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0월 8일 소설가 이익상과 임영신

1919년 2.8독립선언 장소 도쿄 YWCA 2022. 11. 15
〇동경이재동포구제회 지난 9월 13일부터 삼랑진 분국 주최로 동경이재동포구제회를 조직하고 활동한 바 25일까지 의연한 씨명은 좌와 여하다더라(삼랑진).
〇이원동포는 무사(이원).
〇동경진재구제의금 경남 거창에서 동경진재구제의연금을 모집한 바 금액이 좌와 여하더라(거창) - 동아일보 1923. 10. 8
본사 특파원 제6회 안부 조사(84명) 아무 기록이 없은 무사한 것 - 동아일보 1923. 10. 8
〇김창섭 경성부 종로 3 18 동경미술학교(미구개교)
〇이익상 부안군 동중리
소설가이며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일본대학 사회과를 졸업하고 파스큘라와 카프 결성에 발기인이며 동아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역임하고 정우홍 동서이며 신석정 시인의 은사이고 사촌매부이다.
〇신기형 (동) 신석상 소설가의 아버지이다.
〇서진문 울산 동면(애족장, 일본방면) 중복 게재,
1900년 울산 동면에서 태어나 1928년 순국한 서진문은 1926년 일본에서 신나천현 조선협동조합 횡빈지부에 가입하여 조선인의 권익을 위한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1927년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1928년 10월 일왕의 즉위식인 「어대전」을 앞두고 사전 검속으로 김천해(사촌 형), 이성백(건국포장, 3·1운동) 등과 함께 검거되었다가 고문으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2006년 운동계열 일본방면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장이다
〇이필현 중화군 해압면 부하 신야신정 260(애국장, 중국방면)
〇유기원 파주 (대통령 표창, 3·1운동)
총독부 제12회 조사 작 칠일에 도착된 것 - 동아일보 1923. 10. 8
동경진재 지방 생존 동포 조선총독부 출장소 조사 제12보 - 조선일보 1923. 10. 8
부산현 현주자(2명) 병고현 동(80명) 애지현 동(21명) 청산수용소 동(153명)
‘병고[兵庫]현 현주자’의 대부분은 토공 행상 직공 고인 인부 학생 인삼행상 중매인 노동 요리 작부 요리인 등이 수용되었다.
〇국상현 담양군 담서면 학생 〇국영현 동
제주 관음사에 1만원 희사 국상현 씨의 특지
전라남도 담양읍내 국상현 씨는 금번 전선 8경 중 제1위인 한라산 탐승 중 제주 관음사에 금1만원을 희사하여 대웅전을 독립 건립키로 하고 그날 마침 7월 15일(백중) 수백명 신도 회집한 석상에 성명한 바 제주 불교계의 일대 행운이라고 일반의 칭송이 자자하다 - 매일신보 1936. 9. 15
나예방협회기부금 백2십만원 돌파 만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 24명은 표창준비 국상현 민영휘 최창학 등과 등재 - 매일신보 1933. 10. 6
〇인천에서도 순사 5명 동경에 파견
인천서에서 일본인 순사부장 2인 급 순사 3명 합 5인을 동경경시청순사 증원으로 인하여 급히 파견한다더라(인천) - 조선일보 1923. 10. 8
<조선인박해사실조사회> 1923. 9 ~ 1923. 12 간토대지진 이후 자행된 조선인학살 진상 조사를 위해 도쿄에 조직된 단체에 이어,
〇동경에서 위문반 조직
무의의 고독을 서로 구호코자 이재동포의 소식을 물으면 회답은 신문지에 발표할 터
이번 지진에 이재한 동포를 구호할 목적으로 동경에 재류하는 유지들이 동경이재조선동포위문반을 조직하고 각지에 있는 이재동포의 수효와 그 부상한 정도를 조사하여 힘자라는대로 구호할 터이오 누구든지 이재동포에 대한 소식을 알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그 회답을 조선 내에 있는 각 신문에 발표할 터이라는데 위문반의 사무소와 임원의 씨명은 다음과 같다더라
서무부, 재무부원 오기선(조선연합야소교회 목사) 박사직(조선천도교청년회 포덕부장),
사교부원 이동제(조선유학생학우회 위원, 서무부장 1921. 6) 김봉성(건국포장, 3·1운동), 통신부원 유기태(고학생 형설회 회장) 이찬희(애족장, 3·1운동), 위문부원 이철 최승만(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 이사) 이창근 김재문 이근무 민석현(동경천도교청년회 간의원). 위치는 동경소석천구 판하정 천도교회내.
같은 지면 하단에 ‘동경에 재유하는 자녀와 친지의 안부를 알고자 하시는 제위에게’ 제목과 ‘위문반 통신부 백’ 이름으로 광고도 게재했다 - 조선일보 1923. 10. 8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재일한국인은 소실을 면한 ‘천도교청년회’의 사무실에 집합했다. 회합에 참석한 한위건(독립장, 중국방면)·최승만·박사직·왕시진·김은송·김낙영(애족장, 3·1운동) 등은 각종 문제에 대해 협의를 한 이후 10월에 가서 ‘동경지방이재조선인구제회’를 결성하여 조사활동을 시작하였다
임영신에게 유태영이 찾아왔다
일본 한인학생회 YMCA총무 김낙영이 죽음을 무릅쓰고 모은 관동대지진 한인학살사건 자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승만에게 꼭 전달해 주시오”
임영신은 이 자료를 과일상자 아래에 깔아 숨기고 무사히 이승만에게 전달했다. 이승만은 이 자료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의 만행과 잔혹성을 가열차게 비난했다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쵸공원에 있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희생자 추모비
파스큘라 회원이자 카프 발기인으로 활동한 소설가 이익상은 40살에 죽으면서 내가 일찍 죽게 된 이유는 서해 최학송에게 헌혈을 많이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울산 출산 서진문과 김천해는 사촌간으로 항일투쟁을 하였으나 남과 북 분단으로 운명이 갈렸다.
담양출신 국상현 국영현 등은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기상학 최초 박사학위 취득으로, 세종 이래 최고의 기상학자라 일컫는 국채표 제2대 기상대장도 담양 국씨 담양출신으로 확인이 필요하여, 국채표 박사의 둘째아들 국정현 선생에게 물었으나 일찍 고향을 떠나 알지 못한다는 답이었다.
동경이재조선동포위문반에서 활동한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당시 동경 조선연합야소교회 오기선 목사와 도산 안창호 조카사위인 김봉성도 당시 동경 유학생이었다.
임영신 전 중앙대학교 총장과 이사장은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3.1운동 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박희도가 설립한 중앙유치원을 인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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