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명자꽃

정종배 2018. 11. 12. 14:53

 

명자꽃/정종배

 

 

가을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점심을 빨리 먹고

봉화산 근린공원 한 바퀴 도는데

날 부르는 소리 들려

뒤돌아 기웃대며

귀 기울이니

여기야 여기야 이 바보야 여기라니까

눈 비비고 고개숙여 들여다보았다

 

잎 다 떨군 빈 가지를 꽃가지로

리모델링한

명자꽃이

가을볕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반쯤 벌리고

오랜만이네

지난 봄에

경황없이 헤어졌는데

이렇게 만나 되게 반갑네

 

붙들려 한참을

쪼그려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다

누가 볼까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려는데

내 첫사랑 명자년 말투로

오늘도 너 그냥 갈껴

입술을 쪽 맞춘다

백주에 테러를 당했다

곁에 선 벚나무가

어머머 별꼴이야 입술을 가리다

마지막 잎새까지 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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