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0월 20일 조선인 학살사건 ‘일부 해금’
10월 20일 일본 정부는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사건에 관한
신문 보도 통제를 ‘일부 해금’했다
10월 말에는 중국인 살해 및 피해 사실도 보도되기 시작했고
11월 3일에는 상하이의 독립운동단체, 한중호조사가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에 대한 항의의 뜻을 담은 ‘선언서’를 발표했다
신문에서는 서관수해동정금 모집과 공진회 기사를 줄기차게 게재하며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에 대한 기사는 내보지 못하게 통제하였다
- 정종배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자경단의 오로지 조선인이라는 이유없는 이유로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일본 정부 당국자는 지금도 "문서가 없다, 조사 중이다." 등으로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22대 국회 관동대학살 특별법을 통과시켜 일본 정부 외교부의
진실규명과 공식 사과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소앙 외교총장 1923년 9월 10일 공식 항의문 발표와
1924년 9월 14일 천도교 중앙교당 1주기 추도회 외엔 국내에서 입도 뻥끗 못하게 막았다.
지금도 일본은 미국과 짜고 제2의 가쓰라-태프트 조약으로
대한민국을 궁지로 몰아넣을
두 번째 IMF 사태를 불러와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
독사의 혓바닥을 낼림거린다
정신줄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
아직도 12.3내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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