라노(노명자)이다. 노명자와 2년 결혼생활을 한 첫 남편은 신응균 육군 중장은 ‘한국포병의 아버지’라 불렀다.

가수 차중락의 이종형은 시인 김수영이고 외당숙 안막과 그 부인 무용가 최승희이며 외육촌 안성현은 <부용산>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가이다.

김활란 박사와 금란지교 우정을 자랑하는 서구식 간호사 1호 이정애의 아버지 이명원은 배재학당 출신으로 경인선 철도 공사 영어 통역을 맡았다.

시인 김영랑 셋째아들 김현철 기자는 미국 이민을 가 살면서 박정희의 여인 배우 김삼화 비밀을 터트렸다.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는 단체는 조봉암기념사업회, 만해 한용운 다례식, 유관순기념사업회, 이인성화백기념사업회, 김상용기념사업회, 최학송기념사업회,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회, 한국재림교회독립유공자기념사업회 등이다. 외에 장관 국회의원 중견그룹 갑남을녀 사연마다 절절한 이야기가 넘친다. 후인들의 지남차로 거듭나길 빌어본다.

 

 

이장한 분의 후손들

경신학교 1회 졸업생인 독립운동가 송암 서병호 목사,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 안수 목사 7인의 서경조 목사이다. 아들 서재현은 임시정부 요원으로 2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서병호 목사의 손자가 서경석 목사이다. 독립운동가 우사 김규식 박사와 동서 간이다. 송암과 우사는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와 중국의 전설적인 영화배우 김염의 종고모부이다.

부부 독립유공자에는 해광 김사국과 박원희의 굵고 짠한 짧은 생애이고 그들의 외동딸 김사건은 부모님 독립운동 서훈에 힘을 쓰고 외손주들은 연좌제를 피하여 교직자가 많았다.

1920년대 다재다능 예술인 석영 안석주는 <우리의 소원>을 작사하고 이를 작곡한 아들 안병원과 두 딸은 음악과 교수이고 가수 이동원과 정지용의 <향수>를 함께 부른 사위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테너 박인수 교수 등이다.

동요 <우리나라 꽃>을 작곡한 함이영 아버지와 함천혜 등 딸 넷과 사위 외손녀 포함 4대 음악가 집안이다.

막내딸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아버지

정원식 국무총리 부모님

김상협 총리의 장인

주요한 시인의 장인

2대 영화감독 '아리랑'의 독립운동가 춘사 나운규 차남인 나봉한 영화감독이며 나봉한 막내딸 나은정은 방송 전문 리포터로 활동하였다.

국어학자 이희승 부모님

최익환 사위 신복룡 건국대 사학과 교수

건축가 일송 박길용 아들은 음악평론가 박용구이다.

작은아들 세종대학 설립자의 어머니.

《사상계》, 『돌베개』의 광복군 장준하 가족묘지. 할머니 장윤희 아버지 장석인 어머니 김경문 2022년 6월 30일 파주 탄현 장준하공원으로 이장(손부 박정수)

흥남철수작전 영웅 현봉학 박사의 동생 현요한.

독립운동가 강학린 목사의 증손녀 가수 강수지.

한국 최초 예명을 사용한 신카나리아(신경녀)의 어머니.

홍난파의 <봉선화>를 불러 널리 알린 성악가 김천애의 어머니.

이기붕 박마리아 가족묘지 고양시 사설공원묘지 이장.

소아 김진성 독립지사 손서 허화평은 5공화국 3허 중 한 명이다.

이순자 조부 12·12 사태 이전 여주 이천 금박산 황후지지로 이장했다.

오기선 목사의 맏이는 천원 오천석(1901~1987)으로 문교부장관, 멕시코 대사, 이화여대교수 등을 역임했다. 1987년 “나는 내 조국의 민주교육을 위하여 살고 일하다 가노라.”라는 말을 남기고 작고하였으며, 그의 장례는 한국 초유의 교육인장으로 거행되었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김연진 이정현 부부 독립운동가 김연진의 넷째 동생 김종진 형제 독립운동가의 아버지 김영규 대한제국 참봉 김상용의 10대손으로 김좌진 장군의 9촌 조카의 유택도 남아있다.

이기영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와 이부영 서울의대 교수 형제 서대숙 하와이대학 교수 서정범 경희대 교수 현오석 부총리 등의 부모님

해강 김규진

 

 

명문가

독립운동 – 왕산 허위, 오기만, 유관순, 김춘배(정춘산)

역관 – 8대 위창 오세창

의사 – 5대 지석영, 3대 오긍선 노블리스 오블리제(후손 중 의사 40여명 최고)

사제 – 김동명 안석영 시인 백석 – 강소천 영생고보, 이광래 서라벌예술대학 영화과 나봉한 나운규 아들, 호암 문일평 조선혼(이육사 윤동주 유품에 책이 나옴, 호암의 죽음을 계기로 다석 유영모 선생이 깨달아 부인과 친구같이 죽을 때까지 유지)

우정 – 금란지교 김활란 이정애, 김활란과 김분옥 3·1운동 전날 밤 6인 결사대, 나우 김기만 사돈지간, 김이석 이중섭 차근호, 오재영과 박재혁 의열단 최초 의거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등

라이벌 - 최학송 - 계용묵, 김사국 - 장덕수, 이기붕 – 김윤근, 김활란 - 임숙재 등

미서훈 독립운동가 – 별산 나우, 명산 김기만, 변성옥 목사, 김분옥, 임용하, 김명신 등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이장한 분들을 포함하여 교과서에 수록된 인물은 50여 명으로 인물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세창(대통령장, 3·1운동)·한용운(대한민국장, 3·1운동)·지석영·방정환(애국장, 문화운동)·유관순(대한민국장, 3·1운동)·조봉암·최학송·계용묵·김이석·김상용·박인환·함세덕(친일, 연극)·강소천·김규진·이중섭·권진규·이인성·장덕수(친일, 교육학술)·설의식·문일평(독립장, 중국방면)·국채표·장형두·아사카와 다쿠미 등이다.

 

이장하신 분은 안창호(대한민국장, 임시정부)·송진우(독립장, 문화운동)·김활란(친일, 교육학술)·임숙재(친일, 교육학술)·박마리아(친일, 교육학술)·이기붕·안석영(친일, 영화)·김동명·김영랑(건국포장, 3·1운동)·채동선·송석하·함이영·나운규(애국장, 만주방면)·임방울·박길룡·진영숙·전한승·조용수·김종선 등 50여 명이다. 그 외 150여 명의 인물들은 대한민국 국가 지정 기념일에 거의 다 들어갈 만큼 대한민국 근현대사 역사문화 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 서훈 독립운동가는 김기만, 나우, 변성옥, 이병홍, 이영학, 허연, 박현식 등이다. 조봉암, 김찬두, 임용하, 김명신, 김분옥 등은 친일 관련으로 서훈을 받지 못했다.

소설가 김말봉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가족 중 유명인을 소개하면

 

순조, 신립과 신완, 정운찬, 한명숙, 정일형과 이태영의 아들인 정대철, 김신환, 김수영, 박순녀, 금수현과 이현우, 전인권, 백선엽, 김준엽, 피천득, 설정식과 김우창과 그의 아들인 김민형 김보성, 이갑성, 홍수환과 홍수철 형제, 이일래, 박성범과 신은경 부부, 최순애와 이원수 부부와 최영애, 배순훈, 이이화, 서대숙, 이기영과 이부영 교수 형제, 현오석, 서정범, 노라노와 신응균 부부, 김찬영과 김병기 부자, 차의과대학 설립자, LG·율산그룹 창업자, 광운대학 설립자, 아사카와 노리다카 등이다.

 

김성수, 김상협, 이희승, 이은상, 주요한, 전혜성, 허화평, 장준하, 현봉학, 강수지, 신카나리아, 김천애, 안병원 박인수, 정원식, 박용구, 전두환, 이순자, 애경그룹 회장, 세종대학 설립자 등은 이장했다.

 

비문을 쓴 분은 송시열(신경진 신도비), 신완(신경진 묘비), 홍석주(명온공주 김현근), 정인보(설태희, 문일평), 이광수(안창호), 박종화(양천 허씨), 이은상(손창환), 윤보선(이영준), 변영만(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 이병도(국채표), 유달영(이경숙), 김활란(장덕수 박은혜), 주요한(오한영), 조완구 조지훈(박찬익), 박목월(강소천), 조병화(차중락), 김남조(임숙재), 이규태(문일평), 조재명(아사카와 다쿠미), 곽근(최학송 표지비), 김현철 정종배(김영랑) 등이다.

 

글씨를 새긴 이는 오세창(설태희 방정환 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 김흡(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 신익희(이병홍), 김충현(김영랑 조봉암 강소천), 김응현(한용운 오세창), 손재형(안창호 오세창 손창환), 김기승(안창호 장덕수), 배길기(김말봉 김이석), 정학남(김승민), 황재국(김준엽 모 최학송 문학비), 한묵(이중섭), 송지영(박인환), 이근배 김준태 여태명(김영랑) 등이다.

영화인 나운규

대한민국 근현대사 인물열전 박물관인 망우리공동묘지 지금은 망우역사문화공원 보훈부에 합동묘역 망우역사문화공원 애국선열묘역이라 정하고 국립현충원과 같은 관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망우리공원에 독립유공자는 50여 분이다. 현재 유택이 있는 분은 15여 분이다.

 

대한(무오)독립선언 39인 중 도산 안창호와 남파 박찬익 두 분이었다. 안창호 선생은 1973년 도산공원, 박찬익 선생은 1993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했다. 미서훈 독립운동가 나우는 39인 외에 서명하였으리라 추정하는 6인 중 한 분으로 현재 망우역사문화공원 솔밭약수터 가까이에 유택이 남아있다.

 

3.1혁명 민족대표 33인 중 7분이 묻혔다가 나용환, 박동완, 홍병기, 이종일 등 4분은 1966년에 국립서울현충원 이장하고, 현재 3분 위창 오세창, 만해 한용운, 박희도 유택이 남아있다.

그 외 현재 망우리공원에 계신 분은 방정환, 김중석, 유관순, 문일평, 오기만, 서광조, 서동일, 유상규, 오재영, 김춘배 등이다.

 

조봉암, 이병홍, 김기만, 김명신, 임용하, 변성옥, 이영학, 김찬두, 허연, 차숙경, 박현식, 김분옥, 장덕수, 윤홍모 등은 미서훈 독립운동가이다.

 

시인 김영랑 독립운동가는 1990년 천주교용인추모공원으로 이장하였다 2024년 8월 19일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재이장하였다.

 

한국의 잔 다르크 유관순 열사의 유해는 1936년 이장한 이태원무연분묘합장묘 28,000여 명 속에 있으리라 추정하고 2018년 관련 단체에서 표지비를 세운 후 순국일인 매년 9월 28일 오전 아우내 오후 망우역사문화공원 추모제를 치르고 있다.

소설가 나도향도 유관순과 같이 2만 8천여 무연고 묘지에 묻혔으리라 추정한다.

 

13도창의군 왕산 허위, 27인결사대 동우 이탁 등은 망우리고개와 관련 있는 항일독립투쟁가이다.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서훈받은 왕산 허위, 도산 안창호, 만해 한용운, 유관순 열사 등 4분이다.

망우리공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3.1혁명(만세운동,운동)에는 민족대표 33인 7인과 안창호, 방정환, 송진우, 유상규, 김봉성, 문명훤, 김영랑, 나운규, 강학린, 김정규, 김중석, 유관순, 유진태 등은 서훈을 받았다.

조봉암, 장덕수, 김명신, 임용하, 이병홍, 이영학, 채동선, 김상용, 김분옥, 이정애 등은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서훈을 받지 못했다.

김연진 이정현 부부 독립운동가 김연진의 넷째 동생 김종진 형제 독립운동가의 아버지 김영규 대한제국 참봉 김상용의 10대손으로 김좌진 장군의 9촌 조카의 유택도 남아있다.

 

안창호, 박찬익, 나용환, 박동완, 이종일, 홍병기, 김진성, 나운규, 송진우, 강학린, 조종완, 백대진, 문명훤, 박원희, 김사국, 박승룡, 서병호, 김정규, 명재이탁, 이태건, 김봉성, 김병진, 김진성, 김승민, 선우훈, 최익환, 유진태(건국훈장 애국장, 1993, 2016년 국립대전현충원 이장) 등은 현충원, 공원묘지, 개인묘지 등으로 이장했다.

 

미서훈 독립운동가 최백근 통일운동가는 하동초등 6학년 때 광주학생의거일 기념 주도 6개월 투옥, 2018년 마석민주열사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신명균 묘지는 2003년 무연고로 용미리 시립공원묘지로 합장 이장하였으나, 그 장소를 누구도 몰라 안타까운 현실이다.

 

성균관 사성(종3품) 정학모 묘역을 직접 찾은 전남 함평 월야면 지변 마을 정근욱 함평양민학살 회장은 고향에도 똑같은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며 그 의문을 지금까지 풀지 못하고 있다.

 

박광남 독립운동가는 후손들이 망우리에 묻혔다는데 확인할 수 없다고 사무실에 전화를 하였다.

독립운동가 중 박희도, 장덕수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미서훈 독립운동가로 독립의군부 활동하고 조선신학교 교수 이정로 목사는 최근에 이장하였다.

시인 박인환

 

필자가 만난 망우역사문화공원 가족과 후손들

 

시인 김영랑의 셋째아들과 막내딸 그리고 장손과 손녀 증손자와 증손녀, 아동문학가 강소천 아들과 며느리, 소설가 김말봉의 두 번째 남편 아나키스트 이종하의 증손자와 그의 약혼녀, 시인 박인환의 2남 1녀와 그 손자 및 외손녀, 독립유공자 서동일의 손자, 이중섭의 종손녀, 영의정 신경진의 후손들, 기상학자 국채표의 둘째 아들, 이기붕 기념사업회 회장인 이기붕과 박마리아의 7촌 조카와 후손들, 작곡가 함이영의 장녀, 극작가 함세덕의 조카딸과 종손부와 종손자, 죽산 조봉암의 딸 조호정 여사와 그의 딸과 사위 그리고 외손자, 설의식의 사위 김우창 교수 설정식 두 아들과 설의식 외손자와 외손녀, 미서훈 항일투쟁가 나우의 손녀, 오긍선의 증손자, 김분옥 여사의 시댁 집안 조카들, 유관순의 친인척, 시인 김동명 조카, 항일투쟁가 김봉성의 아들, 김사국 박원희 외손자와 외손녀, 소설가 김이석의 부인 박순녀 소설가, 노필의 아들과 며느리 손자, 이경숙의 아들과 손자, 화가 이인성의 아들, 식물학자 장형두의 아들과 며느리, 장준화의 아들과 손자, 정충실의 남편 김찬영 화가의 아들 김병기, 만해 한용운의 외손자, 미국 경제학 석사이자 항일투쟁자이며 시인 추담 허연의 두 아들과 딸 손자 증손자, 정일형 박사의 아들인 정대철 의원 그 아들 정호준 의원, 항일투쟁가 최익환의 사위인 신복룡 교수와 그의 부인, 호암 문일평의 외증손서인 중앙대 총장 및 이사장, 시조시인 이은상, 고려대 김준엽 총장, 경희대 서정범 교수, 차의과대학 설립자 손자, 전두환과 이순자 등이다.

 

전화 통화

미국 국제전화 장덕수 박은혜 부부의 장녀, 미서훈 항일투쟁가 김찬두 의사의 며느리, 우리의 소원 작사가인 석영 안석주의 딸, 소설가 김이석 박순년 부부의 딸, 항일투쟁가 김정규의 손녀, 김춘배로 추정 손자, 영화인 나운규의 손자,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조카, 아동문학가 최신복 외손주, 소설가 계용묵이 손자 등

 

생가 방문

작곡가 채동선 보성 벌교 부용산 밑, 영랑 김윤식 강진읍, 죽산 조봉암 강화, 김동명 시인 강릉 사천, 아사카와 다쿠미 생가지 및 묘지 참배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토시

 

거주지

서촌의 문일평 최학송 이중섭, 성북동 만해 한용운 심우장, 정릉 계용묵

 

작업실

권진규 동소문동, 김말봉 부산 다방,

 

활동 장소 확인

카프 맹원 안석영 최학송 이량, 동덕여고 신명균, 건축가 박길룡 조선총독부 중앙청 화신백화점 자리, 송진우 동아일보사, 아사카와 다쿠미 홍릉수목원 청량고등학교 종묘장, 오긍선 세브란스병원 자리, 유관순 김분옥 이화여고, 이기붕 박마리아 서대문 4.19기념 도서관, 항일투쟁가 들의 투옥된 서대문형무소 독립공원, 방송기술인 1호 노창성 아나운서 1호 이옥경 경성방송국 자리

 

학교 방문

한영중학교 설립자 박현식 교장선생님 학교설립 70주년 기념집 기증받음, 김호직 건국대학 축산대학

 

장례식 및 죽은 장소

적십자병원 이중섭 함세덕, 영화감독 노필 삼청공원, 조각가 권진규 동소문동 작업실, 방정환 김사국 박원희 천도교 중앙교당, 4.19혁명 열사들의 독재투쟁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