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0월 10일 조선총독부출장소조사 제13보
동경진재지방생존동포 조선총독부출장소조사 제13보 - 조선일보 10월 10일 계 105명은 점원, 노동, 관리, 학생, 비행가, 명치대, 명치대 법대, 명치대 상대, 일본대 등이다
각소산재재주자(105명)
〇이규경 울산군 상남면 길천리 학생, 울산군 상남면 길천리 농업 18세
위 자에 대한 보안법 위반 피고 사건에 대하여 대정 8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피고 이무종·최윤봉을 각 징역 1년 6월, 피고 이규경을 징역 1년, 기타의 피고를 각 징역 6월에 처한 판결에 대하여 각 피고 등으로부터 공소를 신립하였으므로 당원은 조선총독부 검사 야전병웅[野田鞆雄] 입회하에 다음과 같이 심리 판결을 한다
피고 이규경이 조선독립운동을 기도하고 피고 이무종 외 4명과 구 한국국기를 만들어 대정 8년 4월 2일 언양면 남부리 시장에서 국기를 휴대하고 불온한 언동을 하여 대중을 선동하였다는 공소 사실은 그 증빙이 불충분하므로 형사소송법 제258조 제1항·제36조·제224조에 따라 동 피고를 무죄로 한다. 그런데 원판결 당시에 있어서는 제령 제7호는 아직 시행이 되지 않았으므로 원심이 피고 이규경을 제외한 다른 피고인에 대하여 다만 보안법 제7조를 적용하여 처단한 것은 상당하나 동령 시행 후에 오늘에 있어서 신·구 양법을 대조하여 그 가벼운 데에 따르도록 하여 다만 보안법 제7조에 의하여 처단한 것은 부당성을 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피고 이규경에 대하여는 그 범죄 증빙이 불충분한데, 이를 유죄로 판정한 것은 실책이므로 피고 등의 공소는 이유 있다고 인정하여 형사소송법 제261조 제2항에 의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〇안창남 목하부하 산삽곡 299 환산방에 재주 비행가(애국장, 중국방면)
〇엄상수 고성 봉발 동동대. 경남 고성 ≪조선일보≫ 지국장 구종근씨는 방금 통영검사국에서 취조를 받고 있는 중인데 그 내용은 전기 구종근씨는 동군 하이면 덕호리 김진호 장녀 달막(18)이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배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알아 보았더니 김진호측에서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하였다 하며 또 동군 회화면 배둔리 청년이 발관을 동면 주재소에서 강제로 폐업을 시킨다는 것을 보도하였더니 그 주재소에서 또 고소를 한 것이라는데 이를 들은 고성기자단에서는 지난 9월 25일 오후 8시에 본보 고성지국 안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여러 가지 대책을 결의한 후 그 내용 진상을 엄밀히 조사하기 위하여 천두상 엄상수 양 씨를 통영으로 파견하였다더라. (고성)
엄상수는 고성군 창립벽두 민족운동 후원을 결의하며 동아일보 고성기자단 조직하였다 위원은 천두상, 엄상수, 구종근 등이다. - 동아일보 1925.9.30.
〇신태호, 일본식 이름 중광상원 또는 중광상호, 1923년 동경조선불교청년회 평의원으로 참여, 1924년 도요대학 인도철학윤리학과 졸업, 1941년 통도사 주지.
〇권희국 제천 한수동 학생. 1924년에 경시청에 편입된 요시찰 충북 갑호 대상학생 및 졸업생의 명단에 들어 있다.
2·8운동을 일으킨 유학생들의 일부인 김준연(애국장, 문화운동)·변희용·최승만·백남훈(애국장, 일본방면) 외 수명은 1919년 4월에 길야작조[吉野作造]·복전옥이[福田鈺二]가 주도하던 사상 단체인 여명회에 가입함으로써 일본인 사상 단체에 투신하는 첫 사례를 보여 주었다. 1920년대에는 원종린·권희국·이증림·김홍기·박세희·정태성 등과 더불어 계이언[堺利彦]의 코스모구락부, 고진정도[高津正道]의 효민회, 가등일부[加藤一夫]의 자유연맹 등에 각각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〇정안립(지나귀화인) 길림성 학생.
길림성 산 동문내 평안호동 80호 거주[원적 : 충북 진천] 정안립[본명 : 영택] 57세
이는 만주에 조선인 자치지대를 설치하려고 계획하고 여기 소요되는 자금 조달운동을 위해 지난 8월 동경으로 와서 우연히 진재를 당하여 10월 초순 하등의 얻은 것이 없고 우선 귀국하였는데 이번 재만 조선인 구제를 위하여 주식회사 화풍 개간공사 설립자금 1천만 원을 정부로부터 대부를 받는다고 칭하고 4월 11일 동지 민병한·오세영·홍우철 및 사위 권희국과 함께 다시 동경에 도착하여 정교정 각괄[淀橋町角䒷] 신숙호텔에 투숙하고 이래 회사 설립 취지서 및 정관을 인쇄하여 당국 및 관계 명사에게 배포하고 오로지 분주중 본건과 같은 것은 먼저 조선 총독의 양해를 얻지 않으면 불가하다고 깨닫고 이 방면에도 운동하였는데도 도저히 성공할 가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〇김홍식 여수군 서정 동 일대. 김홍식 일본대학 서양화과 입학(특별학생) 도쿄 지진지역 생존 동포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화가이자 독립운동가.
〇윤길현 함안 금천리 동양대. 포시진치 변호사와 긴밀히 연락하는 임무만을 박열 동지인 장상중과 당시 유학생 학우회 회장이며 간부이던 조헌영(조지훈 시인 부친)·윤길현 등이 맡고 있었다.
〇김태열 광주 수기옥정 동양대(애족장, 3·1운동)
1895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순국한 날이 미상인 김태열은 1919. 3. 10 ~ 3. 13 광주에서 김복현(애족장, 3·1운동)·김강 등과 같이 시민 수천 명을 규합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피체 되어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의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운동계열 3.1운동 애족장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이다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지진-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2.8독립 선언 주역들과 선언서 뒷부분과 대표자 명단
〇안창남 목하부하 산삽곡 299 환산방에 재주 비행가(애국장, 중국방면)의 살아 있다는 기사다.
〇윤길현 함안 금천리 동양대. 포시진치 변호사와 긴밀히 연락하는 임무만을 박열 동지인 장상중과 당시 유학생 학우회 회장이며 간부이던 조헌영(조지훈 시인 부친)·윤길현 등이 맡고 있었다.
〇최승만은 <나의 자서전>과 <극웅필경> 등에서 관동대학살 당시 조선인이 약 2만여명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동경 각 소재지마다 구체적인 피해자에 대해 사례를 밝히고 있다.

2.8독립선언 참가한 유학생들
독 립 선 언 서
전 조선청년독립단은 아(我) 이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 만국의 전(前)에 독립을 기성(期成)하기를 선언하노라.
4천3백년의 장구한 역사를 유한 오족은 실로 세계 고민족의 하나이라. 비록 유시호 중국의 정삭을 봉한 사는 유하얏스나 차는 양국왕실의 형식적 외교관계에 불과 하얏고 조선은 항상 오족의 조선이고 일차도 통일한 국가를 실하고 이족의 실질적 지배를 수한 사 무하도다. 또 합병 이래 일본 조선통치 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하야 오족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 대한 고대의 비인도적 정책을 습용하여 오족에게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을 불허하며 심지어 신교의 자유, 지업의 자유까지도 불소히 구속하며 행정, 사법, 경찰 등 제기관이 조선민족의 사권까지도 침해하며 공사간에 오인과 일본과의 우열의 차별을 설하며 오족에게는 일본인에 비하야 열등한 교육을 시하야서 오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일본인의 사용자로 성케 하며 역사를 개조하야 오족의 신성한 역사적 전통과 위엄을 파괴하고 능모하며 소수를 제한 이외는 정부 제기관과 교통, 통신, 병비 등 제기관에 전부 혹은 대부분 일본인을 사용하야 오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국가생활에 지능과 경험을 득할 기회를 부득케 하니 오인은 결코 여차한 무단전제 부정, 불평등한 정치하에서 생존과 발전과를 향유키 불능한지라.
그뿐더러 원래 인구 과잉한 조선에 한으로 이민을 장려하고 보조하야 토착하니 오족은 해외에 유리함을 불면하며 정부의 제기관은 물론이고 사설의 제기관에까지 일본인을 사용하야 일단 조선인의 부를 일본으로 유출케 하고 상공업에도 일본인에게만 특수한 편익을 여하야 오족으로 하야금 산업적 발흥의 기회를 실케 하도다. 여차히 하방면으로 관하야도 오족과 일본과의 이해는 상호배치하야 기해를 수한 자는 오족이니 오족은 생존권리를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노라. 최후 동양평화의 견지로 보건대 위협이던 아국은 이미 군국주의적 야심을 포기하고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신국가의 건설에 종사하는 중이며 중화민국도 역연하며 겸하여 차후 국제연맹이 실현되야 다시 군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할 강국이 무할 것이다. 그러할진대 한국을 합병한 최대이유가 소멸되었을뿐더러 차로부터 조선민족이 무수한 혁명란을 기한다면 일본에게 합병된 한국은 반하야 동양평화의 요란하고 화원이 될지라.
오족은 정당한 방법으로 오족의 자유를 추구할지나 만일 차로써 성공치 못하면 오족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야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야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는 열혈을 유할지니 어찌 동양평화의 화원이 아니리오? 오족은 일병이 무하니 오족은 병력으로써 일본에 저항할 실력이 무하도다. 일본이 만일 오족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할진대 오족은 일본에 대하야 영원의 혈전을 선하리라. 오족은 구원히 고상한 문화를 유하얏고 반만년간 국가생활의 경험을 유한자라 비록 다년간 전제정치하의 해독과 경우의 불행이 오족의 금일을 치하얏다 할지라도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의 선진국의 범을 취하야 신국가를 건설한 후에는 건국 이래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오족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함이 유할 줄을 신하노라.
자에 오족은 일본이나 혹은 세계각국이 오족에게 자결의 기회를 여하기를 요구하며 만일 불연이면 오족은 생존을 위하야 자유의 행동을 취하야 써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재일본동경조선청년독립단 대표.
최팔용, 이종근, 김도연, 송계백, 이광수, 최근우, 김철수, 김상덕, 백관수, 서춘, 윤창석
결의문
1. 본단은 일한합병이 오족의 자유의사에 출치 아니하고 오족의 생존발전을 위협하고 동양의 평화를 요란케 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2. 본단은 일본의회 및 정부에 조선민족대회를 소집하야 대회의 결의로 오족의 운명을 결할 기회를 여하기를 요구함.
3. 본단은 만국평화회의에 민족자결주의를 오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함. 우 목적을 전달하기 위하야 일본에 주재한 각국대사에게 본단의 의사를 각해정부에 전달하기를 요구하고 동시에 위원 3인을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함. 우위원은 기히 파견된 오족의 위원과 일치행동을 취함.
4. 전제항의 요구가 실패될 시에는 일본에 대하야 영원히 혈전을 선함. 차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오족이 기책을 임치 아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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