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10월 17일 유언비어의 출처가 판명

정종배 2025. 10. 17. 06:17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10월 17일 유언비어의 출처가 판명

진재 후의 대소란을 궐기한 유언의 출처가 판명

신내천현 고진서장의 입으로 나왔다

서원을 모아놓고 훈시를 한 후 방어 준비까지 시켜 – 동아일보 1923. 10. 17

〇이중난을 겪으면서 살아나는 기억(3) =제1 대난이 지진화재= =동도 문화가 일장춘몽 김상철(寄).

폭행자 20명을 검거 진재 당시에 자경단원들이

단장도 모르게 십여 명을 학살한 자 경시청에 검거하여 검사국으로

동경 경시청에서는 폭행한 자경단을 검거함에 노력하던 바 부하 사도촌에 출장하야 취조한 결과 20명의 폭행자를 검거하여 검사국으로 보내였는데 그 검거된 자는 기옥현 출신의 신곡복평 씨의 지휘 아래에서 활동하던 자경단으로 지난달 3일에 능뢰촌에서 신곡씨는 수병이 동행인에게 자세히 조사를 하는 중 단원 수명은 신곡 씨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14명을 살해한 사실이 발각된 것이라는데 신곡 씨는 다만 그 단원을 령솔하고 있을 뿐이오 살인 사건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듯한 바 방금 증인을 불러 볼 터이라더라(동경 전보) - 조선일보 1923. 10. 17

자경단의 살해인수 450명 이상 검거 기소된 자경단원은 40명에 불과했다

동경진재 지방 생존 동포 조선총독부 출장소 조사 제16보(86명) 조선일보

직업이 토공土工 주로 경남북 출신들이다

비고, 본 조사 중 현주지의 기인(記人)이 무하야 게재함을 부득함

- 조선일보 1923. 10. 17

-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생존자 조인승 씨 증언을 인터뷰하는 재인한국인 오충공 다큐감독

자국의 자연재해로 인해 민심 수습을 위하여 타국민을 집단살해한 사례는 세계사에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이 거의 유일하다.

동학혁명과 남도의병대토벌에 참전한 퇴역 군인이 주축인 자경단의 제노사이드로 10여일 동안 6661명의 조선인이 원혼이 되었다.

당시 신문에 자경단의 만행으로 죽은 이의 숫자는 실렸다. 그러나 조선인이라고 밝히지 못하게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조선총독부 출장소 조사 제16보로 생존자 명단은 공식 신문 게재는 끝났다.

지금까지도 이름이라도 드러난 이는 440여명에 불과하다.

22대 국회 법사위 소원회에 '관동대지진 특별법'이 여야 협의로 통과한 뒤로 소식이 없다. 대통령 국정 지표에도 들어 있는 현안이다.

절차를 밟아 꼭 102년 전

아니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음신을 천도하는 씸김굿이 이뤄지길 간절하게 합장한다.

102년 전 제노사이드 참상의 진실규명과 일본국의 진정한 사과를 받는 날이 오길 빌어본다.

1972년 10월 17일 필자가 중3 일 때, 10월유신 유신헌법이 발표되어, 고등학교 입시 준비 일반사회 시간에 부랴부랴 헌법 공부를 다시 한 기억으로, 부애가 치밀어 오른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는 신호탄인 유신헌법이 허공에 쏘아올려 헬 수 없는 피눈물이 터졌다. 수많은 의문사와 고문당한 트라우마와 상처에 잠못이룬 민주열사 원혼과 아픔을 씻는 대동세상이 오기를 기도한다.

1950년대부터 목숨 걸고 끈질지게 일본 국가 공식 자료 수집과 연구를 이어온 강덕상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자들과 1983년부터 영상제작으로 그 참상을 기록한 오충공 감독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