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가래 선물

정종배 2018. 8. 25. 23:09

 

 

 

가래 선물/ 정종배

 

 

악력을 높이려

작년 가을 중랑구청 광장에서

건강세미나 설문에 답하고 골라 잡은

호두 두 알 잘 굴리다

8월초 한 알 놓쳐 굴러 깨져

남은 한 알 짝을 잃어 쓸쓸했다

 

허전하여 악력기를 다시 쥐며 사용했으나

사랑의 열매와 거리가 멀다 느껴 아쉬웠다

 

여름방학 이른새벽 진관사 산책길 후문 앞을 그늘로 덮고 있는

가래나무 두 그루에

가래 열매 매달려

빈손을 굴려보며 가을걷이 풍요를 맛보았다

 

북한산 숨은벽 계곡 입구 물놀이에 슬리퍼 끌고가

가뭄으로 물웅덩이 찾으려다

폐쇄한 미군부대 훈련장 풀숲에 숨어있는 철조망에 걸려서

오른쪽 발등 여덟 바늘 꿰매

식구들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최악의 폭염 속

두 주 동안 산책을 못하고

샌들 신고 출퇴근만 오가는 뒷끝에

몸무게 2Kg 늘어

생애 최고 몸뚱이가 되었다

 

제19호 태풍 솔릭이 역대급 준비와 꼬리를 내리고

서울엔 빗방울 소리가 쥐꼬리도 적시지 못하고 지나갔다

 

간만에 아들과 토요일밤 진관사 산책을 하다가

후문 앞 추락 방지 보호대 위에

민달팽이 한 마리 누드쇼 한창이다

폰사진을 들이대다

불빛에 열매가 비치어

주웠더니 가래였다

멧돼지 방어용 등산스틱으로 보호대 밑을 헤쳐 열매를 손에 쥐고

감로수 옆 허드렛물 물통 속에 껍질을 까고 씻어

숫자를 세보니

아홉개 오메 갑오

아 하나가 부족하구나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열매 주어 짝을 맞춰

지인들에게 선물해야겠다

 

태풍은 태풍이다 고맙다 솔릭아

가을을 손안에 쥐어줘

 

화장실에 아픈 다릴 비닐로 감싸 물에 젖지 않으려

불편한 자세로 빨래 빠는 솔로 가래 열매 골에 쌓인 껍집을 벗겨내며

그 동안 날 위한 귀한 이들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고마운 시간을 물놀이로 즐거운 밤이다

 

짝이 없는 가래야

오늘 밤만 참아줘

내일 새벽 짝을 찾아줄게

 

고맙다 민달팽이야 가래 선물 기회를 줘

네 짝은 찾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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