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묘지

오는 28일 금요일 구상문학축전 오후 3시 구상문학세미나 토론자로 나서며
시인 구상이 1956년에 발표한 '초토의 시' 15편 연작시의 근원을 찾기 위해
오늘 오후 <북한군묘지>를 답사하였다.
동서 화합 차원으로 이른 점심 과메기를 먹고서
남과 북 통일을 위하여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6-1로 집사람과 출발했다.
매일 저녁 진관사 산보길 길섶에 <1.21 무장공비 사태 안내문>을 읽는다.
남과 북 통일의 지름길은 1968년 1.21 무장공비 루트를 되돌려 오르면 쉽게 되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오간다.
침투루트 금곡리에서 매복을 하면서 소주를 마시던 기억이 새롭다

군생활을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에서 하였다.
80년 전후엔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는 임진각 다리 외엔 서부전선에는 리비교뿐이었다.
미군 부대 배후지로 번성했던 장파리 상가를 통과한다.
금파리 은파리 똥파리라 놀리던 양공주 언니들의 환영 속에
비무장지대로 동계와 하계훈련 오가며 휘파람 불던 때가 반세기 전 일이다.
적군묘지는 6.25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북한군 중공군들의 공동묘지로 1996년 비석을 세웠다. 대부분 무명인으로 새겨져 있다. 단 1.21 무장공비 사태 유일한 생존자 김신조에 의해 28명의 주검 가운데 계급과 이름을 아는 북한군을 빗돌에 새겼다.
구파발 은평뉴타운 아파트 주차장을 출발할 때 빗방울이 성글었다. 안개도 잔뜩 끼어 시계가 불량했다.
북한군묘지에 도착하니 비도 그치고 시계도 양호했다. 마침 큰고니 떼가 먹이를 찾으려 공동묘지 앞을 선회하며 북쪽의 가족들이 보내는 편지를 읽어내듯 울음소리 드높아 산 능선을 넘었다.
중공군은 중국 정부 차원에서 고국으로 모셔갔다. 딱 한 빗돌만 남았다. 중국산 빈 술병이 앞에 서 있다. 제2묘지 표지석에는 중국산 빈 술병과 타다 만 폭죽이 남아 있다. 적군묘지에서 북한군묘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북한은 외면하고 있다. 무장공비 침투는 없다고 주장한다.
남한도 북파공작원을 운영했다.
분명 북한의 어디엔가는 남한의 적군묘지 조성하듯 집단 묘지가 있을까?
집안 동기 아재 북파공작원 신분으로 휴가 나오면 읍내 가는 길 불량배가 일시에 사라졌다.

빗돌은
북한군 00 1996. 6.12.13.14.
계급 000 또는 무명인
1.21사태 무장공비
오늘 파악한 북한군 명단은 아래와 같다.
북한군 11 상위 김시웅
북한군 12 소위 김수윤
북한군 13 상위 김춘식
북한군 14 중위 김길수
북한군 15 중위 나정길
북한군 17 중위 김봉범
북한군 18 중위 임용택
북한군 19 무명인
북한군 20 무명인
북한군 21 소위 최준일
북한군 22 소위 방양진
북한군 23 소위 박양조
북한군 25 소위 조명환
북한군 26 소위 김달신
북한군 27 소위 김창욱
북한군 28 소위 박기철
북한군 30 소위 권호신
북한군 31 소위 유형호
북한군 32 소위 한수군
북한군 33 소위 김을식
북한군 34 소위 김일태
북한군 35 무명인
북한군 36 무명인
북한군 37 무명인
북한군 40 무명인

1.21 북한군은 대부분 1940년대 출생하였다. 2023년 김목사님이 삼봉산 아래를 찾아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 뒤로 치매가 심해져 김신조 목사도 지난 4월 2일 향년 82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김신조 목사님의 천상 영복을 빕니다.
남과 북 분단으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님의 창자가 끊어지는 피눈물은 남과 북 이념이 들어갈 이유가 없지 싶다.
중간에 빠진 북한군 미안하다. 날 잡아 다시 찾아 술 한 잔 따라야겠다.
파주시 법원읍 초포리 삼봉산 나무하던 우씨 집안 4명 중 세 번째 당시 22살의 아우가 운영하는 두부집에서 오후 3시 이른 저녁밥을 먹으며 뒷담화를 들었다. 4명 중 당시 21살 막내인 현재 한 분만 살아 있다. 초포리 유원지 주변 음식점에 000형제라고 상호가 되어 있는 것은 1968년 1월 19일 당시 두 형제와 6촌 8촌 우씨 집안 4명의 가족이라고 여기면 이해가 쉽다.

시인 구상 1956년 연작시 '적군묘지 앞에서' -'초토의 시' 15편 중 알려진 시 2편을 소개한다.
적군 묘지 앞에서
- 초토의 시1
판잣집 유리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리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춘다.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소녀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적군 묘지 앞에서
- 초토의 시 8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에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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