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대학살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국회 통과

2025년 12월 2일 오늘은 역사에 기록될 날로
한일외교사에 새로운 출발의 계기와 디딤돌이 마련되었다
몇 번이나 발의된 '간토대학살 특별법' 법안이 여야정쟁과 일본 정부와의 관계를 핑계로 버티다 회기 종료하며 자동폐기 되었다가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통과를 약속했던 법안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지난 8월 23일에도 현지에서 재일동포들과 만나 간토대학살을 언급하며 "다시는 반인권적인 국가 폭력이 벌어지지 않는 나라 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2대 국회 윤건영 의원이 발의한 간토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 등 총 6개 법안을 심사해 제안하여"
여야합의 법사위를 통과하여
2일 국회에서 본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특별법 수정안을 재석 236인 중 찬성 220인 반대 3인, 기권 13인으로 의결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진상 조사 책임규명 위원회 설치와
공포 1년 후부터 시행...희생자·유족·2년 내 진상규명 신청을 받는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관동대지진 이후 일주일 넘게 자국의 자연재해로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려 유언비어를 확산하여 일본 군인 경찰 자경단 등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조선인 대학살을 자행했다.
9월 10일 임시정부 조소앙 외교부장 항의문 이후
그해 12월 5일 상해임시정부 발행 <독립신문>에 발표한 6,661명 제노사이드 당한 뒤
일 년 뒤 조선에서 추모식을 치른 뒤부터 광복까지
일제의 철저한 통제와 억압으로 합봉하고
한국정부 수립 이후 외면하고 방치한
자국의 자연재해로 성난 민심을 수습하려 타국민을 집단학살한 사례는 세계사에 있어 관동대학살이 거의 유일한
법적 시한 없는 제노사이드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광복 80년 한일협정 60년만인
오후 8시 국회 본회의에 간토학살 진상규명 특별법이 상정되어
오후 9시 1분 가결되었다.

그 동안 오충공 감독은 다큐 <감춰진 손톱자국> <불하된 조선인> 두 편의 귀한 자료를 통해서 한일 국회 안에서 감상과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의 면담과 간토대학살 피해자 집을 찾아가고 유족회를 결성하여 부산항 제4부두에서 추모제와 기자회견 등을 치렀다.
<보화종루>개보수 활동을 유라시아연대(이사장 신이영)와 연대하며 애를 썼다.
'시민모임 독립' 활동에 애써주신 이만열 이사장님 박덕진 대표 집행부 회원 및
김태영 감독의 다큐 <1923 간토대학살> 제작 일본대사관 앞 1인 시위 및 기자회견 등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고 함께하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103년 동안 중음신으로 구천을 떠도는 피해자
이름이라도 불러줄 수 있길 기대한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중 15분 정도가 간토대학살 목격자나 작품에 반영하였다.
그 뒤를 이어 <정종배 다큐시집 1923관동대학살-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2023)을 출간하였다.

12.3 비상계엄 전야에
이것도 윤건희 정부가 보수를 괴멸시킨 후과라는 대세의 대학 과 동기 모임 뒤에
희소식이라
재일한국인 강덕상 교수의 목숨 건 자료 수집과 연구 그리고 그 뒤 후학들의 의미 있는 연구 성과와
큰 힘을 실어주던 피해자와 유족들의 후일담과 증언이 역사의 거울로 거듭나길 합장합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인 설정식 시 「진혼곡」 (1) | 2025.10.27 |
|---|---|
| 1923년 10월 20일 조선인 학살사건 ‘일부 해금’ (0) | 2025.10.20 |
|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10월 18일 군마의 학살범 34명을 검거 (1) | 2025.10.18 |
|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1923년 10월 17일 유언비어의 출처가 판명 (0) | 2025.10.17 |
| 1923년 10월 14일·15일 군마현 자경단과 기특한 일본 부인 (0) | 2025.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