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꽃/정종배
가을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점심을 빨리 먹고
봉화산 근린공원 한 바퀴 도는데
날 부르는 소리 들려
뒤돌아 기웃대며
귀 기울이니
여기야 여기야 이 바보야 여기라니까
눈 비비고 고개숙여 들여다보았다
잎 다 떨군 빈 가지를 꽃가지로
리모델링한
명자꽃이
가을볕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반쯤 벌리고
오랜만이네
지난 봄에
경황없이 헤어졌는데
이렇게 만나 되게 반갑네
붙들려 한참을
쪼그려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다
누가 볼까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려는데
내 첫사랑 명자년 말투로
오늘도 너 그냥 갈껴
입술을 쪽 맞춘다
백주에 테러를 당했다
곁에 선 벚나무가
어머머 별꼴이야 입술을 가리다
마지막 잎새까지 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