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정종배
열다섯번 고3담임 맡으며
처음으로 자퇴생을 처리하고
늦은 오후 퇴근길
1호선 제기동역
할배 할매 전동차에 올라타자
판매원 가위를 손에 쥐고 썰을 푼다
냉동육도 짤리고
닭다리가 단번에 짤려나갑니다
자유자재
맘대로
맘 먹은대로
짜르고 싶은 것은 다 짜릅니다
사모님께 선물하세요
사모님
마음대로 안된다고
남편은 자르지 마시길
삼천리 금수강산 가로막는
휴전선도 싹뚝 잘라 버리는
하지인 오늘은 특별히 시중에 만원인데
이 곳에선 단돈 3000원
돈 몇 푼 들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짤라 버릴 놈 삼삼하여 콧노래 흥얼대다
인동초 꽃보다 더 귀한 녀석들 가르친다
필설로 잘못을 얼마나 저질렸는가
노을이 가장 늦게 스러지는 오늘 하루
내 혀와 두 손과 온몸이 쩌릿쩌릿 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